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세 무상보육 놓고 당정 갈등 '고조'

새누리 "예비비로 지원해야" VS 정부 "법령 고쳐야 가능"

새누리당과 정부가 0~2세 무상보육 정책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말 여권은 총선공약으로 0~2세 영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수준을 당초 소득하위 70%에서 전 계층까지 확대했고, 올해 3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시행 4개월 만에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사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당초 이 계획 자체가 정부 주도로 시작된 사업이 아닌 만큼 부족한 재원을 고려해 지원 대상을 축소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새누리당은 이럴 경우 사실상 '공약 파기'나 다름없기 때문에 예비비를 동원해서 재원 부족분을 채우라고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철을 앞두고 표심을 위해 사전에 면밀한 재정 분석 없이 대규모 복지정책을 밀어붙인 여권이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으면서 나중에 '치적'으로 치켜세웠던 정부가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국민들의 불신만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 당정, 무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나? = 현재 문제가 되는 부분은 0~2세 영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 부분이다. 이는 지난 연말 예산심의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확대돼 정부지원 부분은 추가 편성됐지만, 지자체가 부담해야 될 부분에 대해선 각 지자체들이 미처 예산을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전면적인 보육료 지원이라는 소식에, 당초 당정이 예산안을 짜면서 예측에 없었던 6~7만명의 추가수요가 발생하는 악재가 겹치면서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은 6200억원 상당의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새누리당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부분을 중앙정부가 예비비로 충당해 주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재정당국은 지방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면 이에 대한 이자부분을 지원해 주는 방안 정도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가적인 예산편성 없이 가용할 수 있는 예비비 규모는 약 9000억원 정도. 여권은 이 부분을 활용, 영아 무상보육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지자체를 지원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난감해하고 있다.

예비비를 활용해 지자체의 보육료 지원 사업 매칭 분을 전액 지원하는 것이 현행 법 규정 자체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지원된 이후 하반기에 예비비가 투입될 상황이 발생될 경우 재정운용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행 영유아 보육법은 보육 책임을 국가와 지자체가 공동책임지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도 정부와 지자체의 보건·복지사업에 대해 비용분담 부분이 규정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영유아 무상보육사업의 경우 정부의 지자체 기준보조율은 서울 20%, 지방 50%다. 이는 쉽게 말해 서울은 80%, 기타 지방은 50%를 지자체가 부담해야 된다는 의미다.

다만 지자체의 재정자립도 등을 고려해 지원 비율을 10%p 이내에서 더하거나 뺄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여권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예비비로 전액 지원할 경우 보육비 재원분담 원칙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보육료 원 포인트 지원을 위한 시행령을 개정작업도 수반되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특별히 꺼려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이 없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향후 복지사업 이외 재원을 공동 부담해야 하는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무상보육 재검토론을 들고나온 정부의 논리다.

□ 소득 상위 10% 외벌이 가구, 내년 지원중단 검토 = 1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9일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무상보육 확대에 따른 지방재정 부족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내년부터 맞벌이 가구를 제외한 가구 중 소득 상위 10%인 고소득층 가구의 0~2세 자녀에 대한 보육료를 지원하는 않는 방안을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소득하위 70~80% 계층에게는 지금처럼 영아 보육료를 무상 지원하되, 상위 10%까지는 전액 지원중단, 10~30%는 보육료 절반 지원 등의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런 개선안을 바탕으로 오는 19일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공청회 등을 거쳐 8월 초까지 정부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만약 정부안이 통과되면, 외벌이 가구 가운데 상위 10% 이내 고소득 가구는 0~2세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길 경우 그동안 지원받았던 월 28만6000원(2세)~75만5000원(0세)의 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국회 심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총선공약을 사실상 파기해야 되는 여권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올해 시작된 0∼2세 영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지자체 예산부족으로 중단 위기에 처한 것과 관련, "이런 상황까지 간 것에 대해 정부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하루빨리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전문가로 알려진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도 "보조금 비율문제는 지방정부 재량권이 늘어나면서 발생된 문제인데, 무상보육은 이미 약속된 정책인 만큼 당장 중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예비비를 지원해서 지원사업이 중단되는 것은 일단 막고, 이후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