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목적으로 공 들여한 해외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관세청에 통보하는 제도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은 그동안 1000달러 이상 해외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연 1회 제공받아왔지만 명품가방 등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고도 숨겨 들어오는 해외 여행자들을 효율적으로 적발하기 위해 분기별 5000달러 이상 사용한 구매자에 대해 자동통보받는 것으로 관세법을 개정, 올해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다.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경기도 구리시)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해외에서 5000달러 이상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람은 총 6만70명이었다.
개인카드는 5만6339명(6억1600만 달러), 법인카드는 3731명(7900만 달러)이었다.
사용금액 구간별로 보면 1만 달러 미만 개인카드 사용자는 3만8163명, 1만~2만 달러 미만은 1만3176명, 2만~3만 달러 2811명, 3만~5만 달러 1562명, 5만 달러 이상 627명이었다.
법인카드 사용자는 1만 달러 미만 2005명이었으며 1만~2만 달러 983명, 2만~3만 달러 274명, 3만~5만 달러 210명, 5만 달러 이상 259명이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용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즉, 해외로 출국한 뒤 현지에서 직접 사용한 여행자와 국내에서 인터넷 서핑을 기반으로 해외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매한 해외직구족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관세청은 여신금융전문협회로부터 해외에서 신용카드로 5000달러 이상 물건을 구매한 사람에 대해서만 일괄적으로 통보받고 있어 이를 구분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당초 법 개정 취지와는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 관세청은 연 2만 달러 이상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람에 대해 월별로 관련 자료를 통보받는다는 관세법 개정안을 의원 발의했었지만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좌초됐었다.
관세청에서는 월별로 통보받는 대신 분기별로 통보받겠다며 한발짝 물러섰고 해외 여행자가 이용한 식당이나 호텔 등의 서비스업 사용내역은 제외한 채 물품 구매내역만 통보받는 것으로 대안을 내놨다.
애당초 법안의 타겟은 해외 여행자 중 고가의 물건을 사고도 자진신고하지 않고 몰래 들여오는 '얌체 여행자'였지만 관세청이 해당 자료의 온·오프라인 사용자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해외직구족까지 '특별관리 대상'이 된 셈이다.
관세청이 원활한 해외직구를 지원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개혁하고 있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윤 의원은 "해외여행자의 무분별한 탈세를 관리하기 위한 당초 법 취지 이외에 해외직구족의 자료도 관세청에 넘어가는 면이 있다"며 "이것이 타당한지 여부와 보완이 필요한지에 대해 향후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관세청장과 논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관세업계 관계자는 "세관에서 가지고 있는 출입국 자료와 해외 신용카드 구매내역 등을 대조한다면 해외 여행자들을 충분히 걸러낼 수 있을 것"이라며 "관세청이 전자통관시스템(유니패스)도 세계 최고라고 하는 마당에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관세청은 해외직구 역시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세청 관계자는 "6만명의 출입국 기록을 일일이 대조하는 것은 어렵다"며 "당초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홍보차원에서 해외 여행자의 탈세를 막기 위해 이를 도입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해외직구 부문도 중요하기 때문에 해외 온·오프라인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모두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