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0일. 거리는 '경제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북적였습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일찌감치 승리가 예견됐던 저녁께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누구 찍었어?"라고 묻는 것이 안부인사였지요.
한 호프집에서는 40대의 한 여성이 비슷한 나이의 남성에게 "이 후보를 찍었다"라고 하자 그 남성이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야 경제가 살아나. 민주당 찍으면 경제가 망해"라고 말한 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이제 5년이 흘렀습니다.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당선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혹자는 대부분 잊어버린 5년 전 얘기를 왜 새삼스럽게 꺼내 고물가와 전세대란, 높은 등록금에 속 터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왜 긁어대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민경제를 일으키겠다고 말한 19대 국회가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상황에서 새삼스레 경제 대통령 얘기는 왜 꺼내느냐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서민들의 힘든 삶을 보듬어주겠다고 했던 19대 국회는 첫 월급날이 지나도록 굳게 닫혀있습니다.
상임위원장 자리 배분과 민간인 사찰과 언론파업 국정조사·청문회를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느라고 말입니다. 특히 민주통합당이 18대 국회에 비해 의석수가 30석 이상 늘어나면서 협상이 쉽사리 진행되지 않습니다. 여당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협상의 달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때 야당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을 들고 나타난 박 원내대표인데요. 자타가 공인한 '정치 9단'의 박 원내대표라면 다들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박 연대'의 정당성과 명분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다들 박 원내대표가 협상만은 잘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임기가 시작된지 20여일이 지나면서 뭔가 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새누리당은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상임위를 배분해 각 의원들이 공부에 들어간 반면, 민주통합당은 6·9 전당대회가 끝나도록 신청도 받지 않았습니다.
한 의원은 "줄세우기를 한다"며 반발했습니다. 뒤늦게 신청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도 상임위가 어디가 될지 미지수입니다. 당내에선 "자기 사람 따져서 배분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치 9단'에게 남은 기대는 딱 하나, 바로 '협상'입니다. 많이 얻어오면 줄세우기를 한다해도 나눠먹을 파이가 좀 생길지 모릅니다.
원구성 협상은 지금 어떻게 돼 가고 있을까요? 처음에는 새누리당에게 문방위와 정무위를 각각 두 개로 분리하자고 했다가 역풍을 맞자 거둬들였습니다. 다음 카드로 18개의 상임위원장 자리 중 9개를 달라고 요구하더니 갑자기 새누리당 10개, 민주통합당 8개로 바꿉니다.
대신 국토위, 문방위, 정무위의 위원장 중 하나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그 대신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이건 양보만 하고 오히려 더 큰 걸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그러자 당내에선 또 이런 얘기가 들립니다. "잘할 줄 알고 상임위원장 10개를 새누리당에게 준다고 해도 가만 있었는데 지금 이게 뭐냐"며 "새누리당에 질질 끌려다닌다"라고 말입니다.
상임위 배분도 안돼 일도 못하고 그렇다고 협상을 잘해 야당 몫을 많이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제일 속이 타는 것은 초선 의원들일 것입니다.
어떤 의원은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터 줘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정치 9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민들은 '민생 9단'을 원할지도 모르겠네요.
"2007년과 2012년, 잘할 줄 알고 믿고 맡겼는데…" 이 대통령과 박 원내대표의 모습이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