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언제 어디서고 발생할 수 있다. 항공기가 추락할 수도 있고,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함이 최선이지만 사고가 났을 때 체계적으로 수습해 피해를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느냐에 그 사회와 국가의 역량이 좌우된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등 승객·승무원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를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4월 16일은 대한민국에게 한마디로 '안전 국치일(國恥日)'이었다.
사고발생에서부터 운항사의 초기대응, 구조 및 정부의 재난대응 전 과정에서 세계 7위 수출 강국, 세계 13위 경제 대국 대한민국은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조선업이 세계 1위에 올랐다지만 배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안전의식, 재난시스템은 영락없는 3류였다.
해외 주요 언론은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나는 침몰 사고가 21세기 한국에서 발생했다며 한국은 과거의 숱한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분노를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실한 초동대처는 물론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피해 집계, 오락가락하는 구조상황 파악까지 한 마디로 총체적 부실을 드러냈다. "한국의 수준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중국 언론의 비판에 낯이 뜨거워진다.
정원초과에 화물과적, 악천후 속 5급 항해사가 선장 역할을 하다 300여 명이 숨진 1970년 남영호 침몰, 292명이 수장당한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 30명이 사망한 1994년 충주호 유람선 전복, 지난해 7월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지난 2월 경주 리조트 붕괴 등등 '안전 불감증 인재(人災)'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음에도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광고한 것이다.
길이 146m, 6825t의 거대한 여객선이 풍랑도 폭풍도 없는 연근해에서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 가라앉은 것부터가 넌센스다. 사고 발발에서 완전 침몰까지 세월호 운항사가 취한 조치와 행동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구조 요청 최초 신고자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학생의 연락을 받은 학부모였다는 사실부터가 어처구니가 없다. 운항사 측은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수차례나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으로 오히려 승객의 발목을 잡았고, 배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조원들이 구명보트로 먼저 탈출했다.
재난 당국의 대응시스템은 더더욱 한심했다. 경기도교육청의 '학생 전원 구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368명 구조' 등의 어이없는 오보(誤報)가 중요한 초기 구조 기회를 날려버렸고, 기본적인 탑승자 수와 구조자수 사망자 인적사항을 몇 차례나 정정하는 등 정부의 위기대응력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은 단단히 고장 난 상태다. 세월호는 과도한 변침(항해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무게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침몰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운항 과실에다 선장의 초기오판(誤判), 선박 증개축과 화물과적이 줄줄이 연루된 대형 인재임이 속속 판명되고 있다.
해운법은 여객선 승선자는 이름 연락처 등을 명시한 승선신고서를 제출토록 의무화해 당국이 제대로 관리 감독했다면 가장 기본적인 정보에서 틀릴 수가 없다. 교육부는 수학여행 안내지침에 수학여행 참여 인원을 '4학급 또는 150명 내외'로 정해 놓았다. 하지만 권고 수준에 불과해 지키는 학교가 드물다.
국제 여객선은 국제기구에서 한 달에 두세 번 비상훈련 점검을 하고 이 훈련에 응하지 않으면 아예 운항을 못하게 한다. 국내 여객선도 법에는 10일에 한 번 비상훈련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감독기관인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이 제대로 감독을 안 하고, 선사(船社)들이 감독에 불응해도 처벌 규정이 없다.
부실한 위기대응 매뉴얼도 화를 키웠다. 사고 발생 시 피해 정도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라는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내용이 엉성하고, 정작 사고 때는 작동되지도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민 행복의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강조하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꾸었다. 그러나 초대형 재난 앞에서 '안전 정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고 당일 정부서울청사에 설치된 중대본은 대책은 고사하고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현장지휘에 나서고, 여러 부처에서 많은 인력과 장비들이 동원됐지만 지휘체계가 불분명해 혼선이 거듭됐다.
해난사고의 경우 육상재난과는 달리 일반의 접근이 어려운 특수성 때문에 상황관리는 해양경찰청이,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해양수산부가 맡고 있다. 정부 재난대응체계 혼선의 근본원인은 안전행정부가 만든 중대본의 상황관리시스템과 해양경찰청의 상황관리시스템이 연계가 안 되고 서로간의 소통과 정보공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등 민간인 자원봉사자들이 사고현지에 내려가 이불부터 속옷까지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갖고 대기했지만 대책 기구가 일원화가 안 되고, 대응 매뉴얼이 없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속출했다.
소득이 늘고 하드웨어는 발전했지만 이를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과 국민의식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를 '신뢰의 재난'속에 빠뜨렸다. 해운사도, 선장도, 관리․감독당국도, 재난관리체계도 모두 불신의 바다로 침몰시켰다. 정부의 신뢰가 추락하고, 안전을 국민 각자가 챙겨야할 정도로 국민들을 '멘붕'상태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절망 속에 자학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참사 속에서도 자신보다 주위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작은 영웅'들 얘기에서 희망을 읽는다.
실종자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시계가 흐린 바닷물 속에서 밤낮으로 강한 조류와 맞닥뜨리는 군․민 잠수사들의 지칠 줄 모르는 투혼, 슬픔과 울분으로 하나가 된 국민적 일체감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소중한 버팀목이자 재기(再起)의 에너지다.
창피하고 고통스럽지만 차제에 우리자신과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자조와 자학에서 벗어나 한국사회를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챙기고 지시하는 형태가 아니고, 범정부적, 관·민간 협업으로 시스템이 움직이는 위기관리체계를 제대로 정착시켜 '안전후진국'의 불명예를 떨쳐 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