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파격적인 담뱃값 인상안(갑당 2000원 인상)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담배 한 갑에 부과되는 각종 부담금과 함께 국세인 '개별소비세'도 추가시켰기 때문이다. 국민건강과 관련한 물품에 붙는 일명 '죄악세(Sin Tax)'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세금을 통한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 등으로 야기되는 사회비용 감소와 세수확보라는 명분과 실리는 동시에 잡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출발부터 거대한 사회적 논란에 부딪혀 제대로 추진될 지 여부에 의문부호가 따라붙고 있는 모습이다.
'도박'에 가까운 정부의 시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담뱃값 2000원↑…개별소비세 추가 = 11일 정부는 현재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 방침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될 경우 당장 내년 1월부터 담배가격은 4500원으로 급격하게 올라간다.
담배가격 인상은 세금 인상 및 신설, 부담금 인상 방식으로 추진된다.
구체적으로 현재 641원인 담배소비세(지방세)는 1007원, 321원인 지방교육세는 443원, 건강증진부담금은 354원에서 841원으로 올린다. 자연스럽게 현재 234원인 부가가치세액도 433원으로 오른다. 여기에 정부는 '종가세(가격변동에 따라 달라지는 세금)' 개념의 개별소비세 594원을 붙이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물가연동제 개념을 도입해 종가세인 개소세가 물가상승에 따라 상승하게 만들어 담배가격이 물가상승률에 비례해 높이를 다르게 가져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목표는 흡연율 감소. 현재 43.7% 규모의 우리나라 성인남자흡연율을 2020년까지 29% 수준으로 대폭 낮출 계획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성인남성 흡연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2위)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담뱃값은 OECD 평균(6500원)에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는 논리를 담뱃값 인상 추진 배경으로 삼았다.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비가격 정책도 추진된다.
흡연 규제 차원에서 세계 주요국들과 마찬가지로 담뱃갑에 흡연 폐해를 경고하는 그림을 넣고, 편의점 등 소매점의 담배 광고를 전면 금지하도록 했다. 또 금연 치료를 받는 환자의 관련 비용을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 세수효과 '2.8조원'…흡연률 떨어져도 세수는 증가 =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2조8000억원 상당의 증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개소세 신설로 1조2000억원 수준으로 국세가 대폭 늘어난 반면 지방세는 줄어든다.
정부가 발표한 '금연 종합대책'에 따르면 2500원짜리 담배 1갑에 매기는 지방세(담배소비세+지방교육세)는 현재 962원에서 1450원으로 오르게 된다. 가격인상에 따른 담배소비량은 감소해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등 지방세는 오히려 줄어든다.
실제 정부가 담뱃값에 따른 흡연율 시뮬레이션 결과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 담배소비량이 34%(가격탄력도 0.425 반영)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고, 이 경우 담배소비세는 연간 1000억원 늘지만 지방교육세는 1200억원 줄어 전체적으로 지방세수가 2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방세의 일종인 담배소비세는 시도세로 분류, 흡연인구에 비례해 세수가 결정, 가격인상으로 인한 금연인구 증감에 연동되어 세수가 달라진다. 즉, 가격인상으로 재정에 손해를 입는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간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늘어난 국세로 거둔 개소세수 중 일부를 소방 등 안전예산 확충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골고루 분배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흡연률이 떨어져도 전체적으로 정부의 세수에는 큰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격인상폭이 담배소비량 감소에 따른 세수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현재 10명의 흡연자가 1갑씩 10갑을 소비할 경우 드는 비용은 2만5000원(1갑당 2500원X10갑)이며 이중 4명이 가격인상의 여파로 담배를 끊더라도 나머지 6명의 흡연자가 사용하는 비용은(1갑당 4500X10갑) 2만7000원으로 오히려 늘어난다.
정부로서는 흡연률이 큰폭으로 떨어지더라도 세수에 있어서는 결코 손해를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증세논란'의 핵심으로 담뱃값 인상 정책이 급부상한 이유도 바로 이 대목이다.
□ "전형적인 서민증세" 만만치 않은 반론 = 국민건강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담뱃값 인상에 대해 소비자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담배가격 인상의 목적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이유다.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국민건강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사)한국담배소비자협회(이하 KSA)는 11일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대해 "국민건강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전형적인 서민증세"라며 꼬집었다.
KSA는 이어 "담배가격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고 물가가 낮아 가격인상 여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담뱃세를 인상할 경우 저소득층과 서민계층의 흡연자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에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도 "부족한 세수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부자 증세 없이는 담뱃값 인상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정부의 이번 담뱃값 인상이 저소득층과 서민층에게 세부담을 전가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만약 정부가 이를 강행할시 국민들의 강력한 조세저항을 직면하게 될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특히 야당의 반발도 상당하다.
현재 정부의 담뱃값 인상 추진과 관련해 여야의 입장이 엇갈림에 따라 국회 통과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여당은 정부의 방침에 다른 목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다.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은 같은날 국회브리핑을 통해 "담뱃값 인상 논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 중요해진 요즘 시대에 불가피한 시대적·환경적 흐름에 따른 것"이라며 담뱃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어필했다.
하지만 여당은 1500원 수준의 인상을 내부적으로 검토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안과 큰 차이는 없지만, 여론 동향을 고려해 여당 입장이 더 낮은 수준의 인상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당은 대놓고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원내대변인은 11일 국회 현안브리핑을 통해 "명목상 이유는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지만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애꿎은 서민들 호주머니만 털겠다는 꼼수"라며 "이래저래 힘없는 서민들만 부자감세의 유탄을 맞게 된 셈"이라고 비난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정부는 담뱃값 인상과는 별도로 만성적인 적자재정을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재정정상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담배값 인상은 현행 과세체계대로 지방재정(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과 국민건강증진기금(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확충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