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도 몰랐던 '긴급' 사과…직접 작성한 '자필' 사과문
도대체 몇 번째 사과인가…'횟수' 문제에 '사이후이' 논란까지
24일 대통령이 2시에 춘추관에 온다는 소식이 기자들에게 전해진 시각은 1시 20분쯤.
이날은 오전에 있었던 국무회의 외에는 공식 일정이 없었던 터라 춘추관의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마치고 다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시 20분 헐레벌떡 달려온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2시 대통령께서 춘추관 브리핑룸에 오신다"고 알리면서 춘추관은 그야말로 비상사태를 맞이했다.
전혀 예고에 없었던 일정으로 외부에 나가있는 기자들을 급작스레 전화로 호출하는 기자들, 노트북을 들고 브리핑룸으로 뛰어 올라가는 기자들, 브리핑룸에 입장하기 위해 비표를 찾는 기자들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
대변인과 춘추관 행정관들 또한 자리를 비운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취재 지원을 하느라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특히 26일과 27일로 사과 시점을 예상하고 있었던 기자들은 촬영과 중계 문제로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보도를 준비했다.
한편 기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의 사과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대통령은 2008년 쇠고기 파동 당시 두 번의 대국민 사과와 세종시 수정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지난 2월의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측근 비리에 관해 "할 말이 없다"고 발언한 것을 사과를 넣을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너무도 많은 비리와 의혹으로 얼룩진 탓에 대통령의 사과 횟수를 세는 것이 기자들의 업무가 될 정도로 잦은 사과가 이뤄진 탓이었다.
이윽고 2시 정각, 이 대통령이 브리핑룸에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에는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이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근자에 제 가까운 주변에서,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서 국민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로 시작되는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 직후와 맨 마지막의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발언 직후, 두 번에 걸쳐 고개를 숙였다.
3분간의 담화 시간 동안 장내에는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담화문 발표가 끝난 후 이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바로 퇴장했다.
대국민 사과가 끝나자 기자들은 다시금 이 대통령이 언급한 '사이후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사이후이(死而後已), 죽기전에는 멈추지 않겠다는 천명의 자세를 뜻한다는 이 성어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들어본 사람이 적을 정도로 낯선 성어였다. 이 성어는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사과문도 직접 작성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사과의 내용과 시점을 모두 직접 결정했다. 최금락 홍보수석도 "대통령이 입장 표명을 할 것은 알았지만, 언제 할지는 정말 몰랐다"면서 "오후 1시 15분에 연락을 주셨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박정하 대변인도 사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사과의 시점과 내용은 모두 혼자 결정하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고심중이라는 사실만 알았지, 그 외에 전혀 힌트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직접 사과의 내용과 방식, 시점까지 결정한 것은 '진정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난 사과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두 번이나 고개를 숙인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냉랭한 편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대통령의 사과문을 보면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선 사과하고 있지만, 자신의 인사 실책과 친인척 관리 소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특히 이 수수한 금품이 대선자금으로 쓰였는지의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진 부분이 없어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에도, 대통령의 사과에도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통령은 사과를 하는 와중에도 "재산을 환원하고, 급여를 기부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성과도 거두었다"고 자기 업적을 늘어 놓았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다"며 용서를 비는 사람이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관망하는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하는 것도 지난 사과와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만 국민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과였던 것은 지난 사과들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이로서 지난 3일 이상득 전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면서부터 불거졌던 이 대통령의 사과 시점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런던올림픽과 여름휴가 전에 사과를 해야 한다는 숙제는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대통령은 런던올림픽을 즐겁게 응원하고, 여름휴가를 마음편히 보낼 수 있을까.
민주통합당 문병호 의원은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특검법'을 발의했고, 여야는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국정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