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보헤미안 최승희와 싸이
보헤미안은 세속적인 규범이나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 정신적 풍요와 자유로움 속에서 음악과 미술 등의 예술을 사랑하는 지식인이나 예술가를 일컫는다.
원래 보헤미안은 10세기부터 600년 정도 존재했던 체코의 보헤미아 왕국 사람들이다. 보헤미안이란 말이 예술적 의미를 가질 정도로 체코는 예술가의 나라이다. 동구권 국가였기 때문에 과거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체코를 방문한 사람들은 특히 수도 프라하의 문화적 아름다움에 크게 놀란다.
그런 아름다운 나라에서 훌륭한 예술가들이 태어나고 다양한 예술이 싹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사람이 문화를 만들지만 문화 또한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변신’을 쓴 천재 작가 카프카는 프라하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했으며, 밀란 쿤데라 역시 체코사람으로 정부에 의해 시민권이 박탈된 이후에는 타지를 전전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의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또한 체코는 시인이자 극작가인 지도자를 배출했다. 하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거리감이 없고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대통령이었다. 그가 보여준 그러한 낭만은 체코의 예술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체코에서 수많은 예술가가 배출된 이면에는 오랜 세월 동안 유럽 예술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그 나라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반만년 동안 동아시아의 문화를 이끌어 온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까지는 보헤미안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상당히 많았다.
무용가 최승희가 그런 보헤미안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1930년대에 이미 세계 순회공연을 했으며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 및 미국, 남미까지 진출했다. 프랑스에서는 피카소를 앞에 두고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으니 그야말로 개인이 이뤄낸 최대의 한류였다.
예술가의 진정한 자유로움은 타인과의 막연한 거리두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소통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최승희는 무용을 관람하는 대중들을 위해 자신의 작품에 해설을 도입하는 파격을 택하기도 했다. 예술혼은 관람자의 심장에 닿는 진실함이 아닐까? 보헤미안 최승희는 세계인의 심장과 소통하며 이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30년대 무용가 최승희를 잇는 보헤미안을 꼽으라면 나는 가수 싸이를 들 수 있다. 마치 고구려의 말 춤이 연상되는 그의 노래는 관객과의 거리를 없애 전 세계인을 하나로 만들었다. 비록 고급예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서 나는 혼을 느낄 수 있다. 무대 앞으로 달려가는 그를 보면 자유로운 영혼을 느낄 수가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보헤미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보헤미안은 누구일까. 비행기를 타고 수백만 마일을 돌아다니며 문화를 세일즈하는 사람일까. 외국에서 수많은 팬을 거느리는 한류스타일까. 아니면 대학로 소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울고 웃는 연기자일까.
누구도 될 수 있다. 누구라도 좋으니 많았으면 좋겠다. 보헤미안이 많으면 그 나라는 진정한 문화강국이다. 틀에 갇혀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