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사이트의 캡처 사진
마음만 먹으면 돈을 받고 본인 통장을 넘기기란 어렵지 않다. 포털사이트 구글에 ‘대포통장 구합니다’라고 입력하자 대포통장 브로커들이 남긴 글들이 10페이지 넘게 검색됐다. 가장 위로 검색된 중소기업 홈페이지로 들어가봤다. 이 회사 일반게시판엔 직원들이 남긴 글이 아닌 대포통장 브로커들이 올린 글로 도배돼 있었다. 이번 달에만 대포통장을 구한다는 글이 수십 개 올라와 있었다. 급전이 필요해 대포통장을 팔겠다고 글을 남긴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부의 잇따른 대포통장 근절 대책이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것은 이처럼 인터넷에 불법 대포통장 홍보글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정부도 별다른 단속을 하지 않았다. 이들을 적발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전자거래금융법에 따라 본인 명의로 개설한 통장을 타인에게 넘길 때만 처벌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대포통장 불법 영업이 어떤 법적 구속 없이 가능하다 보니 정부의 대포통장 근절책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금융당국은 이런 지적을 반영해 앞으로는 대포통장 불법 광고글을 올린 사람도 법적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당국은 시중에 유통되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이런 내용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인터넷에 불법 대포통장 광고글이 끊이질 않다 보니 당국의 근절 대책에도 대포통장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며 “앞으로 대포통장 광고글에도 법적으로 처벌을 할 수 있게 되면 대포통장 유통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국은 현재 이를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대포통장 모집책들이 남긴 전화번호를 역추적하면 이들을 적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아예 홈페이지를 폐쇄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당국이 이런 방안까지 들고 나오려는 것은 전자금융사기가 근절되려면 금융사기의 매개 역할을 하는 대포통장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6월 농협 통장에서 주인도 모르게 1억 2000만원이 무단 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돈은 11개 금융회사의 15개 대포통장으로 송금됐다. 대포통장은 타인명의로 개설된 통장이어서 사기조직은 수사당국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마지막 돈을 찾는데 사용하는 대포통장만 잡으면 전자금융사기에 따른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대응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자금융 사기조직의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 보안담당은 “당국이나 은행이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면 사기조직은 이를 뛰어넘는 방법을 마련해 돈을 빼내기 때문에 이를 적발하기가 쉽지가 않다”며 “그동안의 대책이 일정 기간 효과를 발휘하다 곧 시들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