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및 조작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증권업계에서 시작된 금리담합 불똥이 은행권으로 옮겨 붙으면서 한국판 '리보사태'(런던은행간 금리 조작사건)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대출자와 시민단체는 물론 재계, 정치권까지 철저한 진상 조사와 함께 은행의 부당수익 반납을 촉구하고 나섰다. CD금리 연동으로 대출을 받은 가계는 420만에 달한다. 만에 하나 담합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이들이 집단소송에 나설 경우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우려된다.
CD(Certificate of Deposit)는 시장에서 양도가 가능한 정기예금증서다. 만기 전에 다른 투자자에게 되팔 수 있고, 단기간에 정기예금수준의 이자를 받으면서 필요한 때 매매를 통해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이 큰 이점이다.
은행들은 CD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CD금리는 주요한 단기자금 조달금리가 된다. 이 CD금리가 일반에 주목을 받는 것은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적용되는 금리는 'CD금리±알파'가 거의 공식이다. CD금리가 올라가면 주택담보대출금리가 따라서 올라가 이자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CD금리에 대한 의구심은 '시중금리는 내려가도 대출금리는 내려가지 않는 기현상'에서 촉발됐다. CD금리는 지난 4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 연 3.54%로 석 달째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 사이 국고채 금리는 3.50%에서 3.19%로 0.31%포인트나 떨어졌다.
은행권 전체 대출 1080조원 가운데 30%인 324조원이 CD금리에 연동된 변동금리 대출이고 보면 은행들이 CD금리를 왜곡해 0.10%포인트만 높게 유지했어도 연간 3240억원의 대출고객 피해와 은행의 이익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된다.
은행들이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계열 증권사를 통해 담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9일 조사에 나서자 금융사 한 곳이 담합한 사실을 리니언시(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하는 대가로 과징금을 감면 받는 제도)로 자진 신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공정위는 금융사의 자금부서장 간담회를 담합창구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CD금리는 담합을 통해 조작이 가능한 것일까. 조사를 받은 증권사들은 '담합이 가능하더라도 얻을 게 없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CD금리는 금융투자협회가 반기별로 거래량이 많은 10개 증권사를 선정해 이들이 제시한 3개월물 CD금리 가운데 최고가와 최저가를 제외한 8개 증권사의 금리를 평균해 산출한다. 금투협은 지난 94년부터 18년째 이 방식으로 CD기준금리를 결정하고 있다.
CD금리가 최근 들어 고정된 것은 CD 발행과 유통 등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이뤄진 현상일 뿐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고 금융권은 항변한다. 현재 CD 잔고는 당국이 2010년 예대율 기준에서 CD를 빼면서 100조원에서 27조원으로 급감했고, 그 유통은 대부분 창구에서 개인들에게 소화되고 기관 간 시장에서 유통되는 규모는 1조7000억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증권사들은 "거래량이 무의미할 정도로 적은 상황에서 금리를 입력해야 했고, 거래가 없으니 전날 금리를 계속해서 입력하는 경우가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한다. 거래가 없는 데도 시중금리에 맞춰 CD금리를 낮춘다면 그야말로 조작이 아니겠느냐고 항변한다.
사실 CD를 판매, 유통만 하는 증권사들이 담합을 '주도'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CD금리에 의존하지만 CD금리±알파의 형태로 금리를 가감할 수 있다. 증권사들이 담합해 금리를 조작한다 해도 적용은 은행의 몫이기 때문이다.
금리 왜곡은 담합이나 조작이 아닌, 거래부진에 따른 제도적, 구조적 문제라는 얘기다.
증권사들은 거래 부족에 따른 금리 왜곡 가능성을 고려해 금투협과 금감원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2조원대의 CD 유통시장 금리에 320조원이 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동돼 있는 시스템은 분명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그나마도 시장금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식물금리'여서 이를 대체할 단기기준금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금껏 있어왔다.
2009년 국회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금융 당국은 지난 4년간 나름대로 대안을 모색해오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주축이 된 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켰다.
CD금리가 단기지표로 적절치 않다는 인식에 오래전부터 공감하면서도 대체지표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금융당국 간 밥그릇싸움에다 증권사와 은행들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7개 시중은행이 CD를 발행하면서 내놓은 발행금리를 10개 증권사가 평가해 적정 금리를 고시하는 과정에서 담합의 개연성은 있을 수 있다. 금리 결정권을 가진 증권사가 금융지주회사인 경우 계열사 은행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지 않은 증권사도 결국 '고객'인 은행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권사는 CD 금리 관련 4450조원 규모의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곳이어서 이해관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통화안정증권 금리가 한 대안으로 검토되자 금리 결정권을 한국은행에 빼앗기게 된다고 은행권은 벌써부터 펄쩍 뛴다. CD금리의 문제점을 알고도 '뒷짐'만 지고 있는 금융당국, 금리 결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금융기관들 사이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이자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금융소비자원은 연간 1조 6000억원의 추가부담 피해를 주장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의혹 조사에 대해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이 담합했을 리도, 담합의 실익도 없다며 금융권을 감싸고 나섰다. 공정위가 금융당국과 사전 협의 없이 조사에 나선 데 따른 불편한 심기도 읽혀진다. 금융당국과 사전 협의를 했다가 정보가 유출되면 금융사들이 증거 자료를 은닉할 수 있어 불가피했다는 게 공정위의 변이다.
CD 금리와 함께 대출금리 기준으로 쓰이는 코리보(Koribor)와 코픽스(Cofix)도 조작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공정위는 조사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담합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CD금리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 시장에도 큰 혼란이 우려된다.
영국의 리보사태는 한 은행이 차입금리를 일부러 낮춰 자금조달사정의 어려움을 은폐하려한 데서 빚어졌다. 증권사가 은행과의 암묵적 합의로 CD금리를 조작해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은 국민들과 중소기업에 이자부담을 높게 지웠다면 지난해 금융권 탐욕을 규탄했던 '월가 점령시위'의 한국판이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모든 의혹은 금융경제와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데서 비롯된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의 리보금리조작, 홍콩상하이은행의 멕시코 마약자금세탁, 게다가 한국의 CD금리 담합 의혹 등등 나라 안팎으로 금융회사들의 수난시대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