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초대형 승부수를 던졌다. 세월호 침몰 참사 수습과정에서 혼선을 자초, 인명구조에 실패해 국민의 분노를 산 해양경찰청을 전격 해체한다고 선언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민신뢰 상실에 일익을 담당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도 해체만 되지 않을 뿐, 조각 조각으로 나뉘어 '공중분해' 될 운명에 내몰렸다.
19일 대통령 담화문 발표 직전까지 그 누구도 이 정도 수준의 파격적 카드가 제시될 지 예측하지 못했다.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형성된 반(反) 정부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정면돌파 카드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정치적 해석을 배제한다면 대통령의 결단의 본질은 '국민신뢰를 잃은 정부(부처)는 필요없다'는 공직사회를 향해 전력을 다해 던진 '돌직구'다. 세월호 참사라는 계기가 있었지만 공직사회가 복지부동, 무사안일 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한 '안전지대'는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다른 이유로 흘린 눈물이었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대통령의 눈물이 공직사회에 대한 강한 개혁의지로 투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담화가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에 국민들이 촘촘한 '감시망'을 펼 것이라는 이야기다. 뒤집으면 시간을 끄는 등 운명을 뒤바꾸려는 공직사회의 시도 자체가 발을 붙일 틈바구니는 좁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 해경, 안행부, 해수부 '충격' = 해체라는 운명을 맞게 된 해경은 충격 휩싸인 상황이다.
애초 대규모의 조직개편 및 기능 조정 등 개혁조치를 예상했지만 해체라는 초강수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아직 관련 법(정부조직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지만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만큼 초스피드로 조직개편이 진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잇다.
이에 1953년 출범해 61년의 전통을 만들어 온, 전국 1만1600명과 예산규모 1조1000억원을 자랑하는
거대 조직 해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조직개편을 골자로 한 개혁은 적잖은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부실대응 문제도 문제지만 사고를 야기한 청해진해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구원파 출신 고위간부 채용 등 온갖 문제점을 노정시키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아예 뿌리를 뽑아내는 수준의 개혁이 아니고서는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해체 결정의 배경에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안행부에 전해진 충격파는 더 크다. 현재의 기능에서 안전과 관련한 정책수행 기능이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옮겨지는 수준 이상의 카드가 제시됐기 때문이다. 타 부처 위에 안행부가 군림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고 있는 동력인 인사와 정부조직 업무를 신설되는 행정혁신처로 이관이 결정됐다.
안행부는 과거 행정자치부 시절 업무를 수행하는(행정자치) 부처로 격하되는 셈이다. 사실상 해체 보다 더 가혹한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안행부 안팎에서 이 정도 수준이면 장관급 부처가 아닌 처장, 차관급 부처로 격하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폐지 5년 만에 부활에 성공한 해수부는 올해 초 여수 기름유출 사고 수습 과정에서 전 장관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욕만 먹다가 이어진 세월호 참사로 핵심기능(해양교통 관제기능 등)을 모두 빼앗기는 기구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 "공직사회, '안전지대'는 없다" 무거운 긴장감 =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제시한 정부조직 개편 방안의 본질은 국민신뢰를 얻지 못한 정부(부처)는 필요 없다,로 요약된다.
아울러 공직사회가 경쟁 없는 조직문화와 복지부동, 무사안일 주의를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안전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월호 사고와 직접적인 연계성이 없는 정부 부처들 또한 대통령 담화 내용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공무원 선발 및 보직운영 제도 전반을 개혁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정부 부처 안팎에서는 현재 조직체계 및 운영에 큰 폭의 개편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등 술렁이고 있다.
또한 '관(官)피아' 척결을 위한 카드로 퇴직자 취업제한 강화 카드까지 나오면서 산하기관 및 단체 낙하산 인사로 '재미'를 보고 있던 부처들과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신뢰확보'를 관건으로 삼고 있는 국세청과 관세청 등 세금징수기관들도 깊은 긴장감 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다.
특히 국세청과 관세청은 이날 오전 고위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통령 담화문 발표를 TV를 통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며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공직사회가 위기상황에 처한 것만은 분명하다. 세월호 사고로 인해 형성된 정부에 대한 반감이 세수확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관세청 관계자도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하지만 공직사회에 큰 변화는 불가피할 것 같다"며 "직접적 연관은 없더라도 이런 시국에 비판을 받을 만한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조직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해경도 해경이지만 안행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안행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정부 인사 및 조직 관련 기능이다. 이 부분이 총리실(행정혁신처)로 넘어갈 경우 안행부 또한 사실상 해체나 다름없다. 우리 부처에서 안행부와 협의하고 있는 업무들도 차질이 불가피해 질 듯 하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큰 '모험'을 결정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정운영 측면에서 볼 때 공직사회를 흔들 경우 정권 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가해질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정권이 공무원들과 등을 져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들은 공직사회의 병폐를 알면서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지 못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현 정권과 여당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선택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밀어부쳐 개혁을 성공시킬 수 밖에 없다. 배수진을 친 것이나 다름 없다"라며 "국민여론이 공직사회 개혁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기 때문에 대놓고 반발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국면 자체는 (대통령에)유리하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