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중 한 장면. 6차북벌시 제갈공명의 맞상대였던 위나라 대도독 사마의(중달)는 호로곡전투에서 공명의 전술에 휘말려 죽다가 살아났다. 그런 후 중달은 오장원에서 백일을 농성하면서 싸움을 피했다. 심지어 공명이 아녀자용 두건과 옷을 보내면서 조롱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공명은 과로로 병을 얻어 54세를 끝으로 숨을 거둔다.
숨을 거두기 전 공명은 심복 강유에게 자신만의 전략 도서와 무기설계도를 물려주고, 자신의 사후 안전하게 퇴각하는 방도도 일러준다. 공명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 중달은 이 또한 기만술로 생각했다. 성문을 활짝 열고 성루 위에서 혼자 거문고를 타는 공명의 뒤에 수만의 복병이 숨어있는 것처럼 꾸민 공성계(空城計)에 이미 속아봤기 때문. 며칠을 머뭇거리다 촉군이 세운 영체가 빈 것을 보고서야 촉군을 추격한다.
위군이 오장원을 지나 어느 산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 매복하고 있던 촉군 대장 강유가 기습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공명이 깃털부채를 든 채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전투를 지휘하고 있지 않는가. 혼비백산하여 40리를 도망친 후에야 정신을 수습한 중달이 수하 장수에게 묻는다. “내 머리가 아직 목에 붙어 있는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야 그 공명이 목각인형이었음을 알고서는 그는 “왜 공명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게 했느냐”며 하늘을 원망한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死孔明走生仲達)”는 그렇게 해서 나온 고사다.
상속세법은 죽은 자가 남긴 재산에 부과되는 상속세를, 소득세법은 산 자가 번 소득에 부과되는 소득세를 규율한다. 그러니 상속세법은 산 자의 소득과는 별 연관이 없을 것 같다. 그렇지는 않다. 상속재산 평가조항이 소득세법상 특수관계자간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잣대가 되는 시가 산정에 준용되는 까닭이다.
부동산 등 대부분 재산의 경우에는 상속세법의 재산평가방식을 소득세법상 시가 산정에 준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죽은 사람이 남긴 땅 값이나 산 사람이 같은 지역 내에 가진 땅 값이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장주식이다.
상속세법은 상속된 상장주식의 가액을 상속개시일(사망일) 전후 2개월 간 한국거래소의 최종시세가격(종가)을 평균하여 산정토록 한다. 예컨대 재벌 오너가 사망하면 그 사실 자체가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일시적·비정상적 주가변동요인을 평균개념을 통해 제거하자는 것이니 나름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주식평가방법을 산 사람이 보유한 상장주식의 시가 산정에 끌어 붙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상장주식을 시간외 장외매매를 통해 팔기로 하면서 계약체결일로부터 15일이 되는 날(D+15)의 종가에 따라 1주당가격을 책정하고 그 날 대금을 청산하기로 했다고 하자. 거래소 종가는 그 자체로 시가일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D+15일 현재 거래상황에 따라 가격을 정했으니 객관적이다. 그런 만큼 이 계약을 부당한 것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게 아니다. 산 이가 보유한 상장주식의 시가를 죽은 이에 대한 평가방법에 따라 산정했으니 그 시가는 양도일 전후 2개월간 종가를 평균하여 산정될 수 밖에 없다. 양도일 전 2개월간 종가는 기록이 있으니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양도일 후 2개월간 종가는 양도 시점에서는, 신(神)이 아닌 이상, 알 길이 없다. 애당초부터 특수관계자들이 시가로 상장주식을 사고 팔 재간이 없다는 것. 불능의 규정이다.
아무리 특수관계자간 거래라 하더라도 거래의 안정성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이 소득세법 조항은 과세당국으로 하여금 거래 후의 가격정보를 거래 당시로 끌고 올라가 거래의 당·부당을 따지도록 강제함으로써 거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죽은 자에 대한 세법을 산 자에게 적용한 것의 결과다. 언제까지 납세자들을 죽은 공명에게 쭟기는 산 중달의 꼴로 만들어 놓을 셈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