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잘 해봅시다" = 지난 수십 동안 세무사 업계를 괴롭혀 온 명의대여. 명의대여는 사무장들의 기장료 덤핑 영업 및 세무대리 품질 악화 등 시장의 '물'을 흐리는 주범으로 지목되곤 한다. 명의대여 사무장들은 주로 고령, 세무공무원 출신, 신규 세무사들에게 주로 접근해 월 소정의 금액을 주고 명의를 빌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무대리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낮은 가격으로 수임료 덤핑을 해 세무사 업계를 망치는 주범으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명의대여' 입니다.
명의대여는 세무사 자격이 없는 사무장 등이 세무사에게 일정 대가를 주고 세무사 명의를 대여해 세무사무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무사법과 한국세무사회칙에 따르면 세무사가 명의대여를 할 경우 등록이 취소되거나 2년 이내의 직무정지를 당하는 등 중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조세포탈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며, 명의대여한 사실이 국세청 전산망에 기록되어 관리대상자가 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명의를 빌려간 사람이 체납한 세금을 대신 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로 인해 본인 재산이 압류되고 공매처분까지 당하는 등 경제활동에 큰 제약이 가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명의대여를 하는게 적발되면 무서운 처벌과 불이익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세무사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명의대여를 하는 세무사무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명의대여라는 독버섯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대체 무엇일까요?
명의대여 처벌 가능성은 '0'…"세무사회는 '의지'가 없다?"
강한 처벌이 내려짐에도 불구하고 명의대여 세무사무소가 여전히 횡행하는 이유는 적발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한 세무사는 "수수료 입금계좌 명의가 세무사 명의와 다른 세무회계 업체들의 광고들이 수두룩하게 보이는데 정작 적발된 건수는 지난 2011년 1건, 2012년 3건, 2014년 6건 등 굉장히 미미한 숫자"라며 "사실상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명의대여가 더욱 판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세무사들은 명의대여 적발건수가 이처럼 작은 이유가 말만 어쩌고 저쩌고 할 뿐 '단속 의지'가 부족한 것 때문이 아니겠냐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고령의 세무사들이나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들 중 상당수가 명의대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협회(세무사회) 차원에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세무사회.
모 세무사는 "고령의 세무사들치고 명의대여를 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나와보라"며 "전산기장조차 할 줄 모르는 고령의 세무사,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가 부지기수인데 어떻게 시장이 정화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세무사는 "명의대여를 본격적으로 적발하게 되면 자신들의 선후배, 동료들까지 다치게 되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라며 "세무사회에 명의대여를 제보하면 증거까지 찾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럴거면 세무사회가 왜 있나. 회에서 명의대여 사무소에 잠입을 하던지 상담받는 척을 하던지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모 세무공무원은 "이전에 근무했던 세무서에 있을 당시 세무사 등록 현황을 보면 1920년대에 태어난 세무사도 등록되어 있는 것을 봤다"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이 직접 사무실을 운영하고 영업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자격자인 사무장들이 세무서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세무대리 행위를 하는 것도 몇 번 목격했다"며 "명의대여는 세무대리업계에 가장 큰 손해겠지만 제대로 된 납세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납세자들에게도 큰 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근무했던 세무서 관할에서만 5명 중 1명은 명의대여인 것으로 보였다"며 "세무사회가 명의대여 행위자 3명을 적발했다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많다고 자랑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수 십년간의 고질적인 문제 '명의대여'…해결책은?
세무사들은 세무사 명의대여가 이미 수 십년은 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무사 시장의 경기가 한참 좋을 시절 세무사들이 매출의 확대를 위해 다수의 영업직원들을 고용했고, 이들이 거래처 확보에 능한 사무장으로 성장하면서 명의대여를 주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세금신고를 통해 기장업무를 습득하고, 상담까지 가능하게 된 사무장들 중 세무사보다 높은 전문지식을 가진 이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없는 것이라면 세무사 자격 뿐이라는 것입니다.
◆…서울 시내 세무사무소들이 밀집해있는 한 빌딩의 간판.
거래처를 확보한 영업직원들은 '건수 사무장' '보따리 사무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세무사 영업을 하기 힘든 고령의 세무사나 막 국세청에서 퇴임한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 또는 이제 막 세무사 자격을 딴 이들에게 월 100~200만원의 대가를 제시하며 '같이 해보자'고 접근한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세무사무소에 근무하는 근무세무사를 세무사회에 등록시켜 운영하는 사무장도 있는 등 그 행태는 다양하다고 합니다.
모 세무사무소에 근무하는 한 근무세무사는 "사무소 대표가 세무사회에 세무사 등록을 하라며 비용도 자신이 다 내주겠다고 한다"며 "아마도 명의대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만두는게 좋을지 고민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명의대여 세무사무소의 운영행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해이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한 세무사는 "전직 세무서장 출신의 명의로 운영되는 어떤 사무소에서는 여직원이 신고대리 수수료만 한해 2400만원을 가져갔다고 한다"며 "전산세무회계 프로그램에 자신의 거래처를 2~30개 넣어서 기장료를 자신의 통장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장부를 들고 온 남자 실장은 재산세 신고도 하고 건설업 진단까지 한다. 물론 수수료는 자기 통장으로 챙긴다"며 "대표세무사는 알아도 모르는 척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직원들은 '안하면 바보인가'라는 생각에 고민한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세무사들은 명의대여가 궁지에 몰린 세무사의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세무사로 승부를 볼 생각이라면 치열하게 부딪히는게 장기적으로 좋다고 충고합니다.
한 세무사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적자에 내몰렸거나, 시장에서 어떻게 자리잡아야 할지 모르는 신규 세무사들에게는 명의대여를 하는게 당장의 탈출구로서 기능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평생 세무사로서 살아갈 생각이라면 처음에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노력하면 나중에는 사무장보다 나은 영업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세무사는 "명의대여는 세무사 업계가 수십년간 가지고 온 고질적인 문제"라며 "변호사, 법무사, 회계사 등 다른 자격사들도 사무장들과의 관계를 끊기는 어려워보인다. 해결방안이 무엇일지 전문자격사 시장 전체를 놓고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