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권한'은 국세청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대부분의 세금이 '부과징수'가 아닌 '자진신고납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세청이 세금징수권한을 제대로 발휘하게끔 만들어주는 발판이 세무조사권한이다.
국세청을 '권력기관'으로 분류되게끔 만드는 것 또한 세무조사권한이다. 실제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 한 장 없이도 국세청은 자체적으로 탈세가 의심된다는 명분으로 특정 기업을 세무조사할 수 있다.
세무조사는 납세자가 세법에서 정한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절차라고는 하지만, 납세자 입장에서는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기업 활동의 위축을 초래하는 '미운오리'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세청의 숙명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이 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국민신뢰가 전제된 상황에서의 세무조사권한 행사는 밉지만(?) 최대한 허용이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 한 건의 작은 세무조사라도 '의심'을 받게 된다. 실제로 국세청이 세무조사권한을 엉뚱하게 휘둘렀다가 큰 망신을 당한 사례는 국세청 50년 역사 이곳 저곳에 적혀 있다.
2016년 5월 현재, 국세청의 세무조사 시스템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경제·사회적 여건과 납세의식 변화 등을 반영한 결과에 따라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고 있어서다. 고의적으로 세무조사권한 이행의 범위와 강도를 가감하는 등 경제활성화를 뒷받침 하는 '정책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1966년 당시 세무조사요원들이 가지고 다니던 가방. 연필 등 각종 필기도구와 당시 '필수품'이었던 주판이 보인다. '황금 보기를 돌과 같이 하라'는 의미의 見金如石 문구는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작성한 것을 복사해 부착한 것으로 세무조사요원들이 청렴한 자세로 업무를 수행하라는 의미였다. 세무조사요원들은 심지어 이 문구가 적힌 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녔다.
과거만 해도 탈세조사는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행해졌으나, 국세청이 개청(1966년)하면서 세무조사 기능은 국세청의 권한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세무사찰'로 불렸는데, 국민들에게 위압감을 준다는 악평 속에서도 군사정권 시절을 잘 버텨냈지만(?) 1989년 '조세범칙조사'로 바뀌었다.
국세청은 1966년 7월 전국 세무서에 조사과를 만들고 과세자료 수집을 전담하도록 했다.
세무사찰요원들은 '견금여석'(見金如石: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은 넥타이를 항상 착용하고 다녔는데 부정의 유혹에 말려들지 말라는, 정신무장의 차원에서였다.
세무사찰 현장에서 기업체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납세고지서 양식, 주판, 필기구, 잣대 등 50여 종의 비품 일체를 넣은 사찰요원 가방이 지급됐으며, 007영화에서 첩보원이 들고 다니던 가방과 비슷해 '007가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초창기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각 세목을 담당하는 과에서 개별 납세자를 상대로 신고, 환급, 징수, 조사 등 모든 업무를 전담함에 따라 세무조사 업무의 체계화가 불가능했다. 특히 인력문제가 심각했다. 여기에 탈세수법도 점차 지능화되면서 대응책이 절실해졌다.
이에 '전문인력 양성'이 시작되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세무조사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기본틀은 변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지난해 기준으로 2879명의 조세범조사 전문요원과 344명의 핵심조사 전문가를 양성, 조사행정의 중추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과 더불어 조직체계에도 변화를 가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세무조사 기능을 끌어모아 조사전담 조직을 설치했다. 이것이 국세청 최고의 요직이라고 불리는 (본청)조사국장이 통솔하는 '조사국'이다.
◆…1983년 명성그룹과 관련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세무조사의 이유,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떠나 이 세무조사로 대한민국에 '콘도미니엄' 개념을 처음 도입하면서 레저산업의 기린아로 각광받던 김철호 회장의 명성그룹은 한순간 공중분해됐다.
지난 1995년 중소기업체를 운용하고 있는 김모(당시 41세)로부터 국세청은 당황스러운 요청을 받았다.
김 씨는 "지금까지 10년 넘게 사업하면서 세무조사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며 "우리 회사가 세법대로 제대로 세금을 내고 있는지 점검해달라"고 자청했던 것이다.
당시 법과 규정으로는 김 씨의 요청을 들어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국세청은 "세무조사는 납세자가 받고 싶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국세청이 연간계획을 수립해 실시하는 것"이라며 거절했다.
이는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세무조사는 납세자의 자진신고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간 매출액이 일정금액 이상인 대기업은 4년 혹은 5년 주기로 세무조사를 받고 나머지 기업은 국세청이 자체적인 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신고성실도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 진다.
특히 국세청이 평소 정보수집을 해오다 확실한 물증(탈세혐의)을 잡았을 경우에는 불시에, 세무조사를 할 수도 있다(비정기세무조사).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낙후되어 있던 국민들의 납세의식을 제고하는 데 음으로 양으로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세무조사권한을 남용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케이스가 많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1983년 명성그룹 세무조사가 대표적이다.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을 보호하기 위해 유망했던 기업을 공중분해시킨 이 세무조사는 국세청이 정치와 깊은 연결고리를 형성했을 때 불거질 수 있는 폐단이 어떤 것인 지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였다.
명성그룹 세무조사 이외에도 유사한 눈총을 받았던 세무조사들이 많았다. 이 때문인지 지금 현재도 국세청이 특정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케이스들이 많다.
◆…이제는 시민의 눈이 '탈세'를 모른척, 넘어가지 않는 시대가 됐다. 성숙된 시민의식을 활용하기 위한 행정시스템 및 제도가 도입되고 시대상황에 맞게 발전하고 있다. 사진은 국세청이 지난해 구축한 '스마트폰 탈세제보 시스템' 화면.
세무조사의 진일보는 계속된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세청 세무조사 행정은 진일보를 거듭해 오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발전의 속도 더 빨라지고 있는 양상이다. 국세청이 확보한 신고내용 또는 정보수집에 한정되어 있던 세무조사 인프라가 점차 확대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FIU(금융정보분석원)가 확보하고 있는 정보가 세무조사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탈세제보'라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세무조사 행정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2013년부터 국세청의 FIU정보 활용범위가 '조세탈루혐의 확인을 위한 조사업무'로 확대되는 한편 종전까지 국세청에서 제공되지 않았던 고액현금거래(CTR) 정보가 제공되고 1000만원이었던 의심거래보고(STR) 기준금액이 폐지됐다.
이에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FIU정보를 활용한 건수는 2014년 2만2259건으로 전년대비 4배 이상 늘었다. 일각에서는 '정보남용'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전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가 대세로 자리잡은 현 상황만 놓고 볼 때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평가가 더 높다.
탈세제보 또한 수 년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해 오면서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는 '탈세정보'를 국세청에 제공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물론 '꽝'도 많지만). 지난 2014년 기준 탈세제보 신고건수는 2만건에 육박했고, 탈세제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세무조사를 통해 추징된 세액은 1조5000억원을 훌쩍 넘었다.
이와 함께 최근 수 년전부터 '역외탈세 차단'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와 연관된 제도적 인프라(해외금융계좌 신고제 등) 및 국세청의 세무조사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