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한 이후 농협중앙회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신 회장은 16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농협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나는 문제만 던졌을 뿐이고 법과 제도 개선은 정부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농협금융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독립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그가 말한 제도적 보완은 지난해 3월 농협이 신용과 경제부문을 분리하는 사업구조개편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다.
농협금융은 금융지주회사법을 따라 실리를 추구해야 하고, 농협중앙회는 농협법에 근거해 협동조합의 본분을 지켜나가야 하는데 목적이 다른 만큼 의견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한 것.
대주주로서 '갑'의 위치에 있는 농협중앙회와 '을'의 입장에서 금융을 태생부터 다른 협동조합의 논리로 풀어가야 하는 농협금융의 난맥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협금융 회장 자리는 무덤으로 통했다.
신충식 농협은행장이 지주회장을 겸임하다가 급작스럽게 3개월만에 중도하차하고, 신동규 회장이 취임 11개월만에 지휘봉을 내려 놓아야 했던 것도 사업구조개편에 따른 금융지주체제의 실험이 번번이 농협중앙회의 벽에 막혔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신 회장이 사의표명과 함께 '농협금융지주가 새 회장의 리더십 아래 그 설립목적에 걸맞게 잘 운영되어 국내 유수 금융지주회사로 자리매김 되길 바란다'고 밝힌 것도 농협의 독특한 지배구조를 뛰어넘을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사의 표명 이후 몇몇 기자들과 갖은 자리에서 우리금융의 최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산업은행의 최대 주주인 정책금융공사를 예로 들며 "대주주와 경영자는 별개인데 농협은 그렇지 못하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적인 은행업의 부진 속에 선납형식으로 4500억원을 중앙회에 납부해야 하고, 정부로부터 부족자본금을 보전받는 조건으로 체결한 경영개선이행 약정서(MOU) 등으로 인해 사사건건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분도 농협금융 회장이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또 신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실상 농협중앙회의 관리하에 있는 전산시스템 관리 문제로 인해 자신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부분에 대해 다소 억울하다는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어쩌면 신 회장이 사의 표명 이후 쏟아내는 쓴소리는 농협이 사업구조개편을 통해 신용과 경제를 분리하며 새롭게 옷을 갈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직의 운영은 권위적인 농협중앙회의 구태를 벗지 못한 것에 대한 항변이었는지도 모른다.
농협금융지주는 조만간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임 회장 인선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사업구조개편 이후 1년여 짧은 기간 동안 내부와 외부인사를 회장으로 선출했던 농협금융은 이제 독특한 지배구조를 뛰어 넘을 해법을 강구하지 않는 한 '금융지주 회장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