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으로 마약을 제조한다고?"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잡아내는 이도 있다. 마약반응이 나오지 않아도 현장에 대한 느낌과 확신만으로 끈질긴 추적 끝에 마약사범들을 체포하는 사람.
부산세관 최창실 관세행정관(사진)의 이야기다.
최 행정관은 현재 부산세관 조사2관실에서 마약수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최 행정관이 소속된 수사팀은 마약수사업무에 특화돼 있으며 공항만, 특히 부산·경남지역 공항만에서 발생하는 마약 사건 수사를 전담하고 있다.
마약사업의 동태를 파악하고 그들의 출입국 여부, 동행자 분석, 통제배달, 위장거래 등 각종 마약수사 업무를 통해 국민들이 마약의 위험성에 노출되지 않도록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업무특성상 자주 위험에 노출되고 상대적으로 고되, 관세청 직원들이 기피한다는 마약 수사 업무를 5년째 담당하고 있는 최 행정관.
그는 13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묵묵히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마약수사 뿐 아니라 관세법, 지적재산권, 외국환 업무 등 다양한 조사 경력을 쌓아 조직과 동료들, 민원인들에게 신뢰받는 관세인이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 마약사건에 관세사범 사건까지…"바쁘다 바빠" =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최 행정관은 대학 졸업 후 지난 2005년 관세직 7급 공채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로 관세청에서 수출입 통관 뿐 아니라 마약조사, 회환조사, 기업심사 등 다양한 업무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최 행정관은 관세직 공무원이야말로 국제화시대에 가장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해 관세청을 선택하게 됐다.
최 행정관은 2007년부터 마약수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관세법위반 사범, 대외무역법 위반 사범, 외국환거래위반 사범 등의 수사업무도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고된 시간이 없이 발생하는 마약 사건을 전담하면서도 틈틈이 일반 관세 사건도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있다는 최 행정관.
그는 그토록 좋아하던 낚시까지 끊은 채, 마약이든 일반 사건이든 힘든 일을 해결하고 나면 같이 고생한 동료들과 간단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전했다.
최 행정관은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어디든 물 맑은 곳에서 실컷 낚시를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 '원초적 본능'…감기약으로 마약 제조한 러시아 선원 '일망타진' = 최 행정관은 관세청에 입사해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감기약을 사용해 마약을 제조한 러시아 선원들을 끈질긴 추적 끝에 '일망타진'한 사건을 꼽았다.
지난 2010년 9월5일 이른 새벽 부산 감천항 세관 초소로부터 러시아 선원이 휴대한 가방에서 주사기, 감기약 49정, 기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품 12종, 휘발유, 버너 등이 발견됐다.
"용도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고 있으니, 마약계에서 조사를 해 주십시오"라는 긴급 연락을 받고 곧바로 현장에 출동한 최 행정관은 현장에 도착해 러시아 선원과 선원이 소지하고 있던 주사기, 약품 등의 물품을 보니, '이건 100% 마약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이 같은 생각으로 즉시 선원이 소지하고 있던 물품에 대한 마약테스트를 실시해봤지만 의외로 마약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초소를 나서던 최 행정관. 하지만 그는 "방 청소를 하면서 쓸데없는 물건을 부두 밖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가지고 나왔다"는 러시아 선원의 엉뚱한 답변 내용이나 초조함을 억지로 숨기려는 듯한 표정에서 뭔가 찜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최 행정관은 소지 물품을 임의 제출받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성분 분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또한, 평소 알고 지내던 러시아 영사관 관세 담당 영사를 찾아가 러시아 선원이 소지하고 있던 물품의 용도를 문의했다.
며칠 후인 2009년 9월 9일, 최 행정관은 러시아로부터 "일부 마약 중독자들이 저희가 보여 준 약품과 도구로 속칭 '몰카'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 성분 마약을 제조, 투약하고 있다"라는 답신을 받았고 국과수로부터도 "주사기 끝에서 극소량의 메스암페타민 성분이 검출됐다"라는 연락을 받게 되면서 곧바로 러시아 선원을 체포했다.
이후 러시아 선원들의 모발을 감정한 결과 메스암페타민 양성 반응이 확인됐고, 메스암페타민 복용을 시인 받게 됐다. 하지만 러시아 선원은 메스암페타민 복용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메스암페타민 제조에 관하여는 계속해서 완강히 부인했다.
제조기구가 같이 발견된 점에서 제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었던 최 행정관은 4차에 걸친 치밀한 심문 조사 끝에 결국 "승선하고 있는 선박의 어류 창고에서 감기약 등으로 4시간 만에 메스암페타민을 제조, 맥주에 타서 수차례 투약했다"라는 시인을 받음으로써 사건을 종결지었다.
최 행정관은 "이 사건을 통해 '부산항 출입 러시아인들이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감기약 등을 사용해 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해 투약한다'라는 소문의 실체를 명백히 입증했다"며 "범인이 마약을 투약하고 부산 시내나 해수욕장 등을 활보하려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 등에 대한 2차 범죄를 사전에 방지한 사례"였다고 말했다.
□ "집에선 빵점 아빠지만…" = 최 행정관은 현재 부산에서, 최 행정관의 아내는 집이 있는 경북 청도에서 맞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마약 조사 업무의 특성상 야근이 잦기 때문에 3살, 5살 아이들에게 자주 못 보는 아빠가 언제나 반가운 사람이라는 최 행정관.
그는 "마약 수사 업무 때문에 휴일도 없이 불시에 비상 출동할 때면 아이들과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빵점짜리 아빠만 보면 좋아라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업무를 보면서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주말이면 아이들과 청도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 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다"며 "앞으로는 기회가 되면 가족들과 좋은 곳으로 여행도 많이 가서 아내나 애들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 행정관은 최근 기피부서로 변하고 있는 마약 조사업무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마약 조사 업무에 5년 이상 근무하고 있으나 관세청 업무 중 조사 분야의 경우는 고단하고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한 업무특성 때문에 직원들이 점점 기피하는 부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가끔 힘이 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공직자의 임무이고 사명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관세청과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