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삼성 간 스마트폰 특허전쟁이 8월 폭염의 열기만큼 뜨겁다.
애플이 지난해 4월15일 특허침해혐의로 삼성전자를 미국 새너제이(San Jose) 캘리포니아 연방 북부지방법원에 제소함으로써 촉발된 '세기의 특허전쟁'은 유럽과 호주 등지로 전선(戰線)을 확대하며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마침내 애플의 홈그라운드에서 본 라운드 대회전을 맞았다.
지난달 30일부터 캘리포니아 북부지법에서 시작된 본안소송은 4주간 진행되며 배심원 판정으로 어느 한 쪽의 승패가 가려진다. 물론 패자는 항소할 수 있고, 소송에 패하더라도 당장 자사 제품판매가 중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승패 여하는 해당 제품과 그 기업에 대한 소비자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스마트폰 두 거인에게는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결전이다.
본안소송이 애플의 본고장에서 열리고, 갤럭시탭10.1 가처분심리에서 애플 손을 들어준 루시 고 판사가 심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삼성이 다소 불리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특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배심원들이 판정한다는 점에서 애플의 홈그라운드 이점이 점쳐지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글로벌 소송전에서 독일과 네델란드가 애플 손을 들어주었고, 호주는 '갤럭시탭10.1' 판매를 금지시켰다가 재허용했고 영국법원은 애플에게 삼성의 갤럭시탭이 디자인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지토록 명령하기도 했다.
배심원단은 여자 3명, 남자 7명으로 구성됐다. 애플의 해럴드 매켈히니 변호사는 모두(冒頭)변론에서 2007년 애플의 아이폰 발표 이후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디자인이 바뀌었다는 슬라이드를 보이며 "삼성은 모든 것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삼성 고위 임원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겉과 속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는 위기의식을 느껴 아이폰을 기준으로 제품을 만들 것을 결정했다"면서 그 증거로 '애플 제품의 디자인은 아름답고 하드웨어는 복제가 쉽다'고 적혀있는 삼성전자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의 찰스 버호븐 변호사는 "아이폰 출시 전에도 직사각형에 모서리가 둥근 형태의 다양한 스마트폰이 있었다"고 강조하고 "경쟁사 제품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통상적인 경영활동이며 아이폰도 소니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삼성은 "지난 1991년부터 이동통신 기술을 연구 발전시켜 오늘날의 스마트폰 기술 대부분을 개발했다"며 "삼성의 특허기술 혜택 없이는 애플은 단 한 대의 아이폰도 팔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반박했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로 25억2500만 달러(약 2조8500억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삼성전자가 디자인 특허를 사용할 때마다 단말기당 90∼100달러의 사용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는 애플이 자사의 통신특허를 침해했다며 그 대가로 기기 가격의 2.4%를 로열티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건 패소하면 애써 번 돈을 경쟁사에 갖다 바쳐야 하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다.
소송 1주차부터 양측의 공방은 가히 사생결단이다. 승패의 핵심은 배심원의 마음을 잡는 일이다. 삼성은 애플의 디자인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증거를 배심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니를 닮은 제품을 디자인했다"는 애플 전 디자이너의 발언 문건을 증거로 채택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했다.
제출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판사가 이를 기각하자 삼성은 언론에 이 자료를 공개하는 강수(强手)를 동원하며 '장외전(場外戰)'도 불사하고 있다. 이 증거가 삼성이 아이폰의 디자인을 베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문건"이라며 "재판이 공정성을 얻으려면 배심원이 사건의 모든 증거에 근거해 결론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삼성측은 주장했다.
애플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내용의 언론 공개는 "법원에 대한 모독이고, 배심원을 오염시키려는 것"이라며 삼성전자에 대한 즉각 제재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고 판사는 삼성측에 일단 경고를 발하고, 배심원들이 이 기사를 읽지 않아 평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애플의 요청을 기각했다.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인 2006년 삼성전자가 'F700' 등 아이폰과 유사한 디자인을 이미 개발했다는 사실자료, 또 아이패드 원천 디자인이 독창적이지 않다며 삼성이 제기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에 등장하는 뉴스패드(Newspad)에 관한 자료들도 애플특허 무효를 주장하는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배제됐다.
소송초반 전세는 애플에게 유리한 국면이지만 두 거인간 특허전쟁은 무모한 싸움이며, 시간과 돈 낭비이고 결국 변호사들만 좋은 일 시킨다는 지적 또한 따갑다. 애플은 주요부품을 삼성에 의존하고 있고, 둘 다 법적 조치를 싫어한다면서도 소송에서 물러설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감정과 자존심 대결로 치닫는 느낌마저 준다.
삼성이 애플을 '베꼈'는가, 아니면 애플이 단순히 삼성디자인에 '영향을 준' 것인가? '베끼는 것'과 '영향을 받은 것' 간의 경계는 현실적으로 애매모호하다. '애플이 소니디자인을 닮았다'고 삼성은 역공을 펴지만 이 역시 베낀 것인지, 단순히 영향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애플은 '디자인은 캘리포니아산(産)' (designed in California)으로 자부할 정도의 디자인 명가다. 기술적 돌파구보다는 소비자경험을 바탕으로 사용하기 쉽고 간편한 아기자기한 혁신들로 뭔가 차이를 느끼게 만든다. 스티브 잡스가 취득한 특허 359건 가운데 86%가 디자인특허다.
문제는 디자인특허가 여타 엔지니어링 특허와는 달리 주관적 측면이 강하고, 경쟁회사들은 '화장고치는 수준'의 변화로 쉽게 특허침해를 피해 갈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애플디자인은 뭔가 남다른 점이 있지만 이 차이점이 법정에서 보호받기는 쉽지 않다는 데 디자인특허의 본질적 문제가 있다.
디자인 속성상 어디까지가 독창적인 것이고, 어떤 컨셉을 특허로 인정해 줄만한 것(patent-worthy)인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 "훌륭한 예술가는 남의 것을 빌리지만(borrow)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steal)"고 하지 않았던가.
애플의 매켈히니 변호사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베테랑이고, 삼성의 버호븐변호사는 '떠오르는 별'로 알려져 있다. 막대한 소송비용에도 불구하고 승패는 법리보다는 일반인 배심원들의 '상식'적 판단으로 결판난다는 데 이 소송의 무모함과 우스꽝스런 측면이 있다.
소송과정에서 서로를 깎아내리고, 영업비밀 등 '속살'을 드러내며 서로를 파괴하는 오기싸움, 게다가 물고 뜯는 소송관행이 신제품개발노력을 저해하고 막대한 소송비용이 제품가격상승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이른바 '세기의 특허전쟁', 이는 과연 누굴 위한 전쟁인가.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