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금융 위기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화되면서 실물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내수부진과 수출감소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이른바 경기 침체에 따른 '보릿고개'로 한숨만 늘고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어 비가 내려도 우산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151개를 대상으로 '자금사정 긴급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인 39.9%가 '현재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더구나 중소기업 2곳 중 1곳인 50.3%는 '하반기 자금조달이 상반기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답변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조세일보는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는 중소기업 대출문제와 관련해 각계의 의견을 담아 봤다.
이번 '머니&토크'에는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대표, 박춘홍 기업은행 기업고객본부 부행장, 장복섭 금융감독원 중소기업지원실장,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참여했다.
■ 中企 자금난 '가중'…대출문턱에 한숨만 '푹푹' =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은 어느 정도로 심각하며,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출 문턱에 대해서는 어떤 진단들이 내려지고 있을까.
금융감독원이 외부감사 중소기업 1만5331개의 지난해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매출액 및 영업이익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 증가율의 경우 2010년 18.2%에서 2011년 10.4%로 거의 반토막이 났으며, 영업이익 증가율 또한 같은 기간 4.8%에서 4.5%로 악화됐다.
또 연체율은 2009년 1.09%에서 올해 5월 1.94%까지 치솟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대출 문제는 상황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주원 수석연구위원 : "경기가 안 좋은 때에는 수출보다 내수가 더 나쁜 특징이 있다. 앞으로 내수 시장이 수출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며 내수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은 어려울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매출 감소 등으로 자금조달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박춘홍 부행장 :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매출 부진과 악화된 재무제표 탓에 은행으로부터 자금조달에서 더욱더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또한 경기 침체 국면에서 시중은행들은 리스크 관리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고, 중소기업 대출에도 소극적이어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영식 수석연구원 : "경기가 나빠지면 은행들이 대출의 부실을 걱정해, 중소기업 신규대출이나 만기연장의 문턱을 높인다. 경기 둔화로 대기업들의 현금이 부족해지면 은행대출 수요가 커지기 때문에 이 역시 중소기업 자금마련에 악재로 작용한다."
이창선 연구위원 : "자본시장 활용이 용이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자금조달의 80% 이상을 은행대출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은행대출이 막히면 중소기업의 무더기 도산이 우려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경기 둔화가 예상될 때 중소기업 대출부터 줄이는 게 합리적일 수 있지만, 모든 은행이 그렇게 행동하면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져 결국 은행의 건전성까지 무너질 수밖에 없다."
■ 동산담보·기술력 대출, 中企 자금난 해결책 될까 = 금감원에서는 중소기업의 자금지원을 늘리기 위해 동산담보대출 활성화를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중소기업이 보유 중인 유형자산, 재고자산 등을 담보로 활용해 낮은 이자에 대출을 해주는 상품을 준비 중에 있지만, 법원의 등기예규 및 감정평가의 인프라 구축 지연으로 출시가 미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동산담보대출이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긍정적이다. 예전에 담보로 인정받지 못했던 동산들이 법원에 등기되면 대출뿐만 아니라 신용이 보강될 수 있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지만 실제로 동산담보대출이 활성화되려면 보완돼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다.
오석송 대표 : "은행이나 보증기관들이 담보비율을 너무 낮게 책정해, 중소기업에 담보여력이 없다. 신생기업들은 어느 정도 기술이 인정돼도, 담보여력이 부족해 결국 평가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박춘홍 부행장 : "현재 동산에 대한 평가는 감정평가법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대상범위, 감가상각 등 동산의 특성상 평가에 상당한 장애가 있다.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스템 마련과 일관성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김동환 선임연구위원 : "동산이나 지적재산권은 부동산에 비해 가치가 낮거나 변동성이 커 담보로 이용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채권확보도 용이하지 않은 만큼 실효성은 높지 않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은, 평가기법을 정교화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감정평가업계의 전문인증제도를 통해서 평가사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장복섭 실장 : "은행권의 동산담보대출이 활성화되려면 감정평가 전문성의 제고, 중고품 매매시장 육성 등의 인프라 선진화가 필요하다. 도입 초기에는 리스크가 낮은 대출부터 시작해 인프라 확충에 맞춰 상품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 감정평가는 주로 부동산에 집중돼 왔는데, 기계기구, 재고자산 등 동산에 대한 감정평가 능력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하지만, 소유자의 관리 등 차주의 노력도 필요하다."
■ 기술력 있는 中企, 정부정책 확대돼야 = 중소기업들은, 성장가능성이 있으면 신용등급이 다소 낮더라도 도와달라는 바람이다.
오석송 대표 : "정부정책에 따른 은행대출에서 중소기업에 유리한 것은 금리뿐이다. 그 이외에 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담보제공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 단, 정책자금을 장기적으로 대출받는 것은 중소기업에 상당부분 도움이 되고 있어 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실효성 있어 보인다."
홍순영 선임연구위원 : "은행들은 아직까지 안정성 있는 대기업에게만 대출을 해주려고 한다. 중소기업에는 소극적이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에 인센티브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
김동환 선임연구위원 : "실물옵션(Real Option)과 같은 가치평가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 기존의 현금흐름할인법(DCF)은, 중소기업 가치가 변화하면 정확하게 반영되기 곤란하다. 담보대출 제도개선과 라이프사이클(생애주기)에 맞는 자금지원 방법들도 구축돼야 한다. 중소기업의 신용체계를 재정비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같은 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에 금융정책당국의 고민도 깊어 가고 있다.
사실상 대기업과 비교해 중소기업들은 상장이나 회사채 발행이 용이하지 않은 만큼 경기 침체 시 자금난 해소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시 도입된 '패스트트랙'(Fast Track)이나 중소기업의 신용보증 지원확대, 은행대출 만기연장 등은, 국내산업 전체에서 99%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려는 고민이 담겨 있다.
장복섭 실장 : "금감원은 중소기업의 대출실적을 은행별로 모니터링 하고, 연초에 계획했던 33조4000억원의 중소기업 대출이 은행에서 집행되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또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목표를 상향조정하는 등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