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0만명의 국민들이 선택한 민주통합당은 대선을 치렀던 몇 달동안 새 정치를 외쳤지만, 그 새 정치를 무너뜨린 것은 단 며칠 밖에 걸리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정치권의 최대 이벤트였던 대선이 끝난 지 이제 보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보름 동안 우리가 목도한 것은 민주당이 그렇게 타파해야 한다고 외치던 '구태정치'였습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해를 넘겨 예산안을 처리하고, 쪽지 예산이 난무하고, 당내 힘있는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것은 우리가 늘 염증을 느끼던 정치권의 모습이었습니다.
'새 정치'가 그저 선거용 구호에 불과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식어버린 변화와 쇄신의 열기는 우리에게 씁쓸한 뒷맛만 남기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정치권의 행태를 보고 씁쓸함을 느낀 적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라며 넘길 수도 있고, 그래서 '안철수 현상'이 생겨난 것 아니냐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예산안을 처리한 후의 민주당의 모습은 씁쓸하다 못해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는 것은 왜일까요.
박기춘 원내대표가 3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의원들이 지역구를 챙기기 위해서 경쟁할 수 있다. 무조건 매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한 말과 "당의 총의로 비대위원장을 탄생시키는 것 자체가 혁신의 시작"이라는 발언. 민주당 상임고문단이 "비대위원장은 새 지도부가 뽑히기 전까지 징검다리 역할, 당 관리 역할만 하는 것"이라고 한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백억원씩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챙긴 의원들 명단에는 박 원내대표의 이름도 포함됐습니다. 물론 정말 지역을 위해 필요한 예산일 수는 있지만 왜 하필이면 원내대표를 지내는 의원의 지역구 예산은 많이 책정되고 초선 의원들의 지역구의 예산은 '지역구 챙긴 의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을지 궁금해집니다.
무조건 이를 매도할 수 없다는 박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궁금증을 참아야 하는 것일까요.
또 비대위원장을 선출해 당을 혁신하겠다고 말했던 민주당이 지금와서는 말을 바꿔 비대위원장은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가 탄생할 때까지 관리 역할만 하라고 합니다. 비대위원장이 철저한 대선 평가를 한 후, 당을 쇄신시켜야 한다는 처음의 그 각오는 며칠 만에 '관리형 비대위원장'으로 둔갑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디도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당선인이 보여줬던 행보는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관리자의 역할에만 국한됐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렇지만 우선 박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상임고문단을 만난데 이어 원내대표를 역임했던 사람들, 초선 의원들을 만나겠다고 하니, 결론이 어떻게 날지 기다려봐야 할텐데요.
바로 이 대목에서 궁금한 점이 또 생깁니다. 민주당에는 의원들만 존재하는 곳인지 말입니다. 민주당의 당원은 300만명이라는데 당원들의 목소리는 어디서 듣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어디에도 당원은 보이지도 않는데, 하물며 국민들의 목소리를 어디서 어떻게 들을 것인지 궁금해 집니다.
몇년 전, 당내 한 전문위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그 전문위원은 인터뷰를 거절하며 "의원들보다 내가 돋보이면 안 된다. 우리 당은 의원이 아니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며 사정하듯 말했었습니다.
새 정치를 하겠다던 민주당.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혁신하겠다고 말하는 민주당.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했던 민주당. 그런 민주당을 1470만명이라는 국민들이 선택해 더욱 마음이 아파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