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같았으면 손자 뻘이 될 늦둥이 아들을 본 을미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과거 중년의 의미는 마흔살 안팎이었으나 100세시대에는 40대, 50대를 아우르는 말로 넓어지는 중이다. 40대 후반이 돼 동창회에 가니 스펙과 상관없이 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하는 ‘삼척동자’가 있게 마련이다. 과거의 삼척동자 요소 중 요즘은 있는 척이 빠지고 젊은 척하는 게 들어갔다고 한다.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있는 척하기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외모의 가치가 높아지는 트렌드를 반영한 탓일까.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는 현실 정치에 울분을 토로하던 이들도 어느새 ‘인생 뭐 별 거 있어’, ‘술 마실 때 정치 얘기하지 마’로 변해간다. 굳건한 체념과 달관으로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요즘 ‘먹방’이 대세인지도 모른다.
‘나이 마흔이면 길가에 침을 뱉어도 외롭다’는 이철승 시인의 시구처럼 배회하고 우울감에 빠진 중년들이 널려 있다. 공자는 나이 40에 불혹(不惑, 헷갈리는 일이 없음)하고, 50에 지천명(知天命 자신의 분수를 앎)했다고 설파했는데 지금의 40~50대는 경제현상의 톱니바퀴로 살면서 한치 앞도 분별 못하는 어린아이로 살지 않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연말을 앞두고 노자의 무위, 부처의 해탈, 예수의 사랑을 새삼 음미해보게 된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잘난 체 하는 독선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지만 본래 석가가 개인의 실존을 강조하기 위해 설파한 게(偈)이다. 남에게 억지로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습(眞我)을 살아가길 권고하는 가름침다.
여기서 구체화된 실천어가 요즘 자주 회자되는 자존감이다. 자기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세워지면 남의 멸시, 홀대, 능욕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열등감은 자신을 배척, 멸시, 증오하면서 남더러 자기를 사랑해달라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화병은 미움에서 시작된다. 미움은 사랑을 갈구하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억지 사랑과 인정욕구를 갈구하지 않으면 마음이 아플 일도 없다. 결국 사랑과 대우를 받지 못해도 미운 감정이 일지 않게 도를 닦아야 한다.
노자(老子)는 인위(人爲)를 반대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나 효자(孝慈)와 충신(忠臣)이 필요 없다고 봤다. 대도(大道) 상덕(上德)을 추구하면 이런 게 저절로 이뤄진다고 했다. 하지만 공자(孔子)는 이런 것을 세세히 규범화해 지키도록 했으니 누구의 수준이 높은 것인가. 절대권력은 당연히 국가운영에 편한 공자의 가르침을 선호했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성경 말씀이 있다. 남에게 대접받기보다는 먼저 대접하라고 예수가 가르쳤다. 또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하라는 함의이니 결코 불교의 실존과 예수의 사랑이 다른 게 아닌 듯하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어린시절 마음의 상처가 성인이 된 후 인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한다. 프로이트는 ‘만 두 살까지 어머니의 건전한 사람을 받은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현대 정신의학과 심리상담학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현대인의 노이로제 등 정신과적 문제를 양산하는 기본 줄기로 간주한다.
어린시절 상처와 인정욕구의 희석과 정화는 결국 정신심리 상담, 취미생활, 열애, 자원봉사, 심신수도(신앙생활), 휴식 등을 통해 이뤄진다. 이로써 미움, 후회, 원망, 질투를 씻어내려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타인에게 투사(投射)해 자기의 고통과 부담을 벗어버리려 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된다. 이게 자기객관화이고 해탈이다.
뭘 이루려면 역설적으로 노자의 무위(無爲)를 알아야 한다.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가고자 하는 길이라면 소리없이 묵묵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사업이면 사업, 승진이면 승진, 공부면 공부에 전념하다보면 어느 새 목표에 도달해 있을 수 있다. 애응지물(碍膺之物, 과거에 대한 관념이나 집착)을 벗어나야 한다.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물의 흐름처럼 순리대로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 다만 힘만 빠지는 노력, 애당초 헛된 노력이란 늪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이다. 결국 무위란 헛되이 놂이 아니라 가장 열심히 사는 게 된다.
중년을 위한 치유의 교훈 10가지를 정리해본다.
1. 사기·배신당하지 말라 : 남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사기나 배신을 부른다. 남에게 의존하기 시작하면 망상에 사로잡히고 인생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2. 움켜 쥐고 있지 말라 : 인색한 중년은 외로울 뿐이다. 주머니를 열어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하자.
3. 자존감을 지녀라 :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밝다. 중년기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건강을 위협한다.
4. 언행일치하고 겸손하라 : 진정한 인정받음을 이끌어내는 첩경이다.
5. 취미생활이나 신앙을 가져라 : 중년의 칙칙함을 화사하게 해주는 슬기로운 수단이다.
6. 참견하지 말라 : 간섭하기보다는 후원과 격려에 치중하라. 과도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말라.
7.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벗어나라 : ‘나만큼 (고생한, 외로운, 노력한 …) 사람’ 등의 표현을 삼가라. 자신의 나약한 마음만 강화될 뿐이다.
8. 관조하고 체념하라: 관조하고 체념할 것은 빨리 체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9.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감정에 솔직하라 : 잠재된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고, 인생을 즐길 줄 알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라.
10. 건강을 중시하라 :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필수 건강검진은 챙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