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가 이처럼 부정한 방법을 동원에 돈 세탁을 한 이유는, 자신의 재산을 물려받는 자녀들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세청에 꼬리를 잡혔다. A씨의 자녀들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아 1515억원의 상속세를 추징당했고, 덤으로(?) 사법기관에 고발까지 당했다.
#. 중견기업 사주 B씨도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이 회사를 통해 홍콩 상장법인에 거액을 우회투자한 후 무려 140억원의 돈을 벌어들였다. B씨는 다시 이 돈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홍콩은행의 해외펀드에 넣어두고 69억원의 이자소득 등을 얻었다.
당연히,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B씨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그가 내지 않은 152억원의 소득세를 국고로 환수했다.
국세청은 지난 2010년부터 역외탈세에 대한 세원관리를 대폭 강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아예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4월 '선박왕' 시도상선 권혁 회장의 초대형 탈세를 잡아내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비록 패착으로 귀결됐지만, 지난해 '구리왕' 차용규씨에 대한 세무조사도 역외탈세 엄단을 위해 의욕적으로 뛰어든 세무조사였다. 이처럼 국세청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역외탈세 세무조사를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괄목할 만한 실적도 올렸다.
역외탈세 세무조사 추징액은 2008년 1503억원(조사건수 30건) 2009년 1801억원(조사건수 54건)에서 2010년 5019억원(조사건수 95건)으로 뛰어올랐고, 지난해에는 9637억원(조사건수 156건)으로 두 배 가까이 신장됐다.
올해 상반기에도 벌써 4897억원의 추징액(조사건수 105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한 숫자가 증명해 주는 것은,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 헌법에 명시된 납세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역외탈세를 감행하는 부도덕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어두운 '현실'이다.
◆ 척박한 환경, 역외탈세 세무조사 어려움 겪는 국세청
역외탈세 세무조사를 통해 눈에 띄는 실적을 올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역외탈세 세무조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척박'하다는 것이 국세청의 의견. 역외탈세 시도 자체가 지능적이고 교묘한데다, 복잡한 루트를 타고 흐르면서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세청 안팎에서는 역외탈세 세무조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정보'가 필요하지만 그 양질의 정보는 '공짜'로 얻어낼 수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독일 국세청이 리히텐슈타인 은행에 비밀계좌를 계설하고 소득을 숨겨둔 자국 국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 및 거액의 세금을 추징할 수 있었던 것도 500만 유로(한화 약 69억원)의 돈을 정체불명의 정보원에게 쥐어주고 얻어낸 CD 1장이 단초가 됐다.
하지만 현재 국세청의 지갑에는 이 같은 양질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실탄'이 채워져 있지 않은 형편이다.
지난해 국세청은 우여곡절 끝에 78억원의 역외탈세 예산을 배정 받아 올해 쓰고 있지만, 실제로 정보수집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이 중 20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예산이 해외로 파견한 정보원(해외세정연구관)들의 체제비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보수집에 필요한 비용(예산)을 좀 더 늘려줘야 한다는 것이 국세청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세청은 올해 역외탈세 예산 증액을 국회에 요청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특히 정보수집 비용으로 충당할 예산을 현재(20억원)보다 2배 이상 늘리도록 할 계획이다.
◆ '돋보기' 든 국세청…"구석구석, 샅샅이 본다"
국세청은 고급정보 구입 등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역외탈세 정보수집을 위해 '인적네트워크'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간접적인 수단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국세청은 서울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산하에 10여명 규모의 비밀조직을 만들어 이들을 전 세계 각지로 파견, 현장에서 생산되는 각종 역외탈세 관련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다.
이들의 활동제약과 외교분쟁 소지를 막기 위해 이 조직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렸다.
이와 함께 국세청은 지방국세청과 주요 일선세무서에 '국제세원정보수집전담반'을 편성, 활발한 정보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국제세원정보수집전담반은 146개반(1반 2명) 295명 규모로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은밀한 방법으로 이뤄지는 역외탈세의 특성상 과세인프라로 포착되지 않는 탈세 차단을 위해서는 정보활동의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국세청은 지난해 첫 도입된 10억원 이상 해외금융계좌 신고제 등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제도개선을 추진, 제도권을 통해 얻어지는 각종 정보들도 역외탈세 세무조사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한편 국세청의 역외탈세 세무조사와 관련해 '성과주의'에 지나치게 집착, 무리한 과세를 시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국세청이 '구리왕' 차용규씨에 대해 실시한 세무조사는, 결국 한 푼의 세금도 징수하지 못한 채 실패한 조사로 끝났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 칼날이, 역외탈세 시도 자체를 더욱 음성화하거나 일부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적포기'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세청이 역외탈세 세무조사 행정을 강력하게 집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실시해야 하는 이유 또한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