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 명성황후의 사진
120년 전 을미사변 때 일본군과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아픈 역사가 있다. 이 역사와 관련하여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뮤지컬, 드라마 등 공연물이 많고 행사도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사진이 없다.
어여머리를 한 명성황후, 독일인이 찍은 궁녀의 모습을 한 명성황후. 평민복장의 명성황후 사진 등 많은 사진들이 서로 자기 것이 진짜라고 말하지만 학자들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단지 추정만 할 뿐이다.
그중 평민 복장의 명성황후 사진을 보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떠올랐다. 우리가 아는 모나리자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두 개다. 하나는 루브르 박물관, 또 하나는 영국에 있다.
두 작품 모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진품이라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19년 눈을 감을 때까지 모나리자의 모델이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아 추측만 할 뿐 베일에 가려져 있다.
모습은 두 여인 모두 단아하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세인의 사랑을 받고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 속 여인들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10여 년 전 프랑스를 다녀온 지인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를 보고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고 했다. 지인은 그림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봤을 때 내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가 나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미소는 신비하기는 커녕 무서웠어요. 혹시 모나리자가 살아있는 여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죽은 영혼을 그린 초상화가 아닐까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그냥 웃었다. 사실이 아니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다양한 이력으로 보아 그가 영적으로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는 틀림없다.
얼마 전 지방에 거주하는 후암가족 중 한 분이 집을 정리하다 1949년 10월에 발간된 ‘오천년간 창업제왕 위인의사 선현존영’ 인쇄물을 발견하고 나에게 가져왔다. 족자 같은 인쇄물에는 72명의 인물사진이 있었고 그 중에는 명성황후의 그림 사진도 있었다.
그 명성황후 그림 사진을 보는 순간 1961년 학창시절에 경복궁 향원정을 지나가다 만난 한 여인의 모습이 생각났다. 조선시대 여인으로 피가 묻은 하얀 적삼을 입은 영가였다. 마른 몸매에 날씬한 허리, 아름다운 얼굴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내게 “때가 되면 향원정에 꽃을 띄워주시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때 나는 경복궁에서 죽은 수많은 궁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꽃을 부탁하고 사라진 여인 영가. 그녀가 명성황후 영가임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고, 지인이 가져온 족자 인쇄물에 있는 여인과 매우 흡사했다.
지금 명성황후가 분명하다고 단정할 만한 사진은 없다. 하지만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넘을 때 명성황후의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하니 일본에는 분명 사진이 있을 것이다. 문화재를 반환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성황후 사진도 빠뜨리지 말고 가져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