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연말정산 개혁보고서 Ver1. '대한민국'을 담자(上)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던 연말정산 보완대책이 나왔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붉게 달아오른 여론의 화살을 식히는, '임시방편' 처방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는 대략 1600만명.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조세정책을 어떤 명분과 내용을 가지고 추진하는지 여부는 국가경제를 떠나,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정치적 측면에서볼 때 정권의 '몰락'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연말정산 대란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시간이 촉박했다는 문제도 있지만, 지난 7일 발표된 정부의 연말정산 보완대책은 말그대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보완'일 뿐 '해결책'은 아니었다.

연말정산 보완대책에 담긴 내용에는 정부의 깊은 고민이 담겨있지 않는 모습이다.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더 큰 불로 번질 소지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 없애는 것이다. 정부의 고민은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근심, '저.출.산'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공인된 저출산국이다. 지난 201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21명으로 '초저출산' 기준선인 1.30명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합계출산율이 1.19명(2012년 기준)으로 유지될 경우 2750년 적어도 한반도 남쪽 나라에서는 '한민족'이 살라질 것이라는 인구소멸론까지 나올 정도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의 속도는 빨라지면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도 출산율 제고를 위해 출산장려금 지급, 난임부부 지원, 어린이집 무상보육 등 어마어마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2013년 세법을 개정하면서 자녀소득공제 체계를 세액공제 체계로 전환하고 자녀장려세제(CTC)를 도입한 이유도 출산지원 정책의 일환이었다.

당시 정부는 출산·입양 공제(1인당 200만원 소득공제) 및 6세 이하 공제(1인당 100만원), 다자녀추가공제 모두를 폐지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연말정산 대란의 '도화선'이 됐다. 

국세청이 발간한 2014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기준 6세 이하 자녀 공제를 받은 근로자는 150만여명, 출산 및 입양자 공제를 받은 근로자는 26만여명. 단순하게 말하면 2014년 연말정산에서 이 정도 숫자의(또는 그 이상) 근로자들이 세금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근로자들의 불만이 크게 늘어나자 정부는 부랴부랴 셋째 자녀부터 1명당 30만원, 6세 이하 자녀가 2명 이상일 경우 둘째 자녀부터 1명당 15만원을 추가공제해주는 보완책을 내놓았다. 출산·입양세액공제(1명당 30만원)도 신설했다.

근본적인 문제해소보다는 세액공제액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여론 무마를 시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당초 자녀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 소득재분배 효과도 있지만 자녀장려세제(자녀 1인당 최대 50만원 연 1회 지원)가 2015년 지급개시되면 제도 개편 이전보다 자녀와 관련한 세금혜택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맹점'이 숨어있다. 부부합산 소득 4000만원이라는 전제조건이다.

기존 제도는 개별 근로자의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아이를 낳고 입양하는 숫자에 비례해 국가의 혜택(세금지원)이 늘어나는 반면, 개편된 제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근로자 계층에 대해서는 출산유인 자체를 없애버리는 셈이 된 것이다.

특히 '부부합산 소득'이라는 조건을 고려할 때 맞벌이 근로자의 경우 이론적으로 소득 2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만 수급이 가능하다. 실질적으로 근로소득 면세점에 가까운 저소득 근로자들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이라는 것이다.

고소득 근로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 형성된 재원으로 저소득 근로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발상이 소득계층을 차별하고 출산율 제고와는 완전히 엇박자를 내는 기형적 제도를 만들어 냈지만 근본적인 고민은 하지 않은 채 '여론진화용' 대책만 내놓은 것이다.

3포세대, 5포세대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캥거루족(Kangaroo)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취직을 해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대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3포, 5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쓰라린 현실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0.9%. 고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은 대학에 진학한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근로자들에게 또다른 의미가 있다.

만 20세를 넘긴 자녀는 '인적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만 20세를 넘긴 대학생 자녀는 인적공제는 물론 자녀공제도 받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소득증가와는 별개) 근로자들이 '연말정산을 받을 것이 없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문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대학등록금은 가계의 부담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교육비 공제(대학생 자녀 1인당 연 900만원 한도)로 어느 정도 완충이 가능하지만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부족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교육비는 지난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됐다. 교육비의 세액공제율은 15%로 한도를 꽉꽉 채워 900만원 세액공제 받더라도 15%의 세율을 적용하면 135만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납부세액 자체가 적은 근로자의 경우는 소용도 없다.

세액공제는 납부세액에서 공제를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납부할 세액이 135만원 이하라면 온전히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높은 대학등록금이 부담이어도 자녀가 대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취업이라도 된다면 한숨을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불황으로 취직을 아예 포기하거나 대학원 진학 등을 이유로 부모의 경제적 틀안에서 머무는 젊은층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연말정산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과 일치한다. 부모의 경제적 틀에서 벗어나는 완연한 '독립'의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세법에서는 민법상의 성인 기준(만 20세)을 따라가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발상의 전환'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한 연말정산 제도 개편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과거에 얽매인 생각과 시각에서 벗어나 현실에 맞게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정부에는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1.21명 수준인 합계출산율을 2020년까지 1.4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저출산은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만큼 근로자들에 대한 세금정책을 출산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출산 및 보육(교육)과 관련한 소득공제(세액공제) 체계는 세수를 고려하는 '국고주의적 관점'부터 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출산을 꺼리는 이유가 육아에 대한 부담, 교육에 대한 부담이기 때문에 당장의 세수감소를 두려워하지 말고 공제의 폭(공제율 등)을 현재보다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 자녀(직계비속)의 경우 일률적인 나이요건 설정이 아닌 자녀가 실질적으로 부양가족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시점까지는 인적공제 대상으로 유지하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한정 확장이 어렵다면 최소한 만 25세로 기준선을 끌어 올리는 방향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 20세에 부모의 품을 떠나 일가(一家)를 이루는 사례는 우리사회에서 더이상 찾아보기 힘든 '골동품'이나 다름없다.  

고령화 현실을 적절히 감안한 인적공제 개편도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할 대목으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인구 수는 16.7명이며 2020년에는 22.1명, 2040년에는 57.2명, 2060년에는 80.6명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 1명당 노인 1명을 먹여살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연말정산 인적공제 체계는 직계존속의 경우 만 60세 이상 부모의 경우(실제 부양여부 무관) 1인당 100만원, 만 70세 이상인 경우 1인당 100만원을 추가공제(경로우대)하는 형태다.

특히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지난해 출생한 아기를 기준 82세로 10년 전에 비해 평균 4세 늘어나는 등 이제는 60대 초중반을 노인으로 분류하기에는 '시대의 눈높이'가 확실히 달라졌다.

우리나라 노인 78.3%가 노인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보건복지부)와 60대 이상의 구직자도 늘어나고 있는 통계를 감안하면 소득기준(연간 소득금액 100만원 이상)이 적용되는 직계존속 인적공제 체계는 달리 접근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직계존속 기본 인적공제와 경로우대 공제 나이기준을 조정해 만 65세 이상으로 통일하되 공제금액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근로자에 대한 조세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는 체계로 제도를 개편하면 당장의 세수부족은 불가피하지만, 생산가능인구의 증가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조세전문가는 "현행 연말정산 제도는 70~80년대 만들어진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60대 이상 노인들 중 경제적 기반이 부실한 계층도 있지만 경제성장 시기에 활동을 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갖춘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20대 초반 청년들은 기반을 잡지 못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며 "이제는 저출산, 취업난 등의 사회적 현상을 고려해 연말정산 제도를 근본적으로 성찰해 개편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와 세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강상엽, 류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