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솔선수범…닮고 싶은 따뜻한 관리자
현직에 몸담고 있거나 정년을 채워 국세청을 떠난 수많은 국세공무원 가운데 국세청과 세제실 그리고 조세심판원 등 이른바 ‘국세’를 다루는 정부부처에 모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이 세 곳을 모두 거쳤을 뿐만 아니라 공직생활 내내 ‘걸어 다니는 세법전’, ‘닮고 싶은 관리자’, ‘공무원의 귀감’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닌 인물이 있다. 이달 말 고양세무서장을 끝으로 4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감하게 된 손창성 서장(사진)이 바로 그다.
1974년. 약관도 안되는 19세 나이로 국세청에 들어와 ‘누룩’이 뭔지도 모르고 밀주단속에 나갔던 앳된 청년은 어느덧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39년 1개월이라는 공직생활 내내 ‘국세청에서 찾아보기 힘든 성실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굵직한 족적을 찍어왔다.
195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손 서장은 칠보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39세였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작고,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든 것.
홍천세무서 간세과에서 주세업무 담당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89년 기획재정부(당시 재무부)로 발령을 받기까지 수도권 일대 일선세무서 현장에서 다양한 세목(稅目)을 접하며 경험을 쌓았다.
성동세무서에서 부가가치세 업무를 처음 접했을 때 그의 성실하고 야무진 일처리에 반한 관리자들의 추천이 이어지면서, 청량리·성남·마포·관악세무서로 자리를 옮겨서도 한동안 부가가치세 업무에 매진했다.
7급으로 승진한 이후엔 수원세무서 재산세과에 근무했다. 거기서도 일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강서세무서에서도 재산세과에 근무하면서 그 때 한참 불어 닥친 투기바람을 잠재우는데 일조했다.
■ 세제실로 조세심판원으로…국세담당 정부부처 모두 섭렵
손 서장이 처음으로 기획재정부와 인연을 맺은 때는 89년 가을. 국세청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난 터라 발탁이 됐다. 처음엔 국세청 업무와 비슷한 국유재산과에서 산업은행,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과 KBS 그리고 한국감정원 등 정부투·출자기관의 결산지도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국제금융국 외환정책과로 가서 환율업무를 맡았는데 "생소했지만 힘들지도 않았고, 무척 재미있었다"고 회고했다. 매일 환율동향 보고서를 만들어 직접 장관, 차관, 국장실에 전달했는데, 배구경기를 하다 무릎을 다쳐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95년 국세청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삼성세무서 법인세과에서 세적관리와 법인 세무조사를 하면서 두각을 드러내, 서울시내 주요 법인들의 세무조사 전담기구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는 이곳에서의 3년 동안 삼성, 현대, 대우, LG, SK 등 소위 5대 그룹의 관련기업 조사를 골고루 다해봤으며,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아 초급관리자인 사무관으로 승진하는 행운도 거머쥔다.
사무관 초임을 춘천세무서 조사과장으로 보냈던 그는 2001년 가을 기획재정부 세제실에서도 핵심부서인 법인세제과 예규담당자로 발탁됐다.
세제실에서 풀어내는 예규(유권해석)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것이어서 세법내용을 제대로 꿰지 못한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예규업무가 결코 맡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였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예규업무가 주어졌다.
이곳에서 그는 ▲프랜차이즈(외식업) 시스템 ▲계산서 관련 가산세 과세 여부 ▲합병, 분할시 세무조정사항의 승계 범위 ▲건물 기부채납의 거래시기 ▲상품권 발행 및 유통 관련 부가가치세 과세 여부 등 어려운 예규를 척척 풀어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손 서장의 학구열도 소문이 나있다. 세제실에서의 생활이 1년 가량 지나갈 무렵 그는 문득 법인세제과에서의 예규업무 경험을 조세심판원 업무에 접목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그는 국세심판원 근무희망을 냈고, 심판원에서의 업무실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심판원 일에 재미를 붙인 그는 주말도 반납하고 업무에 몰입, 까다로운 심판사건을 도맡았으면서도 1년에 70～80건의 심판사건을 처리했다. 그의 성실성에 대한 평판이 어떠했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심판원에서 그가 처리한 사건은 ▲법인세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모든 세목이 망라됐으며, 처리한 업무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서도 뛰어났다는 평가다.
그가 그곳에서 처리한 일은 기각을 했더라도 워낙 조사서가 완벽하게 꾸며져 소송까지 올라가도 결과가 뒤집힌 일이 거의 없었다. 납세자의 손을 들어줘 인용으로 처리된 사건에 대해서도 국세청에서 만족할 정도였다.
■ 오픈마켓·게임아이템 사업자 첫 과세…뚜렷한 족적(足跡)
조세심판원에서 친정인 국세청으로 돌아온 그는 국세청 개인납세국 소득세과에서 세무사계장 일을 맡아 봤다. 이후 국세청 조사국 세원정보과로 자리를 옮겨 뚜렷한 족적을 많이 남겼다.
국세청 사상 최초로 세정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던 오픈마켓 판매업자에 대한 과세정상화를 이뤄낸 것. 그는 무려 77만6000명에 달하는 오픈마켓 거래자료를 분석, 1300여명으로부터 8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쇼핑몰사업자에 대해서도 신고성실도 분석을 통한 기획조사를 벌여 80여명으로부터 32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추징했다.
