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2015년 세법개정안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무난하다, 로 압축되고 있다. 다만 당장 눈앞에 놓여 있는 상황에 최적화된 손질만 이루어졌을 뿐 오랜 기간 동안 문제시 되어왔던 부분에 대한 개편방향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상속증여세율 조정과 가산세 제도 개편이다.
특히 상속증여세율 조정은 정부는 물론 조세재정연구원 등 연구기관 및 조세전문가들이 모두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꽤 긴 시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아온 정부는 수 년 전 작성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통해 상속증여세 과세체계 개편을 개선과제에 포함시켜 놓기도 했다.
조세연구원도 최근 "상속세율을 인하하든지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현재 50%인 상속증여세율을 소득세 최고세율(38%)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2015년 세법개정안에는 상속증여세율 개편과 관련한 언급이 단 한 줄도 담기지 않았다.
□ 상속증여세율 인하 요구 왜? = 일단 세율 자체가 주는 '심리적 충격파'가 크다. 최고세율이 무려 50%다(누진체계 1억원 이하 10%, 1억원~5억원 20%, 5억원~10억원 30%, 10억원~30억원 40%, 30억원 초과 5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26%) 2배 수준이다.
게다가 각종 공제가 적용, 10억원까지 비과세다. 200만원 월급을 받는 근로자도 모두 세금을 내는데 10억원까지 비과세를 적용하다 보니 조세형평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한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특정 기업(매출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의 경영상속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막지한(?) 공제혜택을 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법을 통한 세금회피가 난무하고 실질적인 세수효과는 적어지는 등 '바보세'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이중과세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6월23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이 공동주최한 '상속증여세 정상화 토론회'에서도 이중과세 문제, 과도한 세율에 관한 문제 등 현행 상속증여세에 대한 문제점 지적 및 개선방안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당시 강석훈 의원은 "현행 제도가 경제발전을 저하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안만식 이현 세무법인 대표도 "상속증여세 제도를 현재의 납세환경 및 평등조세에 대한 국민 의식과 맞도록 개선해야 한다. 유산취득세 개념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현재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속증여세 제도의 근본적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 홍성일 팀장은 "외국도 우리보다 세율이 낮다"며 "상속세율 자체가 굉장히 높아 세금을 피하려고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행의 상속세보다는 자본이득과세 형태로 세제를 전환해야 하지만 공론화 과정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상속증여세 문제에 가장 접점에 서 있는 기업들도 제도개편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기업의 관계자는 "선진국인 독일, 영국은 세제 혜택이 많고 홍콩, 싱가폴, 뉴질랜드는 상속세를 폐지했고 스웨덴, 캐나다, 호주처럼 낮은 자본이득세로 대체한 국가도 많다"며 "상속증여세는 과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이런 문제는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과도한 세금 때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 기업 옥죄는 '가산세', 경제활성화 한다는 정부는 '묵묵부답' = 가산세 제도을 둘러싼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높고 광범위하며 억지성(?)이 가미되는 등 현재 세법에 명시된 가산세 제도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재계는 현행 가산세 수준을 대폭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가장 문제가되는 연 11%의 납부불성실 가산세율을 국가가 부담하는 환급가산금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을 돌려줄때는 쥐꼬리만한 이자를 붙여 돌려주면서, '불성실'을 이유로 매기는 가산세는 커다란 혹을 붙여 부과하는 것은 지나친 '놀부심보'라는 지적이다.
지난 4월21일 조세일보가 주최한(세법연구회, 새누리당 강석훈,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공동주최) 가산세 제도개편 관련 토론회에서도 전문가들의 개편요구가 쏟아졌다.
당시 토론회 발제를 맡았던 박윤준 선진회계법인 고문(전 국세청 차장)은 "우리나라의 가산세 제도가 '자기시정 유인의 절벽'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가산세 체계를 납세자가 자발적 신고를 할 수 있게끔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현행 가산세 제도는 납세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사유나 동기, 의무위반 정도 등이 고려되지 않아 납세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개편 필요성을 역설했다.
□ 정부 옭아맨 '프레임' = 정부가 상속증여세율 문제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적인 부분과 맥이 닿아 있다.
세법논리 측면에서 상속증여세율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필요성을 가진 대목. 하지만 '부자감세'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힌 국민정서를 고려할 때 선뜻 나서기가 애매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조세정책이 정치적 외풍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한 조세전문가는 "정부가 세법개정안 등을 통해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추진할 경우 만만치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시간을 무턱대고 끌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공론화 장에 올려놓고,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산세 조정 문제는 정치적인 부분과 맥이 닿아 있지 않지만, 가산세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시각'이 제도개편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성숙하지 못한 납세의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가산세 부분은 다소 징벌적 수준(벌칙)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 스스로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 친시장적인 측면에서 가산세 제도 전반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