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수 김포대 교수, '세종대왕 조세정책' 등 출간
한국 조세학 뿌리 찾기 첫 시도…학문적 가치도 높아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한글의 근간이 된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이라 일컫는 경국대전을 편찬하며 500년 조선시대의 황금기를 열어 제친 임금이라고 알고 있다면 반은 알고 나머지 반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이는 세종대왕이 당시 조선의 조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백성을 위한 진정한 마음으로 조세정책을 시행하고자 했고, 이에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조세의 과학화와 선진화를 이뤘냈다는 사실이 후일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까닭이다.
오기수 김포대학교 교수(사진)는 국내에서 사실상 저평가가 돼 온 한국 조세역사의 뿌리를 찾는 일을 10여년이 넘도록 집념으로 추진하며 얻은 결과물을 토대로 최근 「조선시대의 조세법」과 「세종대왕의 조세정책」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출간했다.
이 책들의 출간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동안 세무학이 실무 위주의 학문으로 진행해 온 상황에서 사실상 첫번째로 '한국 조세의 뿌리 찾기'를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지난 1983년 서울시립대학교의 학부과정에 세무학과가 신설된 이후 수많은 대학에서 유사학과가 개설되고 세무관련 전문대학원까지 2000년에 개원했지만 조세법제사 등 세무변천사론에 해당하는 과목을 개설하거나 강의한 곳은 전무한 상황이다.
오 교수는 "우리가 흔히 쓰는 '세금'이라는 단어는 과거 일본이 한국과 맺은 강화도 조약 이후 그해 7월 '조선 여러 항구들에서 일본인들의 무역규칙'을 체결하며 나온 일본식 용어이며, 당시 우리는 '세전'이라고 불렀다"며 “우리나라의 조세사를 연구하다가 만난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며, 그 분이 만들어 놓고자 했던 조세제도의 철학은 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의 조세법」과 「세종대왕의 조세정책」은 한마디로 한국 조세학의 족보를 찾아 가는 과정이다.
오 교수가 우리나라의 조세법제사에 대한 '학술적 이해 부족'을 통감하면서 연구를 시작해 지난 2001년 한국세무학회의 '세무학연구'에 첫번째 논문 '조선전기의 전세 감면에 관한 연구'를 기고한 이후 10여년을 넘게 추적해 왔던 조선시대 세제사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이 이 두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 교수는 "조선은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법치주의 이념과 사상에 기반을 두고 조세를 법에 따라 징수하려 했다"며 "이러한 사상은 세종대왕의 조세정책에서 볼 수 있는데 세종실록에 따르면 최종 공법(貢法)은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려 세종 26년 11월에 완성됐다"고 책에 기술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공법 완성을 위해 과거시험에 공법 문제를 출제해 젊은 유생들에게 의견을 듣고, 조선 백성 4분의 1이 참여해 국민투표라 할 수 있는 공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또 11년 동안 대신들과 논쟁해 민주시대보다도 더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조세법인 공법을 완성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세종대왕의 공법이 오늘날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세계 조세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과학적인 세금 부과를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백성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우선 세종대왕은 공평한 조세징수를 위해 주척(周尺)을 사용해 전지(田地)를 측량하도록 하고, 조세 징수 과정에서 관리들이 재량권을 남용할 것을 우려해 측우기를 만들어 강우량을 측정해 반영했다.
또 관리들이 눈속임을 할 수 없도록 ‘말’과 ‘되’를 표준화하도록 해 곡물의 현물납세에 따른 부정부패를 근절토록 했으며, 지역별로 명확한 조세 부과를 위해 '세종실록지리지'를 편찬해 행정구역별 인구 실태와 전지의 결수 및 비옥도 등을 파악토록 했다.
더불어 전품의 전국적인 균등화를 위해 '농사직설'을 편찬케 해 전국적으로 농업생산력을 향상시켜 균등한 조세의 부과를 돕도록 배려한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조선시대 조세 문제가 백성들의 삶에 가장 큰 고통이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세종대왕이 공법을 통해 이룬 업적은 세계적인 업적이며 유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평가.
오 교수는 "우리나라 조세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고 조세를 논하고 가르치는 것은 조세와 관련된 우리의 사상과 문화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세무학을 비롯한 조세 관련 학문이 그저 세금을 징수하거나 납부할 세액을 계산하는 산술가를 양성하는 학문으로 전락하게 한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이 책들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 있는 조세법제사의 학문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세계화하길 바란다"며 "특히 세종대왕의 조세사상과 조세정책을 통해 현대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조세의 중요성과 조세법의 입법 절차의 민주화에 대한 가르침을 알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