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세무대학은 세무공무원을 꿈꿔 온 젊은이들에게 전문지식을 가르친 배움터다. 세무대학을 졸업한 뒤 국세청이나 관세청에 입사, 이제는 어엿한 조직의 주역이 된 인물들도 상당수.
이들은 세무행정을 책임지는 일원으로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관세청에 소속된 세무대 출신 공무원들은 전체 조직원의 20% 가량이다. 비록 지금은 세무대학이 폐교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관세청 내에서 세무대 출신들의 역할은 적지 않다.
서울본부세관 자유무역협정국 손을호 관세행정관(사진)도 세무대 1기로 관세청에 입사해 관세청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세무대 1기…"낯선 일이 '평생 일'으로" = 손 행정관은 세무대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입학한 1기 졸업생이다. 고교 졸업반 시절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국립세무대학이 개교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무대에 지원, 졸업 후 관세청에 입사해 포항세관에 배치됐다.
"세관업무라는 것이 요즘에야 세간에 조금 널리 알려졌다고 할 수 있지만, 제가 처음 발령 받았을 때만 해도 세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실제로 근무하기 이전까지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관공무원이 된 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청춘이 아니라 일생을 세관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것이죠."
그의 말대로 그는 이제 관세청 업무에 두루 익숙한 베테랑 세관인이다. 그래서 힘들었던 일도 재미있던 추억으로 기억나는 것이 더 많다.
"입사 초기 외국 무역선에 직접 올라 승무원들의 밀수를 감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배에 올라가서 밀수품 서치(Search)를 하면 기관실 같은 데서 고가의 일제 전자제품이나 시계 등을 적발하곤 했죠. 외국선이 날씨 탓에 바다에 발이 묶이면 꼼짝없이 말도 안 통하는 외국무역상들과 수일을 같이 보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때는 그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너무 신났습니다. 그래서 당시 밀수 단속 건수(件數)로서는 전국 최고였습니다."
손 행정관이 입사했던 1980년대에만 해도 외국무역선을 통한 밀수가 빈번해 세관 공무원들이 이들을 직접 검사하는 일도 했던 것. 결코 녹록치 않은 업무였지만 지금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 분기별 환급업무 제안, '대통령 표창'…업무개선 '아이디어 뱅크' = 손 행정관은 외국무역선 현장에서 밀수 검사 업무를 경험하다가 관세청 환급과에 근무하면서 당시에는 복잡하고 불편했던 관세청 업무들을 개선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근무하면서 건별로 하던 환급업무를 분기별로 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도 이 시기.
"당시에 수출입기업들이 건별로 환급을 하는 것이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분기별로 모아서 환급을 하면 어떨까 제안을 했죠. 그때 제안한 내용이 관세청 유사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손 행정관의 제안으로 환급 업무가 한결 수월해진 셈.
이후에도 손 행정관은 관세청 수출입물류과로 자리를 옮겨 보세판매장과 보세공장의 운영 제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는가 하면 관세평가분류원에 있으면서 상대국 세관의 품목분류 허점을 지적해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세관에 납부해야 할 수 백억원의 관세를 절감하도록 돕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 하나 모아진 업무 제안이 지금 보다 합리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관세청을 만들었다.
□ FTA로 바쁜 업무…"야근, 주말근무는 내 생활" = 요즘 손 행정관은 서울세관 자유무역협정1과를 이끌고 있다. FTA가 최근 관세청의 주력 업무분야인 만큼 그의 업무도 바쁘다.
기업 컨설팅이나 FTA 설명회, 교육 등은 물론 업체별 인증 관련 업무까지 부서 직원들의 야근과 주말 근무는 다반사라고.
"지난 일요일 할 일이 있어 집인 대전에서 서울로 일요일 아침 일찍 올라와 출근했더니 한 직원이 먼저 와 있더군요. 그러다 조금 있으니 또 한사람, 한사람... 나중에 보니 우리 과에서 여덞 명이나 밀린 일을 하러 나왔습니다. 한·미 FTA 100일 작전 기간 동안 평일에는 자기에게 할당된 중소수출업체 컨설팅 업무를 하고 주말에는 사무실 내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지요."
그는 휴일에 출근하면 젊은 직원들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자녀들이 어릴 때 휴일 근무를 해야 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직원들에게 그는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
"한번은 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FTA컨설팅을 받으려고 세관에 오셨어요. 사장님이 FTA 인증을 받고 가시면서 세관이 이렇게 인증을 친절하게 해주니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FTA가 새로운 관세영역을 개척하는 업무이고 전문적인 업무인 만큼 짧은 시간 힘들게 일했지만 긴 시간 달콤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FTA업무가 끝나면 과 직원들과 워크숍 한번 다녀와야겠어요.(웃음)"
[약력]
▲1962년 ▲세무대(1기) ▲1983년 관세청 입사 ▲서울세관 수입과, 관세청 통관지원국 수출통관과·조사감시국 감시과, 관세평가분류원 품목분류과장, 서울세관 통관국 자유무역협정1과장(現) ▲1996년 공무원 제안 대상 수상(대통령 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