세무조사 통한 환수 가능할까?
최-노 이혼소송… 30년 넘게 감춰진 비자금 일부 드러나
5.18재단·환수위 등 시민사회단체 고발… 검찰 수사 개시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 자금 '노태우 비자금'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노 관장 측이 재산분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김옥숙 여사(노 전 대통령의 부인)의 '904억 원 메모'를 재판부에 증빙으로 제출하면서, 하마터면 묻힐 뻔한 노태우 '비자금'의 일부가 다시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이와 함께 김 여사가 동아시아문화재단(이사장 노재헌, 김 여사의 아들)에 기부한 자금 152억 원의 출처 역시 '비자금'의 일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노소영 측에서는 이혼소송 과정에서 '선경 300억 원'(50억 원 짜리 약속어음 6장)이 선대 최종현 회장에게 흘러 들어가 이후 최태원 회장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종잣돈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고법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300억원의 비자금이 1조3800억 원으로 증식된 것이 된다. 그렇다면 불법자금인 비자금을 국가는 환수할 수 있을까? 대법원에서 '300억 원의 성격을 어떻게 규명하는지'에 따라 국세청의 과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동아시아재단과 아트센터 나비가 비자금을 관리하기 위한 방편은 아니었는지도 살펴 본다. 조세감면을 받는 공익법인 감독기관은 국세청이다.
◆…김옥숙 여사의 메로 [사진=나무위키]
■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30만에 드러난 노태우 비자금('300억 원 약속어음')
'노태우 비자금'이 우연한 계기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을 통해서다.
노 전 대통령이 1991~1992년경 사돈인 최종현 선경(현 SK) 회장으로부터 받은 약속어음 300억 원(50억 원 약속어음 6장)의 존재가 30여년이 흐른 2024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약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이 조성됐으며, 자신의 퇴임 당시 1700억 원 가량이 남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사건을 취재한 하종대 기자가 신동아 1998년 3월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비자금 규모가 8000억 원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됐다)
대법원은 지난 1997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했고, 이후 추징금 중 2379억 원이 국고에 귀속됐으며, 16년 만인 2013년 미납 추징금 230억 원을 마저 완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은 추징금을 전부 납부했다고 밝혔다. 장남 노재헌씨는 지난 2019년 8월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12월 6일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아버지를 대신해 뭐라도 하고 싶다"며 광주에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신군부 일원인 노 전 대통령의 과오를 인정하는 듯한 태도와 전두환 씨와는 달리 광주를 찾아 사과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며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국민적 공분을 어느 정도 누그려뜨렸다.
그런데 지난해 노소영 관장이 이혼소송 2심에서 승소할 목적으로 비자금(약속어음 300억 원)을 공개하면서,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이 국민들을 철저히 속여왔던 것으로 드러나며 국민적 분노에 다시 불을 지폈다.
특히, 비자금(약속어음 300억 원)의 실체에 대해 이혼소송 과정에서 양측 모두 '당사자들만 아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는 입장이 전해지면서 불법은닉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약속어음 300억 원이 공개될 경우 받게 될 최종현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과 기업활동의 어려움, 최종현 측 내지 노태우 측에서 추징 당할 수 있는 위험성, 공개될 경우 당시 혼인 관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문제 라는 점 등을 피하기 위해 30여 년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202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부터 3년이 지난 2024년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의 이혼소송 항소심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되고, 쟁점 중 하나로 다투어진 재산분할 과정에서 김옥숙 여사의 메모(선경 300억 포함 686억, 그 외 218억 5천만원 등)가 노소영 측의 증거로 제출되면서 904억 원이 넘는 '노태우 비자금'의 일부가 드러났다.
노 관장 측 주장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선대회장에게 300억 원의 자금이 전달됐으며, 선경 측이 그 대가로 약속어음을 발행해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 SK 최태원 회장의 주요 재산 형성 과정에 300억 원이 종자돈으로 사용됐으며, 최 회장이 갖고 있는 SK주식은 부부 공동재산으로 분할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2심 재판부는 이 자금(300억 원의 약속어음)의 성격에 대해 "노소영(피고) 측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며,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과 함께 1조3808억 원의 돈을 재산분할로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2심 판결대로라면 노태우 비자금 중 일부가 1조3808억 원으로 증식됐다는 얘기다.
