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대선 화두 '경제민주화'…반발 조짐
박재완 장관 "일감몰아주기 이상 제재 곤란"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함과 동시에 '경제민주화' 논의가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자)'를 거대담론으로 제시했던 박 전 비대위원장이 재벌규제를 상징화한 '경제민주화'를 대선 승리를 위한 핵심공약으로 채택한 것은 분명 주목되는 부분이다.
정부와 재계는 야권에서 앞서 제기한 출자총액제한제(이하 출총제)나 금산분리 등 각종 기업규제정책에 이어 박 위원장의 선언이 앞으로 과연 어떤 차별성을 내세우면서 구체화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표심의 향방에 따라 정책의 방향성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이슈를 연말 대선까지 끌고 나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 박근혜 핵심공약으로 부각된 '경제민주화'
지난 10일 대권 도전을 본격 선언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3대 핵심 정책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꼽았다. 여권 내부에선 과도한 재벌규제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박 전 비대위원장이 이보다는 시대흐름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직접적인 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적 불평등도가 상당하다는 인식 하에 출자총액제한제 문제를 비롯해 신규기업 순환출자 금지 등 기업 지분구조 문제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 전 비대위원장은 이날 대선 출마회견에서 재벌 소유구조 문제와 관련 "자기가 투자한 것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기존에 순환 출자된 부분은 기업 판단에 맡기더라도 신규로 하는 부분은 규제가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들이 순환출자 방식을 통해 1% 미만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 경영권을 좌우하는 부분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계의 반발을 우려, 기존 기업에 대해서는 특별히 규제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동시에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날 발표는 사실상 선언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보다 세부적인 정책 내용은 추후 확정 발표될 때까지 지켜봐야한다는 입장이 대세다.
사실 박 전 위원장에 앞선 지난 8일,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9대 입법'을 당론차원에서 발표하면서 경제민주화 논의에 불을 먼저 당겼다.
민주당이 내놓은 방안은 박 전 위원장이 제시한 밑그림과 비교해 매우 구체적이다. 출총제 재도입 방안을 비롯해 금산분리 강화, 법인세 감면 축소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주당은 10대 기업을 대상으로 출총제를 다시 도입하고 계열사 출자 지분 한도를 30%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과 함께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부채율·지분율 규제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한 금산분리(비금융 산업자본의 금융사 보유·설립제한) 강화 차원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지분 한도를 기존 9%에서 4%로 하향 조정하고, 비은행지주회사의 비금융자회사 소유 금지, 비금융주력사의 은행지분 4% 이상 취득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도 제안했다.
세금 측면에서도 대기업 계열사 사이에서 수령된 수입배당금에 대해서는 익금불산입 적용을 배제하고, 계열사간 출자를 위해 차입한 자금에 대한 이자도 손금 산입을 배제하는 등 사실상 세부담을 늘려 계열사 확대를 줄이겠다는 입법안도 제시했다.
야권의 이런 정책들과 비교해 과연 박 전 비대위원장이 경제민주화 정책을 위해 영입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과 함께 어떤 구체적인 정책들을 발표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경쟁적인 정치권 경제민주화, 정부·재계 '반발'
이 같은 정치권의 분위기와 달리 직접적인 제재 당사자인 재계와 기업 친화적인 경제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정부 내부에서는 반발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현상에 대해선 일정 부분 인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 수위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이유이긴 하지만 올해 대선을 앞둔 시점에 여야가 경쟁적으로 정책들을 쏟아내면서 걱정은 더 커져가고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 논의가 심화돼 재벌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선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부분도 고려해야 되며, 수출입으로 먹고 사는 경제구조에서 극단적인 기업 규제 정책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 부분에 대해 큰 걱정을 나타냈다. 그는"자칫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면서 과도한 기업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지난 9일 여수엑스포 관람행사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처럼 외교·통상이 중요한 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할 수 없다"며 "(규제가) 지나치면 외국인 투자 저해와 무역장벽 등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감몰아주기 과세까지는 용인되지만 이보다 더한 조치를 하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 누가 용납하겠나. 무역으로 먹고 살면서 북한식으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할 수는 없다"며 경제민주화 논의가 과도한 기업규제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재계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완화시키자는 정책 의도 자체에는 동의하나 그 수위가 강도가 지나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정책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이 단순히 대기업 규제만을 목적으로 추진될 경우 성장과 투자측면에서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