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서울세관 외환조사과에서 근무하는 서경호 관세행정관(사진).
불법외환거래를 조사하고 있는 서 행정관이 13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제일 먼저 언급한 부분은 "사람들은 관세청을 공항에서 여행자휴대품 또는 수출입통관 절차만 담당하는 부처로만 알고 있다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검찰이나 국세청처럼 불법거래나 탈세 등을 한 정황이 포착되면 압수수색도 나가고, 며칠동안 잠복해서 증거를 잡아내는 형사 못지 않은 일을 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공항이나 항만에서 제복을 입은 모습만 접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 행정관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세관공무원으로서 불법외환거래를 막아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을 막고 국부유출을 막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봤을 때는 한 명의 공무원일지도 모르지만 관세행정관이 단서 하나를 그냥 넘기느냐, 이를 끝까지 추적하느냐에 한 회사의 운명이, 투자자들의 앞날이 달라질 수 있다. 크게는 조세정의를 해치는 탈세까지 막을 수 있다.
한 회사가 저지른 횡령과 불법거래를 끈질긴 수사를 통해 적발해 선의의 피해자를 막은 서 행정관은 "많은 투자자들이 추가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뜻깊은 사건"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 "수상한 외환거래, 주가조작 가능성 포착" = 서 행정관이 수상한 자금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서 행정관은 보통 때와 다름없이 불법외환거래 단속을 위해 외환거래현황을 모니터링 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자금흐름을 확인하게 됐다.
국내 상장기업 A사는 해외의 B사와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하고 거액의 자금을 로열티로 받고 있는데, A사는 로열티가 영수되기 직전 지분투자 목적으로 동일한 규모의 자금을 B사에게 송금하고 A사의 직원들이 자금을 나눠 해외 송금하는 거래를 포착한 것이다.
A사는 해외법인 C사에게 대여목적으로 송금한 자금에 대해 곧바로 손실 처리해 회수하지 않는 등 정상적인 외환거래를 하지 않고 있었고 서 행정관은 바로 A사에 대해 내사착수하고 수상한 자금흐름에 대해 좀 더 정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해외의 B사는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하였다고 공시하기 직전에 신규 설립된 회사로 자본금이 전혀 없어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할 수 없는 회사였다. 영업자금을 대여해 준 해외법인 C사는 페이퍼컴퍼니였다.
더구나 A사는 재무능력이 전혀 없는 B사와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조건으로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실과 페이퍼컴퍼니인 C사에게 지급된 대여금이 즉시 손실처리된 사실까지 있었다.
서 행정관은 "직감적으로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불현듯 A사의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사실을 떠올랐다"며 "A사가 페이퍼컴퍼니인 해외법인 C사에게 대여금을 지급한 이후와 B사와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한 직후 A사의 주식이 폭등한 점에 주목하고 주가조작 목적의 분식회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 "꼬리 밟힌 불법거래, 보안유지 심혈" = A사가 주가조작을 목적으로 불법외환거래를 했다는 판단을 한 서 행정관은 곧바로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을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서 행정관이 가장 걱정된 것은 투자자들의 피해였다. A사는 코스피에 상장된 회사로 조사한다는 정보가 유출된다면 증거자료를 파기할 우려가 있고 무엇보다 확정되지 않은 혐의사실이 언론에 노출될 경우 애꿎은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서 행정관은 A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하기 전까지 보안유지에 심혈을 기울였고 분석에 들어간지 3개월만에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대표이사를 포함해 혐의사실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은 주요 임원진의 사무실을 집중적으로 수색한 끝에 피의사실을 입증할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압수수색한 증거자료와 그동안 수사결과, 서 행정관은 A사는 B사와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했다고 허위 공시하고 이를 가장하기 위해 허위로 해외투자신고 후, 로열티 명목으로 즉시 회수해 자산과 매출을 과다계상, 분식 회계한 사실과 페이퍼컴퍼니인 C사를 설립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C사의 대표이사가 설립자금과 대여금을 횡령해 A사 주식을 집중 매입해 주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시세차익을 얻는 등의 불법거래를 한 사실까지 모두 확인했다.
서 행정관은 "이 사건은 굴지의 상장기업의 불법외환거래와 대표이사의 횡령 및 주가조작이라는 비도덕한 행위를 적발해 엄단 처벌함으로써 A사에 투자한 많은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범죄는 금전적 이득을 위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제적인자금의 흐름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외환조사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저는 많은 조사담당 직원들과 함께 부정한 돈의 흐름을 찾아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