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제각각 '혼선'…선진국 대체로 채무자가 부담
최근 은행과 소비자 사이에 주택담보대출 과정에서 체결한 '근저당권' 설정비용 문제와 관련 법원별로 각기 다른 판결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추가적인 분쟁발생을 줄이기 위해 관련 규정을 명문으로 법제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국회 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김남영 조사관은 17일 발표한 '근저당권 설정비용 부담 문제와 향후 과제'라는 이슈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최근 근저당권 설정비용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이 문제가 다수의 국민들이 은행과 체결한 주택담보대출 계약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등을 위해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인지세, 등록세, 교육세, 국민주택채권매입비, 등기신청수수료, 법무사수수료, 감정평가수수료 등 각종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포괄해 '근저당권 설정비용'으로 일컫는다.
근저당권 설정비용은 보통 대출금 1억원 기준으로 약 70만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출금액이 더 커질수록 부담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보고서에 따르면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주체가 은행인지, 소비자인지 판단하는 문제는 현재 법조계 내부에서도 의견대립이 있는 이슈다.
법조계 내부에선 특정한 약정이 없으면 근저당 설정비용을 채무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른바 '채무자부담설'과 등기비용, 등록세, 취득세 등은 담보권자인 채권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채권자부담설'이 양립하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그동안 담보권 설정비용 문제와 관련해 총 4건의 판결이 나왔는데, 저당권 설정비용은 채무자가 부담하는 것이 옳다는 결정과 양도담보 설정비용(등록비용, 등록세세, 취득세)은 채권자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두 가지 판결이 나왔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이런 판례들은 저당권 설정과 양도담보 설정에 따라 비용부담 주체가 다르다는 확고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하긴 어렵다"며 구체적인 사건별로 다른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8년 인지세는 금융기관과 채무자가 각각 50%씩 부담하고, 근저당권 설정비용은 은행이, 말소비용은 채무자 또는 설정자가 부담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표준약관을 제정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행정기관 처분의 위법성 논란까지 가게 된 판결에서 최종적으로 공정위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온 뒤로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부담한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법조계 내부의 의견대립을 반영하듯, 관련 재판을 담당한 1심 재판부는 각기 다른 판결을 내린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9월 인천지방법원은 금융기관이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채무자에게 반환하라고 판시했지만, 6000명의 소비자가 집단소송을 낸 서울지방법원 판결에서는 은행이 근저당권 설정비용 반환의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법원 내부에서도 그동안 은행이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소비자가에 전가했던 관행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 불공정약관이라는 해석과 채무자의 선택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론이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프랑스의 경우 민법에 관련 규정을 명시해 특약이 없는 경우 근저당비 설정권을 채무자가 부담하되, 특정 기간 내 등기를 위한 매매계약에 있어서는 매수자가 부담토록 하고 있다.
이외 일본,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들은 명문의 규정이 없지만, 일반적인 담보권 설정비용은 채무자가 부담토록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향후 근저당권 설정비와 관련된 집단 소송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향후비용부담 주체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도록 명문 법 규정을 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시중 금융기관들이 표준약관 개정에 따른 비용 증가분을 금리인상을 통해 벌충할 가능성도 있어, 금융당국과 공정위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