대법원에서 심리속행 하기로 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최종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세무조사 여부 역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즉 300억 원의 성격을 '대여'로 볼 것인지, '증여'로 볼 것인지에 따라 세무당국의 법적 대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2편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국정감사장에서 쏟아진 질타, 세무조사·검찰수사 촉구
최태원-노소영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김옥숙 여사의 '904억 원 메모'와 152억 원의 재단 기부 외에도 김 여사의 210억 원 차명보험 납부, 노재헌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비정상적인 공시 및 상속증여세 회피 의혹 등이 불거졌다.
또 차명 부동산투자를 통한 비자금 은닉 정황과 비거주지 과세제도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역외탈세 의혹까지 노재헌 씨에게도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10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김옥숙 여사가 2000~2001년 차명으로 보험료 210억 원을 납부한 사실을 알고서도 검찰과 국세청이 확인서만 받고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는 김 여사가 1998년 904억 원 메모를 작성한 직후이며,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호소하면서 추징금 884억 원을 미납한 시기였다.
민주당 김영환 의원 역시 지난해 10월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시 결산서류 조작 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김 여사가 동아시아문화센터(이사장 노재헌)에 95억 원을 기부한 2020년 결산서류 출연자 목록에 김 여사와 아들 노재헌 이사장의 관계가 '해당 없음'으로 표기돼 있고, 2023년 결산서류에 '0'원으로 표기됐던 기부금 잔액이 국감을 앞둔 지난 9월 20일 '97'억 원으로 수정되는 등 부실 관리 정황이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국회 법사위 간사인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지난해 10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세청 홈텍스 및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을 분석한 결과 노 이사장이 측근 명의의 부동산 임대와 매매업 주식회사 '네오트라이톤'의 지분 60%를 보유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비자금 은닉을 위해 차명 부동산 회사를 운영 중인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 역시 지난해 10월 16일 국회 기재위 국감에서 노 이사장이 '비거주자' 신분을 악용해 지능적으로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고 짚었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같은 날 국회 기재위에 출석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 세무조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사실관계 부분이 3심(대법원)에서 확정돼야 국세청이 움직일 수 있다"며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세무당국의 조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청장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세무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불법 비자금인지를 따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노소영이 꺼낸 300억 원을 포함, 정치권 등에서 제기한 1,400여억 원에 달하는 불법 은닉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와 대법원 심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꺼낸 것으로 이해된다"며, "특히 대법원이 불법 비자금에 대한 명확한 심리를 해 달라는 요청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심우정 검찰총장은 지난해 10월 21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관련 고발장이 3건 들어왔으며, 수사팀에서 관련 법리나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민사회단체, 잇따른 고발…"범죄수익 환원하라"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11월 21일 오후 서울지방국세청 정문 앞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등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촉구했다. [사진=환수위 제공]
지난해 10월 7일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김옥숙·노소영 범죄수익은닉 및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14일에는 "불법증여 문제가 발견됐다"며 노소영 관장을 국세청에 고발했다.
또 5·18 기념재단도 같은 날인 14일 '김옥숙·노소영·노재헌'에 대해 조세범처벌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및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대검찰청에 고발하면서 "이들이 은닉한 비자금이 총 1266억 원대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환수위는 또 지난해 11월 21일 서울지방국세청 정문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등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노소영은 최태원 SK 회장과의 이혼소송을 통해 숨겨둔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일체의 추징금이나 세금도 없이 범죄수익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며 "이는 불법적인 증여일 뿐만 아니라, 편법상속이며 교활한 조세포탈행위"라고 비난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11월 26일 5.18 재단이 고발한 사건에 대해 첫 '고발인 조사'를 진행함으로써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유민종 부장검사)는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을 고발한 5·18 재단 관계자를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환수위는 또 지난해 11월 18일 아트센터 나비가 정부 보조금을 횡령한 의혹을 조사해달라며 문화관광체육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환수위는 "5년 간 나비가 전시회를 연 기간은 총 230일"이라며 "1년에 46일만 전시회를 연 것인데, 정부보조금 수령을 위해 형식적으로 나비를 운영해온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나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음에도 이를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보조금을 집행한 관련 기관과 책임자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 실상을 규명하고, 방만 경영과 횡령 의혹 등도 정황이 드러날 경우 검찰 등 사정기관에 고발조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