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밤 12시, 기획재정부는 설탕·원당 및 삼겹살(냉장, 냉동) 등을 포함 오는 6월말로 할당관세 적용이 종료되는 품목의 관세율 인하혜택 연장여부를 공개했다.
통상 국제행사나 협상체결 등 외국 현지시간을 고려해야 되는 일은 제외하고는 공개적인 자료에 대한 보도시점을 밤 12시로 설정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
재정부가 이처럼 할당관세 공개와 관련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배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할당관세율이 수·출입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상당히 큰 편이다. 할당관세란 정부 시행령 규정사항으로 가격안정과 원활한 시장수급을 위해 개별 품목 기본관세율에 40%의 범위에서 관세율을 인하할 수 있는 제도다.
기본관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품목은 할당관세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상당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구조. 이에 따라 관세율의 인상·인하 여부가 시장에 미리 알려지게 되면, 수출입 물량을 수입업체 등이 미리 조절해서 수급조절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기존에 관세율이 20~30%로 고관세율이었던 물품이 할당관세 시행으로 무관세로 낮출 경우, 일부 수입 유통업체들은 관세혜택을 보기위해 고의적으로 수입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것.
재정부 김경희 산업관세과장은 "시장에선 할당관세 자체가 곧 '돈'이라는 인식이 있다. 사전에 미리 관세율이 알려지게 되면 고의적으로 수입시기를 조절해서, 시장 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도시점을) 그렇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할당관세 발표 과정을 좀 더 살펴보면, 정부와 설탕업계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신경전'을 엿볼 수 있다.
정부와 제당업계는 사실상 독과점 품목인 설탕 가격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는 원당가격이 높아져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나, 정부는 설탕가격 인상이 가공식품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번에 설탕 원재료인 원당은 물론 수입산 완제품 설탕까지 내년 상반기까지 무관세(30만t 한도)로 들여오도록 지정했다. 외국 제조사의 수입설탕이 시장에 싼 가격으로 풀릴 경우, CJ 등 3사가 독점하고 있는 설탕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업계는 곧바로 "외국 업체들에 대한 과도한 특혜", "사실상 가격통제 정책"이라며 들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정부와 제당업체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제당업계 사이의 힘겨루기는 지난해 세법심의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정부는 35%였던 설탕 기본관세율을 아예 5%로 내리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추진, 수입설탕이 국내 시장이 더 풀리도록 추진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업계의 '입김'이 작용, 결국 전보다 5%p 내린 30%로 조정하는데 그쳤다. 결국 법 개정이 무산되자 시행령인 할당관세율을 내려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사실상 가격통제라는 업계의 반응에 대해 정부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설탕 관세율 인하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며 "시장상황이 어렵다는 제당업체들의 논리는 결국 수입제품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부의 할당관세율 조정을 통해 표면적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향후 설탕 기본관세율 문제와 정기국회에서 또 다시 거론될 경우, 양 측이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