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글은 나라 경영의 큰 기틀이다(蓋文章經國之大業)” 조조의 아들이자 위나라 황제였던 대문장가 조비의 말이다.
글월 '문(文)'은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상형문자다. 그 연원인 은나라 갑골문자 '文'자의 가슴부분에는 알파벳 V나 X 비슷한 것이 그려져 있다. 사람 가슴에 문신을 새긴 형상이다. 그 당시에는 하늘과 통할 수 있는 권능이 있는 사람만이 문신을 새길 수 있었다. 제사장이 바로 그다. 글을 인간이 제사장을 통해 하늘과 교감하는 수단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러니 글의 중요함을 강조한 조비의 말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문(文)에는 무늬라는 뜻도 있다. 문양(文樣)의 '문'이 그것이다.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려면 씨줄과 날줄을 제대로 엮어야 한다. 글이 글답기 위하여는 종(縱)과 횡(橫)이 조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직물을 의미하는 영어의 texture가 글을 뜻하는 text에서 파생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글은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전하는 수단이다. 그런 만큼 글은 정확(correct), 간결(concise), 명확(clean)해야 한다. 보도기사의 3C원칙이다. 정확성이 글의 내용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간결성과 명확성은 문장의 장단과 문법적 정합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이 간결하고 명확하기 위하여는 문장이 짧아야 함은 물론이다.
어떤 기자한테 들은 얘기다. 기자 초년병 시절 한 문장이 세 줄을 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세 줄 넘으면 독자들이 글을 읽다가 “이 문장 주어가 뭐였지”하며 문두로 되돌아가면서 짜증을 낸다는 것. 쓰는 기자도 세 줄이 넘어가면서 주어를 잊어버린 나머지 주어와 맞지 않는 술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읽는 이나 쓰는 이 모두 기억력의 한계가 세 줄이라는 것이다.
한 문장이 세 줄을 넘으면 일단 수식어와 접속사부터 지워나간다. 그것도 안 되면 한 자라도 줄이려고 긴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압축적 단어를 찾으려고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신문기사와 사설에 세 줄 넘는 문장이 없고, 거기에서 꼭 필요한 것 외의 수식어나 접속사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간결성과 명확성을 치열하게 추구한 것의 결과다.
한 때 정부문서철 표지에는 예외 없이 'XXX 관련철'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XXX'라고만 해도 그 안의 문서들이 'XXX'에 관한 내용의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음에도 쓸데없이 '관련'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지금도 다를 바 없다. '내부순환도로 통행재개 관련 안내문' 최근 서울시가 시내버스에 붙인 공고문 제목이다. 제목은 문서의 내용을 나타내기 위해 붙인 이름이므로 거기에는 이미 '관련'이 함축돼 있다. '내부순환도로 통행재개 안내문'으로 충분한데도 굳이 '관련'을 붙인 것이다. 그래야만 근사해진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르나 간결성은 아예 안중에 없다.
간결성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예. “법인세법 제1조에서는 ∼규정하고 있다”는 식의 글이다. '에서'는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격조사이다. 거기에다 엉뚱하게 주격조사 '는'을 붙여놓은 꼴이다. 비문(非文)의 대표적 예이면서 독자의 눈을 피곤하게 한다. “법인세법 제1조는∼ 규정하고 있다”가 간결하고 문법에 맞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새로 쓰는 민사판결서'를 발간했다. “∼하는 점”으로 끝나는 구절들이 켜켜이 쌓인 시루떡문장과 “∼ 하며” “∼ 하고”로 하염없이 이어지는 “고며고며” 타령 문장은 잡초 뽑듯이 없애라고 권고한다. “이 사건”, “위”, “해당” 등 한정이나 특정을 위한 수식어는 물론 “그리고” 따위의 접속사도 과감히 줄이라고 권한다.
세 줄에 90자를 넘는 문장은 소송당사자를 괴롭히니, 어떡하든 문장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몇 장이 넘어가야만 첫 마침표를 찾아볼 수 있었던 아주 옛 판결문 관행에 비춰보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법부의 재판권도 국민의 위임을 받아 생긴 권능이니 위임자인 국민이 판결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 명확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조치가 필자로 하여금 '文'자에서 두 팔을 벌리고 '국민'을 우러러보는 사법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면, 지나친 수사(修辭)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