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長考)'를 마친 조용근 전 세무사회장이 결국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이미 2차례(제25대, 26대) 세무사회장을 지낸 노련미에 사회적 명망까지 탄탄하게 갖추고 있는 그가 4년 동안의 공백을 깨고 세무사회원들에게 복귀 소식을 알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복귀 길을 열어준 것은(?) 정구정 현 세무사회장이다.
조 전 회장은 지난 11일 세무법인 석성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달 18일부터 진행되는 제29대 세무사회장 선거에 출마할 것을 공식 선언하며 "세무사회라는 팀이 패망 직전에 있을 때 원포인트 투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물의 등장에 선거판은 그야말로 '안개정국' 속으로 빠져들었다. 출마를 염두에 두고 왕성한 활동을 해왔던 3명의 출마예상자(백운찬, 손윤, 이창규 세무사)들은 각자의 주판알을 튕기며 앞으로의 선거구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 전 회장은 편법에 가까운 유권해석을 통해 3선의 명분을 만들어낸 정구정 회장이 만들어 놓은 흐트러진 '판'을 수습하겠다는 명분으로 세무사회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의 출마로 이번 선거는 확실하게 '친(親) 정구정' vs '반(反) 정구정' 진영의 결전양상으로 굳어졌다.
□ '4자 구도', 끝까지 갈수 있을까? = 조 전 회장이 출마선언을 함에 따라 이번 선거는 일단 4파전 양상으로 재편됐다. 이미 안팎으로 치열한 표밭갈이 경쟁을 벌이고 있던 3명의 출마예상자들은 조 전 회장의 행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조 전 회장을 제외한 3명의 출마예상자들은 표심을 자극할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백운찬 세무사는 세무사회 최초 차관 출신 후보로 뛰어난 대외 역량을 갖추고 있는 점, 손윤 세무사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세무법인(오늘)을 단기간 안에 우뚝 세운 저력을 바탕으로 개혁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이창규 세무사는 다양한 회무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 회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조 전 회장은 각 후보들의 장점을 모조리 집어 삼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조용근'이라는 이름이 가진 가격 또한 비교불가한 수준이다.
우선 조 전 회장은 국세청에서의 오랜 경험과 고위공무원(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이력을 바탕으로 대외역량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아울러 조 전 회장이 이끌고 있는 세무법인 석성은 '봉사'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전국에 8개 지사를 보유한 꽤 성공한 세무법인이기도 하다. 이미 4년 동안 세무사회를 이끌어 본 경험 또한 타 후보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지금의 4자 구도가 선거 끝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은 한 달동안 출마 포기 또는 단일화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만약 단일화가 된다면 조 전 회장을 필두로 한 반(反) 정구정 진영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관측. 세무사회 바로세우기 연합회가 조 전 회장의 출마결심을 설득하려 했던 이유도 넓게 보면 반 정구정 진영의 결집을 위한 확실한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일각에선 조 전 회장이 선거에 합류하면서 반 정구정을 표방한 타 후보들이 모두 선거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할 경우 서로의 표를 갉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단일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반드시 해 내고 넘어가야 할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창규 세무사와 손윤 세무사는 당장 판단을 유보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단일화의 가능성을 잘라버린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창규 세무사는 "단일화를 한다면 비교적 생각이 비슷한 손윤 세무사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단일화에 성공한 적도 있다"며 "조용근 회장과의 단일화는 현재로서는 힘들다. 지난 선거에서 3선을 반대하며 출마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손윤 세무사는 "아직 단일화 계획은 없지만 지난 선거 때 내가 양보를 했듯 이번엔 이창규 세무사가 양보를 하면 당연히 단일화를 할 생각이 있다"며 조용근 회장은 평소 존경하던 분으로 단일화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백운찬 세무사는 조 전 회장의 출마소식에 대해 "모든 것은 세무사회원들이 판단할 문제"라며 "공정한 선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3선 출마, 문제는 없나 = 한국세무사회칙 제23조 제6항 '회장 및 감사는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이 규정은 세무사회원들 사이에서 '불행의 씨앗'으로 불린다. 평생 2번만 회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연달아 2번까지만 회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회원들마다 판단이 엇갈려 세무사회의 분란을 초래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달아 2번까지만 회장을 할 수 있다는 연임제한규정을 적용해 3선의 길을 열고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선에 성공한 정구정 회장. 회원들은 유권해석을 통해 정해지는 회칙이 아닌 명쾌한 규정을 원하고 있지만 아직 중임 규정은 그대로다.
조 전 회장은 정구정 회장이 열어놓은 3선 길을 그대로 올라탄 뒤 당선을 전제로, 이 처럼 논란이 많고 문제점이 분명한 회칙규정 등을 모두 고쳐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세무사회를 홍해처럼 갈라놓은 이 '불행의 씨앗'을 밟아 없애겠다는 것이다.
조 전 회장은 출마의 변을 통해 "이번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3선을 하게 돼 '범법자'가 됐으니 회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얘기하건데 사심은 없다"고 밝혔다.
3선을 '범법자'라고까지 표현하며 출마를 강행한 조 전 회장. 마음의 짐은 되더라도 일단 현 회장이 3선 회장이기에 출마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임제한규정을 택한 세무사회에서 조 전 회장의 출마를 막을 수는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