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 재벌그룹들의 부적절한 부(富) 이전 관행을 막기 위해 도입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재벌그룹에 대한 규제 목적이 다분했지만 중소·중견기업들에게 불똥이 튀면서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중소·중견기업들의 '아우성'이 커지자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중소기업에 대한 과세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제도개편 방안을 마련했지만 정치권은 아예 과세대상에서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제외하는 입법안을 제출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제도가 크게 후퇴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 풍전등화(風前燈火), 제2의 종부세 되나 =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 2003년, 정부는 부동산 부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도입했다. 종부세 도입 논의 당시 무수한 논란이 야기됐지만 2005년 첫 과세가 이루어졌다.
과세 첫 해 4000억원을 시작으로 점차 늘어나 2007년 2조40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났던 종부세수는 이후 세대별 합산 위헌판결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인 제도개편이 이어지면서 1조원 수준의 세수가 징수되는 세목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별도 세목인 종부세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제도 또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2011년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제도 도입 논의 당시에도 위헌 가능성을 포함해 상당한 논란이 빚어졌다.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올해 7월 처음 시행됐다. 문제는 정작 규제대상이었던 재벌그룹에 비해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거 과세대상에 포함되면서 불거졌다.
실제로 지난 7월 국세청이 신고안내문을 발송한 과세대상자 1만명 중 재벌그룹 관련자는 70명 수준에 그쳤다. 나머지 9900여명은 중소·중견기업 관련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안팎에서는 "재벌그룹의 사익편취를 막기 위한 제도가 중소·중견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제도개편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 일감몰아주기 과세 둘러싼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 = 27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 동안 신고납부를 진행한 결과 당초 제도 도입 당시 정부가 추산했던 세수(1000억원 수준)를 초과, 2000억원 수준에 육박하는 세수가 징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수의 대부분은 소수에 불과했던 재벌그룹 관련자들이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과세대상자 중 중소·중견기업 관련자의 숫자만 많았을 뿐 이들이 실제로 부담한 세금의 액수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준의 세수는 '반짝효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내년부터 상당폭 제도의 수위를 완화한데다 정치권이 중소·중견기업을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세법개정안을 통해 중소기업 과세요건을 완화(지배주주 지분율 3% 초과→5% 초과, 특수관계법인 거래비율 30% 초과→50% 초과)했다. 여기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과세대상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입법안을 제출, 정기국회 논의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제도가 큰 폭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 류성걸 의원은 지난 7월 과세대상에서 중소기업을 제외하는 입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며 최근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한 발 더 나가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도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는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권혁부 대한상의 금융세제팀장은 이와 관련 "일감몰아주기 과세의 원래 취지는 대기업 규제인데 중소·중견기업까지 대상이 됐다"며 "과세대상에서 중소·중견기업은 제외하고 상호출자제한 집단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최복희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도 "중소기업은 대부분 가족기업 형태라 소수지분형태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중소기업 최대주주 지분율은 평균 53%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지분율을 3%에서 5%로 늘리는 것은 의미 없는 개편이다"라며 "과세대상에서 중소·중견기업을 제외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조세형평 측면에서 중소·중견기업이라도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부를 주고 받았다면 당연히 적정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중소·중견기업을 제외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일감몰아주기가 과세를 해야할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과세는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