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기가 막힌다. 사실상 선거에 나오지 말라는 말이나 똑같다". 제28대 한국세무사회장을 비롯해 감사(2명)·윤리위원장(1명) 등 새로운 집행부 선출을 앞두고 있는 세무사 업계가 지난 15일 개정된 선거관리규정과 관련한 '후폭풍'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세무사회장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정구정 현 세무사회장의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세무사회원들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를 '나홀로 선거'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언로(言路)' 차단 선관규정, '정책선거' 실종되나 = 실제로 세무사회가 개정한 선거관리규정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 15일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선거관리규정에 따르면, 그동안 허용되어 온 후보자 언론인터뷰는 본등록(29일∼31일) 이전까지만 용인키로 했다.
당초 14일 상임이사회와 이사회에서 결정한 내용(언론인터뷰 원천 차단)에 비해 상당부분 완화되긴 했지만, 현 시점에서 본등록까지 남아있는 시간(16일∼28일)을 감안하면 물리적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본등록 이후에는 언론인터뷰는 기고문 등을 아예 할 수 없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세무사회장 출마 후보인 한헌춘 현 중부세무사회장(이하 한헌춘 후보)은 "후보자들의 정책비전 등을 홍보할 길이 상당히 좁아졌다"며 "새로운 후보자들에게는 몹시 불리한 선거관리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각 후보자들이 유권자인 세무사회원들에게 보내는 홍보성 문자메시지도 10회로 제한했고, 여기 더해 문자메시지에 담기는 내용 또한 사전에 선관위의 '검열'을 받아 전송토록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회장 및 감사, 윤리위원장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감과 정책비전을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알릴 기회가 쪼그라든 셈이다.
회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이창규 전 서울세무사회장(이하 이창규 후보)은 "1만명 회원으로 구성된 전문자격사단체 선거에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하도록 했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라고 촌평했다.
□ 소견발표 시간 대폭 단축, "해도 너무 한다" = 부동층 공략의 최후 보루나 다름없는 투표장에서의 소견발표 방식도 달라졌다. 특히 각 후보자들에게 주어지는 소견발표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그동안 선거에서 회장 후보자들의 경우 투표장에서 소견발표로 15분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선거관리규정을 개정, 회장 후보자 소견발표 시간을 절반도 채 되지 않는 7분으로 확 줄였다. 감사와 윤리위원장 후보자는 5분으로 제한됐다.
이창규 후보는 이와 관련해 "평소 사무소 운영에 신경을 쓰느라 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상당수 회원들은 투표장에 참석해 소견발표를 듣고 지지할 후보를 정한다"며 "하지만 후보자들이 자신의 소신과 정책비전을 어필하는 데 과도한 제한을 둔다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 이는 유권자들의 권리도 침해한 것이 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세무사회는 소견발표와 동시에 투표를 실시토록 규정을 개정했다. 소견발표 중간에 투표를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줌에 따라, 사실상 부동층 공략을 위한 소견발표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회장 출마를 선언한 손윤 세무법인 오늘 대표(이하 손윤 후보)는 "그동안 회원교육이나 각종 공식행사를 통해 존재감을 알린 정구정 현 회장이나 재출마를 선언한 현직 임원들에게 유리하게끔 규정이 바뀐 셈"이라며 "이는 명백한 기회의 불평등이다. 아예 선거에 나오지 말라는 뜻"이라고 언급했다.
□ 지방회별 순회투표 강행, '논란소지'는 남았다 = 현재 회장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은 개정된 선거관리규정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창규 후보와 한헌춘 후보, 손윤 후보는 지난 15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 선관규정을 '개악'으로 규정한 뒤 공동대응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들은 선거향방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을,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정보제공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공정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맹비난했다.
손윤 후보는 "정구정 현 회장이 선거에 나오지 않는다면 공정성 차원에서 (개정된 선거관리규정 내용을)수긍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해를 살 수 밖에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선거관리규정 개정 과정에 참여했던 일부 세무사회 관계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그 동안 안팎에서 정 회장이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선거관리규정을 고치려 한다는 소문들이 많았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며 "이번 선거에 당선되면 내년 정기총회에서는 내심 중임제한규정을 폐지해 영구집권을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선거관리규정과 관련해 논란의 소지는 또 있다. 투표진행 방식이다. 세무사회는 지난 3월5일 임시총회를 통해 본회 정기총회 당일 일괄 투표진행 방식에서 지방회별 순회투표로 재전환하는 내용의 회칙 개정안을 상정, 가결시켰다.
세무사회는 관리감독기관인 기획재정부에 회칙 개정안 승인을 요청했지만, 역대 세무사회장단이 기획재정부에 회칙 개정안 승인불허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고 최근 기재부에서 양측을 불러 입장을 청취하는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무사회가 기재부의 회칙 개정안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회별 순회투표를 강행키로 함에 따라 이를 반대했던 세력은 물론 기재부와의 갈등이 증폭되는 등 후속적인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