선진국에서도 과세사례가 없는 게임아이템 거래에 대한 세원을 포착한 것도 그의 공적. 그는 110만건이 넘는 거래자료를 분석해 표본조사로만 15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추징하고, 조사대상을 전체 사업자로 확대시켰다.
■ 모든 일에 솔선수범…각별한 후배사랑
수원세무서 재산세과에 근무할 당시 손 서장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모 재벌그룹 총수의 재산과 관련된 세금문제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재벌총수의 장남인 J씨가 그를 찾아왔다.
세금에 대해선 완전 문외한이었던 J씨는 나중에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는 줄도 모르고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자세하게 늘어놨고, 확인서까지 써줬다. 이후 그 재벌그룹이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그룹에서는 그에게 확인서를 파기하는 조건으로 상당한 거액을 주겠다고 은밀히 제의했지만, 그는 과감히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원칙대로 과세했다. 이 과세사건은 나중에 법원까지 올라갔지만, 확인서가 바탕이 돼 국세청 승소로 매듭지어졌다.
손 서장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긴다. 세상을 살아보면 올바른 것이 결국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더라는 것을 경험에서 얻은 것. 이를 위해 그는 언제부터인가 하루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자는 의미의 일일일선(一日一善)을 생활화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손 서장과 함께 근무를 했던 국세청 직원들은 “손 서장이야말로 모든 공직자들의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인물”이라며, “늘 직원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서장이 스스로 솔선수범으로 모범을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사상 최대 전력난을 겪었던 지난 여름 손 서장은 “공직자로서 국민과 함께 에너지 절약에 동참해야 한다”며 35도가 넘는 찌는 듯한 실내온도에도 불구, 단 한 번도 세무서장실의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또 청사 사무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재배치, 청사외부의 별도 공간을 임차해 사용하는 조사과를 청사로 불러들였다. 이로 인해 월 임대료 600만원과 관리비 150만원 등 연간 1억원 상당의 예산을 절감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지난 10월26일 장남의 결혼식 땐 고양세무서 직원 중에 마침 같은 날 결혼식을 하는 여직원이 있었는데, 모든 직원들에게 자신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하지 말고 그 여직원의 결혼식에 참석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서장에게 주어진 관사도 반납하고, 거기서 줄인 예산은 직원 2명의 주거비에 보태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손 서장의 후배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양세무서장 취임 이후 세무서 직원들의 조사요원 자격증 취득률이 20%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에 걸쳐 매주 목요일 일과 후에 강의를 하여 자격증 취득률을 64.7%로 높여놨다.
직원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세무서장들을 만나봤지만 손 서장처럼 직원들을 배려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서장은 처음 본다”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직원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손 서장을 보면서 이를 귀감으로 삼아 공직생활을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입을 모았다.
■서예하고 기타 치며…가족에게 보답하며 살 터
39년 1개월이라는 오랜 시간 오로지 반듯한 공직자로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그는 공직자로서의 지금까지 생활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또 퇴직이후 아내와 함께 서예도 하고, 기타도 치는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즐기기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등 행복한 단꿈에 푹 빠져있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출발했는데 국세청에 들어와 박사과정을 5학기까지 마칠 만큼, 나름 공부할 수 있었다”며 “그 외 아파트도 하나 마련하고, 자식들도 잘 성장시켜 가정이 화목하니 그러면 된 것 아니냐”며 흡족해 했다.
손 서장은 “국세청 간부들이 정년에 2년 앞서 명예퇴직을 하는데 이것은 아름다운 전통이다. 후배들을 위해서 흔쾌하게 명퇴하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이제부터는 시간여유도 있으니 옆도 보고 또 뒤도 돌아보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 박정숙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내는 청량리세무서 근무시절 지인의 소개로 만나 83년 12월 결혼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아들은 기업은행에 다니고 있고, 스페인어를 전공한 딸은 현재 유엔 인턴으로 근무한다.
일선세무서에서 일하며 주경야독으로 건국대 법학과를 나와 한 때 포기해야만 했던 대학진학의 꿈을 이뤄내고, 건국대 행정대학원까지 나오는 등 집에서도 솔선수범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무난하게 성장한 것.
그는 요즘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새록새록 커져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우리 아들 결혼을 시키면서 알았는데, 집사람 입을 옷이 마땅치 않더라”며 “솔직히 돌이켜보니 결혼생활 30년 동안 아내에게 20만원이 넘는 옷을 사준 적이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그는 4형제중 3남이었지만, 자신의 집 안방에서 어머니가 작고할 때까지 아내가 10년 넘게 어머니를 모셨단다. 어머니 뒷바라지에 아이들 교육에 바쁜 아내가 “좋은 옷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미안하다고 한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지금까지 과외 한번 시키지 못했다”며 “집사람에게는 미안하고, 아이들에게는 고맙다. 이제부터는 손잡고 산책도 자주 같이하며 아내에게 지금까지 진 빚을 갚으면서 살겠다”고 했다.
■손창성 고양세무서장은…
▲1955년생 ▲전북 정읍 ▲칠보高 ▲건국대 법학과, 건국대 행정대학원 ▲9급 공채 ▲청량리·성남·마포·관악세무서 부가가치세과 ▲수원·강서세무서 재산세과 ▲재무부 국유재산과 ▲재무부 외환정책과 ▲삼성세무서 법인세과 ▲서울청 조사1국 ▲춘천세무서 조사과장 ▲기획재정부 세제실 ▲국세심판원 ▲국세청 소득세과 세무사계장 ▲국세청 조사국 세원정보 1계장 ▲여수세무서장 ▲고양세무서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