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을 움직이는 여성파워 8인. 왼쪽 앞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원희정 생명보험검사팀장, 임지연 국제업무지원팀장, 박선희 저축은행검사팀장, 오순명 금융소비자보호처장, 김미영 기업공시 특별심사팀장, 이화선 외환시장팀장, 김태임 연수운영팀장, 박미경 홍보팀장(사진 = 김용진 기자)
1년새 두배 많아진 여성팀장…업무환경 '격세지감'
여성 특유 온화한 리더십 등 발휘…금감원 내 '새활력'
최근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OECD 회원국의 유리천장 지수(Glass 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26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
'유리천장'이란 여성 혹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용어. 특히 여성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융권에서는 인사시즌이 도래할 때마다 자주 회자되는 단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금융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 안에 '여성파워'로 뭉친 모임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순명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을 위시한 7명의 여성 팀장들.
총 1806명의 금감원 직원들 중 여성은 388명에 불과한 실정. 여성 직원들 중 팀장급으로 승진한 사람이 단 7명이라는 통계는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 합리적 보상을 받기위해 그녀들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중 오순명 금소처장은 금감원 임원 중 유일한 여성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중책은 시대적인 아젠다로 자리잡은 금융소비자 보호다. 절대절명의 과제를 풀어가는 그는 여성 특유의 온화한 리더십으로 어느 새 직원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후문.
이런 그녀가 최근 여성팀장들을 따로 불러 식사자리를 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여성으로서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오 처장은 최근 쉴 틈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취임 후 처음으로 갖는 여성팀장들과의 식사자리도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음을 아쉬워했다.
민원상담 부서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외부 식당까지 다녀오는 시간마저도 절약해야 했기 때문.
오 처장은 "민원 상담하는 부서 직원들은 점심시간이라고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순 없다. 투자 피해자들을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고 심경을 밝혔다.
◆…올해 단행된 금감원 인사발령 이후 처음으로 금융소비자보호처장과 여성팀장들과의 식사자리가 마련됐다.(사진 = 김용진 기자)
이날 모인 팀장들은 금융사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여자로서의 한계점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김미영 기업공시국 특별심사팀장은 "10여 년 전 모 은행 검사를 나갔는데 그 때는 나 혼자 여자였다. 은행직원이 여자한테 검사받는 것은 처음이라며 당황해하던 모습이 역력하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금감원으로 걸려오는 민원 전화 중에서는 여자직원을 무시하는 발언이 종종 있어왔다는 것이 김 팀장의 전언.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남자직원을 바꾸라고 요구하면 수화기를 넘길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김 팀장은 "그래도 요즘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피감기관들도 금감원 여직원에 익숙해졌다. 최근에는 검사 나가면서 여성들만으로 팀을 꾸려 나간 적도 있다"며 과거와는 달라진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김미영 팀장은 은행검사국 등을 거치면서 쌓아온 현장검사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
금감원의 한 직원은 "미국 통화감독청(OCC)에서 연수를 한 경력도 김 팀장님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라면서 "미국 현지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고, 현장에서의 카리스마도 상당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임 인재개발원 연수운영팀장은 금감원 최초로 내부에서 승진된 여성팀장이다. 1980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김태임 팀장은 "당시 여자들이 입행하려면 30세가 되거나 결혼을 하면 회사를 떠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행원들이 더러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혼휴가를 받지 못해 신혼여행을 연차로 다녀와야 했었고, 나중에 노조가 생기고 직원들의 처우가 개선되면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회사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가정에 소홀해 진다는 것도 주된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올해 큰 아들이 수능시험을 본 이화선 외환감독국 외환시장팀장은 "직장일이 바빠 아들 수능에도 크게 신경써주지 못했다. 그나마 시부모님이 계속 한 동네에 살고 있어 아이들을 잘 돌봐주셔서 다행이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딸만 셋을 둔 오순명 처장은 "시부모님이 도와주시면 굉장히 복을 받은 거다. 우리 아이들은 과외선생님도 직접 구하고 시험지에도 스스로 사인했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오 처장은 "나는 직장에 나와 있는 사람으로서 회사일이 가장 우선이었다"면서 "집안일은 우리 집 하나로 한정돼 있지만, 직장에서 내가 못하면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책임감 있는 직장인의 의식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모임이 성사된 데에는 최수현 금감원장의 공로(?)도 컸다. 지난해까지 4명이었던 여성팀장은 올해 초 최 원장이 부임하면서 두 배 가량 늘어났기 때문.
금감원 여직원들은 "원장님이 여성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주신다. 금감원장으로 재직하실 때 여성 직원들을 많이 키우겠다고 하셨다"면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오순명 처장도 "현재로선 여성 임원이 나 하나뿐이기 때문에 결국 여자후배들을 내가 끌어줘야 한다"면서 "직장에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보겠다"고 밝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금융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고 21세기형 수출금융 시대를 앞둔 만큼 금감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초로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열어 제쳤고, 금감원 내에서도 여성 신입직원을 뽑는 비율이 나날이 늘고 있는 분위기 속에 '유리천장'을 과감히 깨고 더높이 도약할 여성 직원들의 맹활약상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