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온다'는 뜻의 단어로는 둘이 있습니다. 왕래와 거래가 그것입니다. 왕래가 사람을 주체로 삼았다는 점에서 인적 개념임에 비해, 거래는 물건을 주체로 한다는 점에서 물적 개념입니다. 그래서 왕래보다는 거래가 더 차갑게 느껴집니다.
사전은 거래를 상인과 상인, 상인과 고객 사이에 돈을 빌려주거나 물품을 사고파는 행위로 풀이합니다. 조간신문을 보거나 아침뉴스를 보려고 TV를 켜는 것으로 시작하여 동료와의 막걸리 한잔으로 끝나는 우리의 하루도 거래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전세계에서의 일일 거래 건수는 그야말로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흔히 부가가치세를 거래세라고 합니다. 강학상으로도 그렇게 분류되지만 부가가치세법이 부가가치세는 '거래'에 대하여 부과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법은 거래의 하나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 후 '재화의 공급'은 계약상 원인에 의한 재화의 인도 또는 양도로 '용역의 공급'은 계약상 원인에 의한 역무의 제공 또는 재화·시설물·권리의 사용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계약상 원인에 의하여'라 하니까 거창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계약을 원인으로 하여'라는, 더 쉽게는 '계약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려면 거래가 있어야 하고, 거래가 있으려면 계약이 선행돼야 합니다. 계약은 원인이고 거래는 결과라는 것이지요.
거래는 사인들이 행합니다. 정부가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지만 그 경우에는 정부도 사인입니다. 그런 만큼, 거래의 원인이 된 '계약'은 사인들의 의사표시 합치로 성립된 법률행위로서의 민법상 약정, 바로 그것입니다. 부가가치세법이 '계약'을 민법에서 빌려왔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민법의 계약원리인 사적 자치 원칙도 부가가치세법에 같이 딸려왔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재화·용역 공급이라는 거래가 사인들이 사적 자치로 체결한 계약에 따라 재화를 인도·양도하는 것과 역무를 제공하거나 재화·시설물·권리를 사용케 하는 것으로 정리된 것입니다.
문제는 부가가치세법 모든 조항에서 재화·용역의 공급이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마당에서도 이 법은 재화·용역의 공급을 정의하면서 '사인들이 사적 자치로 체결한 계약에 따라'라는 말을 꾸역꾸역 쓰고 있습니다. 부가가치세 과세관계 결정에 있어서도 사적 자치의 원칙을 기조적 원칙으로 수용하겠다는 요량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실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재화·용역의 공급시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은 공급가액입니다. '공급가액'은 곧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가액'이지요. 여기에도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란 말은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부가가치세가 부과될 과세표준은 사인들이 사적 자치로 체결한 계약에 따라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고 수수하기로 한 대가와 일치돼야 합니다. 부가가치세의 핵심 중 핵심인 과세표준도 사인들이 사적 자치에 따라 체결한 계약에 따라 결정되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습니다. 부당하게 낮은 대가를 받고 특수관계자에게 재화·용역을 공급한 경우 그 시가를 과세표준으로 보도록 한 부당행위부인조항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조항조차도 실제 대가와 시가의 차액을 과세표준에 추가 산입하여 과세하라는 것일 뿐, 당사자가 사적 자치에 따라 행한 거래를 재구성하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특수관계자간 거래일 때도 사인들이 사적 자치로 행한 거래의 모습은 그대로 놔두고 과세표준만 증액하라는 것입니다. 특수관계자간 거래도 그러니, 하물며 비(非)특수관계자간 거래를 재구성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거래는 삼척동자도 알 정도로 쉬운 일상용어입니다. 그러나 부가가치세법이 '거래'를 법률용어로 등장시킨 후 그것의 하나인 재화·용역의 공급을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정의한 순간 '거래'는 마법이 되었습니다. 부가가치세 과세관계가 이 용어에서 시작하여 이 용어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세법에 적힌 용어 하나 하나에 천착해야 할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