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기울고 있다. 800년 전인 1215년 영국에서 근세사에 특기할만한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해 6. 15. 존 왕이 대헌장으로 불리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서명한 것이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교황과도 충돌하여 파문당한 상황에서 마지못해 귀족들에게 약속한 문서이기는 하나 왕권의 제약을 통한 근대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보장의 단초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내용에는 조세를 포함한 봉건적 부담의 제한, 자유민에 대한 체포, 구금 추방 등 인신보호 및 재산권의 보장 등 여러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마그나 카르타를 계기로 후속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통한 부르조아의 혁명을 통하여 왕권은 지속적인 제약의 길을 걸었고 의회정치의 기틀이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전 동서고금을 통하여 조세 부과는 왕명 등 어떠한 형태이든 법령의 형식으로 부과되었겠지만 그 성립에 있어 귀족집단의 동의를 필요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세사적 의미가 크다.
법제사의 측면에서는 마그나 카르타가 법치주의에 의하여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특히 마그나 카르타에서의 조세와 인신보호 및 재산권보장 규정은 권리장전 이후에도 이어져 프랑스인권선언, 미국독립선언 등 일련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천부인권설까지 가세하여 시민의 확고한 권리로서 자리 잡았다.
마그나 카르타 800년, 오늘의 우리 조세제도의 현실과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조선봉건왕조 이후 근대화기의 대한제국, 일본의 지배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그 이전 조선왕조의 체제, 법제와는 뿌리를 달리하는 서구의 그것이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주변을 보자. 말과 음식은 그 정도가 덜하지만 입는 옷, 머리 스타일, 주거 등 전통적인 것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치와 법제도 서양의 것을 받아들여 이제 우리 것으로 토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세제에서 세종의 공법은 무려 14년에 걸쳐 주민투표, 시험실시 등을 거쳐 완성도 높게 시행된 자랑스러운 유산이지만, 오늘 이는 역사적 사실로만 남아 있을 뿐 이다.
반면 마그나 카르타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세법률주의는 이제 국제사회에 공리로서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의 조세법률주의는 내실 없는 답보 상태를 계속하다가 1988년 현 헌법재판소가 출범함에 따라 획기적으로 정착되었다. 수많은 조세법률이 헌법재판소에서 조세법률주의, 헌법상의 재산권보장 위반을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은 결과이다.
그렇지만 조세형평과 실질적 조세법률주의의 측면에서는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조세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보수와 진보의 시각,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 자본과 노동의 자리매김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한 문제에 대한 담론은 제쳐두고 우리가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조세입법의 업그레이드이다.
수시로 바뀌는 세법, 좀더 전문적인 검토와 신중함이 필요하다. 일감몰아주기, 일감떼어주기 과세 등 독창적인 세법은 그 필요성과 집행력, 지속가능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예산국회에서 조세소위의 밀실에서의 주고받기 입법은 납세자를 무시하는 행태이다.
둘째, 제도개선이다. 이제 과세정보의 비대칭성이 오히려 문제될 정도이다. 납세자의 개인정보, 사생활을 더 보호되어야 하고 애매하더라도 과세하는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판단한 과세처분이 대법원에서 유지되는 모순은 어떠한 형태로든 결말을 내야한다. 2003년 귀속 재평가관련 법인세가 관련 조항에 대하여 위헌결정이 있었음에도 대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이에 대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2년 이상 되었어도 아무런 답이 없다. 이미 선례가 있는 사안인데도.
셋째, 우리 납세자의 납세의식이다. 제대로 세금을 내야한다. 일본에서는 소득세 단순무신고도 형사처벌을 한다. 벌이 무서워가 아니라 성실납세는 국민이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다. 세금의 낭비는 전 납세자가 나서 감시하면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좋은 세법을 만들고 제대로 집행되고, 올바른 판결에 의하여 선순환되는 선진 조세사회의 정착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15년이 저무는 시점에서 마그나 카르타 800주년을 마감하게 되는 소회가 남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