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간접투자 시장의 활성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간접투자 상품에 대한 비과세혜택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시점이 애매모호해 간접투자 상품 투자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혜택을 누리기 위한 조건으로 5년이상 유지의무를 부여하거나 해외펀드 매매·평가차익에 대한 과세시기와 관련한 명백한 규정을 두지않고 결정권을 운용사에 떠넘기는 식의 정책이 장기투자와 고액투자를 꺼리게 만들고 있다. 변액보험 운용수익에 대한 과세가 운용사에 이뤄져야 할지 보험사에 이뤄져야 할지 경계가 모호한 것도 간접투자를 활성화시키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금융산업의 건전한 육성은 물론 금융소비자들의 자산형성을 돕기위해 불합리한 세제에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5년 유지의무에 빛바랜 ISA… 단기 투자상품으로 '불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장기 금융상품의 대명사로 불린다. 하지만 정부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이 상품은 투자자들이 장기 유지의무에 부담을 느껴 가입을 꺼리자 일부 은행에서 편법적으로 ISA를 단기 투자상품으로 변신시키자 판매고가 급증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ISA는 5년 안에 중도 해지하면 비과세 혜택 및 이자 소득을 포기해야 하고 예금계좌 수수료(0.1%)도 내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가 장기보유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언제나 구멍은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비과세혜택보다는 5년간 돈이 묶이는 것이 더 큰 불이익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정부가 제공한 비과세혜택 대신 은행이 제공하는 일반예금보다 조금 높은 금리를 선택하고야 말았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이같은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ISA 예금금리와 일반 예금금리의 차이'를 이용해 장기 상품인 ISA를 단기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ISA용 단기 예금을 가입한 뒤 기간이 만료되면 다음날 재예치 하고 나서 계좌를 중도해지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예를들어 3개월 만기 연 1.45% ISA 정기예금에 가입한 뒤 만기 다음날 재예치를 하고 계좌를 중도에 해지하는 것.
3개월 하루가 지나면 3개월 간의 원금과 이자는 그대로 받을 수 있다. 하루분의 이자, 5년간 유지해야 받을 수 있는 비과세혜택을 포기하고, 0.1%가량의 계좌 수수료를 내더라도 같은 기간 동안 일반 정기예금에 가입한 것보다 유리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금리를 받는다.
6개월, 1년짜리 만기 상품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는 일부 은행에서 ISA용 정기예금 금리를 일반 정기예금보다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은행들이 ISA 판매용으로 출시한 3~6개월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최대 연1.45%로 일반 정기예금 금리 연 1.2~1.3%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ISA에 담을 수 있는 정기예금은 반드시 다른 은행 상품이어야 하는데 향후 연 2%대 저축은행 정기예금을 ISA 상품으로 본격 판매할 경우 ISA는 단기투자처로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세법의 비과세혜택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장기투자가에게 벌칙이 부여되어 버린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ISA의 5년 유지 의무가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은행 직원은 "비과세 혜택을 누리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고객들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장기간 목돈이 묶이는 것을 꺼려한다"며 "5년간 유지해야만 비과세, 이자 소득을 받을 수 있다는 금융정책이 투자 현실과 괴리돼 있다"고 말했다.
□ 애매한 해외펀드 매매·평가차익 과세시기…고액투자자 환매 부추겨
금융당국이 해외펀드 매매·평가차익 과세시기 결정을 자산운용사에 미뤄 투자자와 운용사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때문에 관련 법과 시행령을 명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월 개정된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들은 개별 펀드마다 결산일에 맞춰 매매 및 평가차익 과세 유보 여부를 공시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과세시점 결정을 운용사에 유보한 셈이다.
해외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이미 결산일이 도래한 펀드뿐 아니라 결산일이 도래하지 않은 펀드까지 매매 및 평가차익을 유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운용규모가 6000억원에 달하는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플러스증권자투자신탁1(채권)'은 매매·평가차익 과세를 유보하기로 했다.
삼성자산운용은 대표 해외펀드인 '삼성차이나증권자투자신탁', '중국본토중소형포커스증권자투자신탁', '삼성차이나2.0본토30증권자투자신탁' 등의 매매·평가차익에 일괄 과세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해외펀드가 주력 투자처인 외국계 자산운용사들도 대부분 과세를 유보하기로 했다. 해외운용사인 이스트스프링스자산운용과 도이치자산운용은 각각 '이스트스프링글로벌리더스증권자투자신탁(주식)', '도이치브릭스플러스증권투자신탁1(주식-재간접형)'의 과세를 유보하기로 했다고 지난 6일 공시했다.
