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감사인 독립성없어 불신과 분식회계 판쳐
20년전의 대우그룹 20조 분식회계부터 작금의 대우조선해양 5조 분식회계 사이에도 저축은행, 동양그룹, STX, 성동조선 등의 조선·해양산업, 대우건설, 포휴먼, 모뉴엘 등 수많은 공개기업이 분식회계문제로 막대한 공익피해를 일으켰다.
백화점붕괴와 성수대교 무너짐 등의 사고공화국 오명에 이어, 신뢰붕괴로 인해 한국의 회계투명성은 어떤 국제기구의 발표에서도 61국 중 60번째 수준으로 만년꼴찌이다. 모두가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특히 금융당국과 대기업집단 및 회계법인간 삼각구도의 무사안일과 네탓이오가 원인이다.
재벌그룹과 대기업오너의 재무제표일수록 불신받고, 대형회계법인의 외부감사보고서를 더 못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한진 등 해운산업과 대우·현대·삼성 등 조선해양산업의 구조조정실사과정에서 일부 기업의 미공개정보가 유출되어 한진해운 최은영 회장이 보유주식을 대량처분하는 사익추구행위가 발생되었다. 주식 취득 후 휴지조각된 소액투자자로부터의 도둑질이다.
여기에 국내 최대 회계법인의 회장까지 연루되기에 이르렀다. 믿을 만한 공식재무정보이면 실무자가 주연이겠지만, 사적비밀정보거래이므로 재벌기업 오너회장과 대형회계법인 회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공식재무제표와 공시된 외부감사보고서가 불신받으면서, 서로간의 사적정보제공으로 경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재무제표가 되려면 기업이 제대로 작성하고, 독립된 회계법인이 적법하게 외부감사하는 전과정이 일사불란해야 가능하다. 기업거래의 재무제표작성과 외부감사보고서는 서로 떼어놓아서는 안되는 몸통과 얼굴의 관계이다. 얼굴만 보아도 몸의 상태를 대략 알 수 있는데, 외부감사보고서는 몸통인 기업의 얼굴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부와 기업은 얼굴인 외부감사보고서를 없애도 되는 규제와 임의로 주물러도 되는 면죄부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에게 외부감사인을 맘대로 선임하는 권한을 주었고, 감사보수도 최저가 위주로 결정되고 있다. 단순하청납품업자보다 더 불균형의 갑을관계이다. 1년 동안 甲 전임직원의 모든 거래를 일일이 검증확인하는 외감절차에도 불구하고 외부감사보고서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니, 乙은 입증하거나 차별화할 수 없어 甲에게 더욱 종속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갑을관계는 먹이사슬이라는 면에서는, 봉건사회의 주종관계나 일본식 오야붕 꼬붕관계와 유사하다. 노예제도까지는 아닐지라도 노비제도에 버금가는 느낌이다. 기업의 감사인선택, 최저가견적, 감사잔금과 계약금수금, 매년 감사계약의 연장여부 등을 감안하면, 기업은 외부감사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그런데 과연 乙·從者인 외부감사인이 甲·主人인 기업오너를 감시하고, 분식회계라는 사적욕망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까?
외부감사의 감시·조사·파수기능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밝은 빛으로 비추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피감회사보다 낮은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위를 쳐다보는 외부감사인이 어찌 경고하고 감시할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초대형 회계법인 회장이 대기업오너 회장에게 그렇게 살뜰하게 바로 전날 통화했겠는가.
을에게 부실회계감사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원천적으로 부실감사가 없어지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노비의 잘못만 처벌하기보다 노비도 소신있게 말하고 독립성 있게 살아가는 환경이 중요하다. 즉, 노비가 무능하고 어눌하다고 탓하기 앞서 노비제도를 없애고 노비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현행 외감법에서 기업자유선임계약제도와 법정가격 없음으로 인한 최저가제도를 금지하고, 감사공영제와 최소가격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이것이 현행 외부감사제도에서의 노예해방이다. 이렇게 하면 외부감사인은 소신있는 감사의견을 통해 기업부실과 분식회계를 경고하여 공익손실을 줄이고 묻지마투자와 거액대출금의 왜곡배분을 예방할 수 있다.
그래야 은행도 국민도 국가도 점점 커져가는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초대형회계법인 회장이 대기업 젊은 회장에게 미공개정보 유출에 연루되거나 비굴하게 구는 관계를 차단할 수 있다.
외부감사보고서가 기업의 사적이익과 분식회계를 경고하고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거나 들춰냈다면 조단위의 분식회계와 10조원 이상의 국책은행대출도 눈덩이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익도 잘 나고 있어 아무 문제 없다는 거짓 재무제표에 대해 경고하지 못했고, 소신있는 감사의견을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혈세가 허망하게 탕진된 것이다.
현행 외부감사인 선임은 회계법인간의 치열한 영업경쟁에 의존하므로 감사인의 정신적·물질적 독립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어느 업종이나 고객영업담당자는 상대방(주인·고객)에 종속된다. 따라서 영업 잘하는 대형법인이 아무리 많은 인원과 시간을 투입해서 외부감사하여도 독립성이 없다면 믿을만 하지 않다. 차라리 독립성이 있다면 적은 예산과 인원을 투입해도 분식회계를 밝혀낼 수 있고 추정손실을 알려주고 부실을 예방하는 소신있는 감사의견이 나올 수 있다.
차라리 부실기업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았다면 모든 이해관계자가 일일이 조사하거나 의심하여 거래나 투자를 하지 않았을 터이다. 투자자는 분식회계기업 외부감사보고서의 적정의견이라는 가면에 속아 신뢰를 배신당하고 거액을 날리는 격이다.
독립성이 없는 외부감사는 거액을 들인다 하여도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그러나 독립성이 있다면 감사보수가 적더라도 믿을만하다. 외부감사의 독립성은 자유계약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고 공영제배정이나 공기관 강제지정으로만 확보된다. 그래도 안되면 최소한 감사가격만이라도 법제화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