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인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학)가 중구난방, 엎치락 뒷치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7월부터 주도해 온 '초이노믹스'는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경기부양책이었다.
부동산을 담보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하고, 금리를 낮추고, 기업이 소유한 돈을 배당확대 및 사내유보금 과세 등으로 시장에 유통시켜 내수활성화와 소비 진작으로 불황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일이라면 '지도에 없는 길'도 가겠다는 각오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난 8개월 동안 최경환 경제팀이 쏟아낸 정책들은 혼란스럽기가 그지없다.
취임 초기 재정확대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굵직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는가 싶더니 지난 몇 개월 동안은 공공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에 방점을 찍었다. 노동·공공·교육·금융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며 경기부양과 구조개혁이라는 '두 마리 사자'를 잡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돈을 풀어도 생각만큼 경기가 살아나지 않은데다 구조개혁도 더뎌지면서 그의 발언은 힘이 빠지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논쟁과 연말정산 소급적용이라는 후폭풍으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모든 일에 총대를 메고 나섰던 그의 입에서 국회와 당정에 일을 미루는 듯한 발언도 흘러나온다. "더 이상 고성장은 없다.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발언에 이어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지난해 '경기 부양 정책 패키지'로 쏟아 부은 30조원이 효과가 없자, 올해 상반기에 10조원을 추가로 더 쓰겠다며 재정 조기집행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지 최 부총리는 "임금이 올라야 내수가 회복된다"며 기업에 임금인상을 압박하고 나섰다.
정책 메시지가 자주 바뀌어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여권내부에서도 고개를 든다. "공격적 부양을 외치다 구조개혁으로 전환하고, 두 개 모두 성과가 나지 않는지 이제는 임금을 올리겠다고 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볼 멘 소리도 쏟아진다.
어느 것 하나 정책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한 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건드려보는 중구난방식 정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권을 걸고 추진해도 모자랄 구조개혁의 추동력만 급격하게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최저임금을 이른 시일 내에 올려야 한다는 지난 4일의 발언은 경제활성화 정책의 방향이 성장을 통한 내수회복에서 임금인상을 통한 소비진작으로 바뀐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에 와서 소득주도성장 카드를 꺼내 들었으며 기존의 '초이노믹스'가 사실상 실패했음을 최 부총리 스스로 인정했다는 분석들이다.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려야 한다는 최 부총리의 언급에 새누리당과 청와대 지도부가 한 목소리로 뒷받침하기로 합의했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박근혜정부가 소득주도 성장기조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까지 한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경제성장보다 일자리창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정부와 정치권이 갑자기 내수 활성화를 해야 한다며 소득증대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소득증대는 엄밀히 말해 내수 활성화의 결과이지 수단은 아니다. 가계소득 증대 정책은 소득 있는 사람들의 소득을 더 올려 주자는 것으로 소득이 없는 사람들은 그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 정책은 경기부양 효과는 별로 없이 소득 분배만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도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간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영세 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 문제가 악화될 위험도 있다.
정부가 기업을 압박해 억지로 임금을 올리도록 하면 장기적으로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임금과 고용비용을 올려서 생산과 고용을 늘리는 것은 경제이론상으로나 현실로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 논의도 그 내용은 대부분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비정규직 보호,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 부총리의 발언이 있은 바로 다음 날 올해 적정 임금인상률을 1.6% 이내로 제시했다. 적정 임금인상률을 제시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 최저치였다.
설사 임금근로자 등의 소득을 늘린다 한들 내수가 과연 살아날까도 의문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연령대를 막론하고 소비지출을 자제하고 있다. 소득증가에 비해 소비지출 증가폭이 갈수록 줄고, 노후대비를 위한 연금보험지출은 크게 느는 추세다. 또 국내에서 소비보다 해외관광 등으로 외국에 나가서 쓴 돈 역시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런 상황 등을 고려하면 정부정책이 너무 즉흥적이고 비전문적이란 지적도 따갑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각계 경제전문가의 65%가 지금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로 중국 기업들과의 지속적인 기술격차 감소 및 신성장동력 부재, 가계부채의 지속적증가로 인한 내수둔화가 꼽혔다. 그 다음으로 경제 불확실성 증가와 영업이익 악화로 인한 기업의 신규투자 부진이다. 한마디로 경제를 이끌어갈 엔진이 노후화된 데다 높은 가계부채로 내수증대의 여지가 적다는 얘기다.
야당은 '초이노믹스'가 실패했다며 경제정책기조의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비박(非朴)계의 유승민 여당 원내대표는 현 경제정책이 근본적 성장대책이 못된다며 '초이노믹스'에 직격탄을 날렸다. "돈 좀 더 풀고 금리를 내리는 건 성장 방법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비타민 한 알 먹는 정도다. 단순히 규제를 완화해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그런 수준의 정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초이노믹스' 안팎에서의 위기다.
'초이노믹스'로 대표되는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은 지금까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물가·생산·소비·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적신호다. '불어터진 국수'를 먹고서도 부동산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미친 전세'가 비슷한 가격의 매매수요로 전환되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
경제체질을 강화해 성장 동력을 확충하고, 경제의 혈액순환을 돕는 구조개혁 같은 중장기 과제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조급한 마음에 마구잡이로 정책을 남발하기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경제주체들을 착실히 설득해 나가는 길 말고는 달리 왕도(王道)가 없다는 데 우리 모두의 고민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