이에 따라 이들 해외펀드는 편입된 주식, 채권, 파생상품, 실물자산 등의 매매·평가차익을 년 단위로 과세하지 않고, 환매 시 보유기간 동안의 손익을 합산해 일괄 과세하게 된다. 운용사들이 과세 유보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해외펀드의 경우 성과 변동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8일 기준 미래에셋인덱스로브라질증권자투자신탁(주식)종류C-e는 3개월 수익률이 46.39%에 달하지만, 1년 수익률은 -10.05%이고, 신한BNPP봉쥬르브라질증권자투자신탁(H)[주식](C-W)은 3개월 수익률이 44.41%, 1년 수익률이 -16.78%로 수익률 격차가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펀드의 경우 한 해에 20%의 수익률이 났다가 그 다음 해에 마이너스 3배까지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변동성이 높다"면서 "환매 시 전체 투자금액으로 보면 마이너스인데, 수익이 난 해에 과세된 세금이 환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과세가 유보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소득세법 시행령이 과세시기 결정권을 개별 운용사에게 떠넘겨 운용사 및 고액 투자자들은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자산운용사들이 일률적으로 과세를 유보할 경우 고액투자가들에게는 불리해 중도에 환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액자산가의 경우 환매 시 일괄 과세하게 되면 금융소득이 비과세 한도인 2000만원을 넘어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로 고액의 세금을 물 수 있다.
해외주식형이나 채권형펀드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투자했을 경우 2년 이상 두 자릿 수 수익률을 달성하면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할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해외펀드에 투자 비중이 높은 자산가라면 펀드 수익률을 따져서 사전에 환매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알리안츠운용 관계자는 "펀드에 고액을 투자한 사람은 수익률을 따져서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기 전에 환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일괄 과세하는 해외펀드를 환매하고 매년 과세하는 펀드에만 리치들이 몰릴 수 있다며 투자자 이탈을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운용사들에게 해외펀드 과세시기를 개별적으로 결정하게 한 것이 부담스럽다"며 "운용사들이 과세시기를 결정한 뒤 투자 손실이 생기거나 일괄 과세로 과세 규모가 커지게 되며 고액 투자자들이 이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법이나 금융투자협회에서 방침을 명확히 정해줘야 투자자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변액보험 수익 과세대상 운용사냐 보험사냐 '알쏭달쏭'
변액보험 수익에 대한 과세가 보험사에 이뤄져야 할 것인지 운용사에 할 것인지도 풀어야할 과제이다.
이같은 혼란은 자본시장법과 세법상 차이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은 변액보험 특별계정도 투자신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세법에는 변액보험과 펀드를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연호 법무법인 광장 회계사는 "변액보험 특별계정은 보험사의 재산으로 봐 보험사에 과세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장 회계사는 장기 변액보험은 납입과 동시에 세액공제 대상이 되므로 보험금을 수령하는 경우 발생하는 차익은 이자소득으로 구분되는 등 보험상품 과세체계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산 소유권도 보험 가입자가 아닌 보험회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반면 펀드는 소득공제나 세액공제가 없고 투자이익도 배당소득으로 과세된다.
장 회계사는 "보험상품 과세제도는 사회보장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며 "같은 맥락에서 자본시장법이 변액보험 특별계정을 투자신탁으로 보는 이유도 계약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펀드는 투자자의 자산으로 보고 변액보험은 보험사의 자산으로 본다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안경봉 국민대학교 교수는 "변액보험은 타이틀은 보험이지만 실제 자산 운용구조는 신탁"이라며 "필요에 따라 어떤 때는 보험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투자신탁이 될 수 있는 등 그 기준이 불분명해 분쟁 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판결도 엇갈리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변액보험 특별계정은 투자신탁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험회사에 귀속되는 수익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보험지급 사유가 현실적으로 발생해야만 지급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수익금은 보험회사에 귀속한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대법원도 고등법원의 손을 들어줬다.
이같은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입법차원의 규정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이 금융계의 바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