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주에서 열린 '한국세법학회 하계학술대회'에 참석한 안경봉 국민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단순히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조세범 처벌법'을 적용해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조세포탈의 근거로 보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를 판단하는 잣대가 다소 모호하기 때문에 조세범 처벌에 대한 요건을 엄격히 해석해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안경봉 국민대학교 교수는 지난 17일 (사)한국세법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참석,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납세환경의 변화와 조세범처벌법상 사기 그 밖의 부정한 행위의 판단기준'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학회에서는 국세기본법과 조세범 처벌법에 각각 규정된 '부정행위'의 의미가 집중 조명됐다.
논문에 따르면 조세범 처벌법은 2010년 전면적인 개정으로 포탈범의 규정형식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개정 전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라는 추상적인 개념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개정을 통해 구체적인 예시규정을 두면서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세범처벌법에서 명시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의해 조세의 부과나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어렵게 하는 적극적 행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안 교수는 "현저한 곤란함이란 불가능과 동격으로 열거되어 있으므로 불가능에 준하는 정도로 곤란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 이상, 단순히 조세의 부과에 방해가 되거나 어렵게 한 것만을 가지고는 사기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의적으로 장부를 작성하지 않거나 비치하지 않는 행위'도 조세범 처벌법 예시규정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나, 이러한 행위를 적극적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실제 법인세 신고서 및 신고서에 첨부되는 재무제표만 허위로 작성해 제출하는 경우(단순 허위신고)는 세무조사 시 기초 장부만 대조해도 바로 그 허위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일관되게 '조세의 부과가 현저히 곤란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안 교수는 "조세범 처벌요건은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면서 "예시행위를 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세무조사 시 평균적 능력을 가진 세무공무원이 통상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도 적발이 어려운 때만 조세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현행법상 예시된 7가지 부정행위 유형만으로 조세범 처벌요건을 가늠할 수 있다는 반박성 주장도 나왔다.
권기환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이날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의 의미'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법에 예시된 7개 행위만 있으면 조세부과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적극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 검사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의 본질은 기망행위에 있다"면서 "이렇게 해석하면 장부의 미기재나 비치하지 않은 행위를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의 예시규정으로 열거한 이유에 대한 해석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다만 "기망행위에 범주를 무작정 확대하는 것은 불성실신고 가산세 등을 두고 있는 취지 등에 비추어 합당하지 않으므로, '조세의 부과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어렵게 하는 사정'에 의해 적절히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토론에 참여한 대부분 학자와 법조계인사들은 "납세자가 예시된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조세부과가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해진 때만 조세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견해가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한국세법학회 회장 한만수변호사는 현행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조세범 구성요건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날 학회에서는 양인준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와 서보국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각각 '가산세에 있어서의 부정행위의 의미와 판단기준' '부과제척기간에 있어서의 부정행위의 의미와 판단기준'이라는 내용의 주제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