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로부터 받은 지급보증수수료를 축소 신고한 것과 관련해 기업들과 국세청이 벌인 '논리대결' 1라운드는 국세청의 판정승으로 귀결됐다.(관련기사 : 본지 2014년 1월14일 자-대기업 지급보증수수료 '세금전쟁'… 국세청 '승')
지난 1월 초 조세심판원은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한국타이어, 효성, CJ제일제당 등 10여개 대기업들이 제기한 관련 조세불복청구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이들 기업 외 심판청구를 냈다가 소득없이 물러나게 된 기업은 고려아연, 현대하이스코, 금호타이어, 롯데리아, 만도, 대상, 한라비스테온공조, 풍산 등이다.
지급보증수수료 과세와 관련해 이들 기업들에 앞서 불복청구를 제기한 LG전자와 포스코를 비롯 10여개 기업들이 제기한 불복청구는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지만 심판원이 유사 사례에 대해 '선결정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나머지 기업들의 불복청구도 기각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 문제의 시발점 '정상가격 산출 모형' = 국내 기업이 해외 현지에 세운 자회사가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원활한 사업자금 조달이 필수. 이를 위해 현지 은행으로부터 사업자금을 대출하는 방법을 택하지만, 갓 세운 회사의 신용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신용도가 높은 국내 모회사가 지급보증을 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지 자회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국내 모회사가 이를 대신 갚겠다는 약정을 해주는 셈이다. 대신 해외 자회사는 리스크를 떠 안은 국내 모회사에 일정액의 지급보증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 2012년 이전까지는 세법상 적법한 지급보증수수료 산출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당시 국내 유명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대기업이 터무니 없이 낮은 수준의 지급보증수수료를 받아 이를 수익으로 삼아 법인세를 납부해 왔다는 점을 찾아냈다.
이에 국세청은 '정상가격(Arm's length price) 산출 모형'을 자체적으로 개발, 이를 토대로 정상적인 지급보증료율을 계산, 기업들의 신고내역과 대사해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듬해 3월말 결산법인들의 법인세 신고시 이를 반영한 수정신고를 권장해 부족하게 납부된 세금을 모두 추징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5년의 부과제척기간을 적용, 기업들의 반발을 증폭시켰다.
실제로 기업들은 이로 인한 과도한 세부담을 완화해 달라는 요구를 정부에 쏟아내는 등 거센 반발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국세청은 개발 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정상가격 산출 모형을 전면 공개하며 과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 첨예한 대치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 국세청-기업 뚜렷한 '시각차' = 현행 국제조세법상 해외지급보증수수료는 엄연한 과세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로부터 어느 수준의 지급보증수수료를 받아 법인세 과세대상 수익으로 삼아야 하는 지 기준이 없었다.
이에 기업들은 자율적으로 지급보증수수료율을 산정해 법인세를 신고 납부해 왔다.
기업들은 경영상태가 불안정한 해외 자회사로부터 과도한 지급보증수수료를 받을 경우 적자상태를 면치 못한다는 점 등 현실적 측면에서 미미한 수준의 지급보증수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즉 국세청이 개발한 정상가격 산출 모형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으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다.
국세청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스탠스다. 정상가격 산출 모형 개발 당시 기업들이 말하는 한계점에 대한 충분한 인식아래 측정 불가능한 비재무적요소(브랜드가치, 국가위험도 등)을 반영하는 한편 정상수수료율 상한선도 마련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세청 점검결과 계산된 정상수수료율과 부합하는 수준의 지급보증수수료를 수익에 반영, 법인세를 납부해 온 기업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낮은 수준으로 신고한 법인과 그렇지 않은 법인간 '형평'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과세는 불가피하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은 정상가격 산출 모형을 토대로 과세권을 행사한 후 기획재정부에 건의, 세법에 국세청이 개발한 정상가격 산출 모형에 따른 과세가 가능하도록 시행령 개정도 이끌어 냈다.
아울러 5년의 부과제척기간을 설정한 부분은 '소급'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기업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과세기준이 뒤늦게 정립된 만큼 5년의 부과제척기간을 적용한 것이 소급과세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해외지급보증수수료가 엄연한 과세대상이며 합리적 계산법만 존재하지 않았을 뿐 새로운 해석이나 관행이 아니기 때문에 소급과세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1라운드 종료, 기업들 솟아날 구멍 있나 = 심판원도 국세청의 입장을 준용했다.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국세청 모형에 의해 정상가격을 산출, 과세조정을 한 것을 그 동안의 세법의 해석이나 세정상의 관행을 변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국세청 모형을 통해 합리적인 정상가격을 산정하고 이에 따라 과세표준과 세액을 경정한 것으로 종전의 과세기준을 보다 명확히 했을 뿐만 아니라 불복을 제기한 기업들에 새로운 납세의무를 지운 것이 아니어서 소급과세금지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세청이 개발한 모형에 따른 과세금액 산출방법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재 기업들이 부과받은 지급보증수수료 관련 세액은 개별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모두 합칠 경우 1～2000억원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5년의 부과제척기간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세부담 증가폭을 줄이기 위해 법적 근거를 찾아내 가산세(납부불성실.신고불성실)를 부과하지 않으면서 세액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심판원의 결정에 따라 일단 기업들과 국세청의 논리대결 1라운드는 종료됐다.
기업들은 대형 로펌들과 손잡고 행정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심판원이 어려운 세수여건을 고려해 국고우선주의적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법정소송으로 옮겨갈 경우 기업들이 승소판결을 받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