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 추진을 올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삼고 당․정․청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노동계의 반발로 중단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 활동을 재개시키고, 새누리당 내에 노동부 장관 출신인 이인제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노동개혁 특위도 구성키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으로 우리경제의 재도약과 세대 간 상생을 위한 시대적 과제”임을 강조하고 “청년들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제활성화 노력과 함께 노동시장구조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한다”고 역설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박대통령과의 청와대 독대 후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국민과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면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해나가겠다”고 거듭 공언하며 배수진을 친 상태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 고용시장 유연화 등 노동개혁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고 추진 과정에서 노동계의 대규모 반발 등 큰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금의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하자는 공감대는 넓게 퍼져있다. 노동시장 유연성 세계 70위, 효율성 세계 86위, 노사협력 140위는 새삼 들먹일 필요가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장년과 청년세대, 남녀, 고학력과 저학력 등 5개 분야에서 큰 격차 등 이중구조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는 등의 여파로 향후 3~4년간 청년들에게 ‘고용 절벽’이 닥칠 우려가 있고, 한국의 청년층 실업률이 장년층의 3.7배, ‘고학력 백수’가 청년실업자의 52%를 차지하는 등 남유럽 스타일을 닮아간다는 경보도 울리고 있다.
노동개혁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문제는 방향과 추진방식이다. 정부와 노동계, 재계가 지난해 8월 노동시장을 선진화하자며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를 가동했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과 ‘일반해고 지침’ 등 노동시장 유연화장치를 두고 극심한 의견 차이를 보이다가 결국 지난 4월 한국노총 측이 대화결렬을 선언하면서 대화가 중단된 상태다.
이후 정부는 내년 정년 60세 연장으로 늘어나는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행정지침으로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한국노총이 1997년 이후 18년 만에 총파업을 결의하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연대투쟁을 선언하자 이마저 유보했다.
개혁의 첫번째 쟁점인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 여권은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임금수준이 높은 고령 근로자의 희생 없이는 청년실업 해법도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법적으로 정년이 늘어나더라도 실질적으로 명퇴 등으로 근로자의 정년이 5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임금삭감 효과밖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두번째 쟁점은 노동시장 유연화다.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23조를 개정해 현재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가지 뿐인 해고요건에 ‘일반해고’를 추가하는 것이다. 요건이 까다로운 징계해고나 정리해고와 달리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태도 불량자 등에 대해서도 해고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여권은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결국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로 이어진다며 상생 협력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일반 해고를 도입할 경우 사업주가 자의적 판단에 따라 근로자를 해고하는 소위 ‘쉬운 해고’가 가능해져 결국 전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를 초래한다며 극렬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같은 개혁방안은 정책의 실패를 정규직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이며 더 낮은 임금과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을 불러올 뿐이라며 노동단체와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중단된 노사정위원회의 재가동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사회적 대타협’을 앞세워 국회가 적극적 역할을 하고 한국노총 및 민주노총의 양대 노총과 함께 새정치연합도 참여하는 새로운 노사정 합의체를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기업 노조가 중심인 양대 노총의 조직원은 임금근로자의 10%에 불과해 ‘기득권 정규직 노조’인 양대 노총이 비정규직 등 전체 근로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앞서 공무원연금개혁 때 실무기구에 이해 당사자인 공무원단체를 포함시키는 바람에 이들에게 휘둘려 ‘맹탕 개혁’에 그치고만 악선례도 반론에 힘을 보탠다.
노동개혁은 노사정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가능하다. 양쪽에서 욕을 먹더라도 대타협을 끌어내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이는 여당 지도부만으로는 안 되고, 대통령이 노사정 협상 현장을 찾아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노사 대표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이는 시간이 걸리고 정권을 잃을 각오로 매달려야한다. 박대통령에게서 이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노사정 대타협에 의한 개혁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정부 여권이 개혁다운 개혁안을 만들어 밀어붙여야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표를 잃을 각오’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여권의 ‘결기’에서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타협에 집착하다보면 개혁의 대의를 저버리는 공무원연금 개혁 때의 전철을 밟기 십상이다. 국민설득과정에서 기득권노조 대 비정규직, 장년 대 청년실업 등 세대 간 대결구도로 몰아가면 여권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고, 어차피 개혁반발세력은 여권지지표가 아니라는 현실적 계산도 꿈틀거리는 것 같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노동개혁이 “향후 30년의 성장을 위한 토양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면 더더욱 노동계를 끌어안으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대화와 설득, 자발적인 고통 분담과 사회적 인내가 요구된다. 독일의 하르츠개혁도 2년에 걸쳐 4단계로 나뉘어 추진되었다. 우리의 노동개혁도 단 한 번의 대타협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사실 임금피크제와 취업규칙변경은 입법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에는 업종 및 개별기업 간 차이가 크고, 이해조정 과정에 변수도 많다. 노사 간 자율협약에 의한 조정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정부는 큰 틀에서 투자 및 청년고용증대, 사회안전망 확대와 대기업 중소기업간 상생 등을 통해 그 여건을 조성해 크고 작은 타협의 멍석을 부단히 깔아야한다.
독일과 일본은 임금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노동유연성을 높였다. 노조는 고용안정을, 기업은 비용절감을 나누어 갖는 타협은 신뢰가 쌓이고 노사협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우리의 노동개혁 또한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고용을 안정시키면서도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