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물리적 충돌 직전의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의 센카쿠 국유화조치에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반일감정이 폭발하면서 연일 반일시위가 이어지고, 중국 내 일본 기업의 공장과 상점·식당 등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일시 휴업하는 사태를 빚고 있다.
대규모 집회를 좀처럼 용인하지 않는 중국 정부도 공공연히 시위를 조장하며 일본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중국 해양감시선의 '주권시위'에다, 동해함대의 동중국해 모의 전투훈련, 게다가 센카쿠 해역에서 중국어선 1000척이 일본순시선에 맞서 대규모 '조업시위'에 나서는 등 양국 간 해양충돌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애국은 범죄가 아니다'는 격렬한 구호 속에 동중국해의 '삭막한 바위섬에 벌거벗은 민족주의'(Barren rocks, barren nationalism)가 난무하고 있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이후 40년 만의 최대 위기다.
갈등의 직접적 원인은 일본정부가 제공했다. 일본정부는 지난 3일 각의에서 센카쿠 제도의 5개 무인도 가운데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3개 섬을 사들이기로 하고 섬 소유자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이미 센카쿠를 실효지배하고 있다. 국유화를 한다고 더 나아지는 것은 없지만 노다 총리는 센카쿠를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유화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도쿄도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이들 3개 섬을 도쿄도가 매입하겠다며 국민 상대로 모금에 나서 13억엔(약 185억원) 이상을 모았다. 도쿄도가 이를 매입해 실효지배를 공격적으로 강화할 경우 중국과의 갈등이 증폭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차라리 정부가 사들여 국유화해 실효지배 강화를 유보하는 것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은 국유화조치는 그 방식이 어떻던 불법 ․ 무효라고 극력 반발했다. 그동안 양국은 각자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도 극단적인 충돌은 피해 왔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국유화를 실행에 옮기자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섬이 자국의 영토임을 규정하는 법적 조치인 영해기선 설정 선포로 맞섰다.
센카쿠 수역의 영유권을 공식화하고 영해 12해리, 경제수역 200해리, 최대 350해리에 달하는 대륙붕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법적 근거를 갖추었다. 해양 감시선 급파는 물론이고 경제 보복조치와 함께 일본 상품 불매 운동까지 벌일 태세다. 일본의 국유화조치가 '울고 싶었던 중국의 뺨을 때려준' 격이다.
센카쿠는 명나라 때부터 중국 땅이었으나 일본이 청일전쟁 때 강점했고, 2차 대전 후 미일 강화조약으로 섬을 반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1971년 관할권을 일본에 넘기는 바람에 일본의 실효지배로 이어졌다는 게 중국 측 주장이다.
반면 일본은 1884년에 일본인이 이 섬을 '발견'했고, 1885년부터 일본정부가 측량과 조사를 반복해 1895년 1월 14일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한다. 센카쿠는 무인도였고, 중
국정부의 통제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내세운다.
중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협상을 하던 1972년 덩샤오핑 국가주석은 "우리세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지혜가 없으니 다음세대로 문제를 넘기자"는 데 동의했다.
그러다 센카쿠 인근에서 가스전과 유전이 발견되고, 중국이 개발 중인 가스전이 일본이 실효지배중인 센카쿠 해역에까지 뻗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국은 이전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영해법을 발표하고, 해양조사선을 파견해 자원 탐사를 실시하고, 인민해방군 이 인근 해역에서 해상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1997년 11월 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양국 정부 간 분쟁은 봉합되는 듯했으나 이후로는 양측 민간단체들이 접근 또는 상륙을 시도해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켜 왔다.
이번 중-일 갈등의 배경에는 각기 '국내용 정치'가 한 몫을 했다. 10월 새 지도부 출범을 앞둔 중국은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국내문제를 희석시킬 수 있는 카드로 보고 강력한 영토주권 수호 의지 표명으로 중국민의 애국정서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노다 총리의 센카쿠 국유화 역시 총선을 앞둔 정치적 고려가 강했다. 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잠재적 경쟁자들이 우경화발언을 쏟아내는 가운데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 이시하라 지사가 센카쿠 매입의지로 존재감을 높여가자 이를 제압하듯 센카쿠 국유화를 결행했다.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엄중히 경고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극단적 대결로 치달을 것인가. 중국이 군사력을 쓰면 당장 경제발전이 장애를 받고, 미일동맹 강화의 빌미를 줄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도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영토분쟁 확대는 중국입장에서 부담이다. 아시아 복귀 전략을 내 건 미국에 개입 명분을 강화시켜 줄 수도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5세대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경우 자칫 화살이 자국 정치권으로 향할 수 있다. 시위는 용인하되 보도는 통제하는 중국당국의 수위조절도 이 때문이다. 중국당국의 사태 '관리능력'이 국제적인 주목꺼리다.
일본에게 중국은 수출 점유율 20%의 최대 무역국이자, 생산비용 절감과 부품을 공급해 주는 제조기지다. 영토분쟁이 악화되면 중국과 대만의 공조가 가시화될 수 있고 희토류 수출 금지 같은 경제 보복도 우려된다. 일본의 대표적 경제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22일 중국에 건너가기로 하는 등 일본 쪽 사정도 다급하다.
일본이 이런 경제적 위험을 무릅쓸 만큼 센카쿠 국유화가 절박한 국가적 과제였느냐는 일본 내 비판도 쏟아진다. 정치인과 관료가 자신과 조직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훼손하는 '조직의 폭주(暴走)'가 과거에도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질책 또한 따갑다.
동아시아 영토분쟁은 잠재적으로 '억제된 충돌'의 양상을 띠고 있다. 어느 일방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자기영토라고 주장하며 물리적 충돌은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정치적 의도에서 국민들의 애국정서를 자극해 벼랑 끝 대치로 몰아가는 정치적 모험은 국가적 재앙을 부를 뿐이다. 국내정치 차원을 넘어 동중국해 및 동아시아 평화공존을 담보하는 글로벌 리더십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은 독도-다케시마 분쟁과 닮은꼴이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한국, 일본 양국은 각기 자국영토라고 주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전격방문 역시 노다 총리의 센카쿠국유화와 빼닮았다. 한-일 간 독도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중-일 센카쿠 갈등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