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분식회계와 부실감사 사건만 터지면 회계법인감리·감독강화와 감사인자격박탈, 담당회계사 징계수위높이기, 대표회계사 책임추궁 등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무사안일과 기업주의 도덕적해이와 사익추구 등은 뒤로 숨고, 주로 회계사의 윤리의식 및 양심부재와 품질관리 소홀을 질타한다. 기업윤리와 회계사 양심호소는 성선설에 기반하며, 처벌·징계·감독강화는 성악설에 근거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분식회계를 막지 못하고 있다.
회계투명성을 위한 외부감사관련제도로 금융감독원의 감리제도·전자공시제도·대기업의 감사인 선임 위원회규정, 외부감사인 선임 전자입찰제도, 특수관계인 배척과 감사 및 비감사의 중복수행금지 등 독립성유지제도, 엄격한 회계감사기준, 회계법인내에서의 사전심리제도, 부실감사에 대한 집단소송과 회계법인의 민형사배상제도 등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외부감사에 대한 법률(외감법)은 자산규모 120억원 이상의 2만여개 기업이 자유계약으로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분식회계위험이 높은 1% 내외 일부기업만 외부감사인을 지정받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선진국 수준의 자율관리제도도 많고 감독규제도 촘촘한데 왜 분식회계와 부실감사 및 거액의 공익피해는 더욱 빈발하고 피해규모도 더욱 커지는 것인가? 바로 투명회계 공익보호와 외부감사라는 공공재를 사적자치원칙에 근거한 자유계약과 기업의 탐욕에 내맡겼기 때문이다.
외감법은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임의대로 자유롭게 선임한다라고만 규정하였다. 외부감사가 공익피해를 예방하는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분식회계 본능의 잠재적 가능자인 기업이 선임하고, 감사보수도 기업이 최저가수준으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외부감사인은 감사의견 한 글자도 본대로 못 쓰고 기업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현실이다.
회계법인의 주업무가 회계감사인데 기업이 임의로 회계법인을 결정하는 구조여서 회계감사인은 기업오너의 입맞대로 맞추어주는 보좌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감시견이 아니고 애완견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기업이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보고서를 입맛대로 구매하는 격이다. 이 때문에 회계법인은 독립성을 상실하게 되어 있다. 분식회계 대기업은 적정의견이라는 면죄부를 싸게 구입해서 대량 유포하고 거대한 사익을 취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회계법인의 분식회계견제, 손실인식, 문제점 노출 등의 사전 경고기능은 상실된다.
분식회계라는 도둑이 애초부터 나오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투명회계사회에서 일자리와 소득이 충분하면 도둑질이 감소한다. 그러나 일단 거리로 튀쳐나와 숨은 도둑은 열명의 경찰이 투입되어도 자수·제보하기 전에는 잡기 어렵다.
도둑을 못 잡았다고 경찰과 경비원을 탓하기 앞서 애당초 도둑이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천봉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분식회계는 도둑처럼 자수하지도 않는다. 거액의 공익피해를 일으킨 다음에야, 썰물 때에만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감사인의 독립성이 있고, 감사현장에서 검증한 사실대로 감사보고서를 쓰고 감사의견을 말할 수 있다면, 손실과 회계절벽을 경고하여 공익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현행 외감법의 자유수임제도와 감사보수의 무가격시스템은 외부감사인의 손발을 묶고 눈과 입을 닫게 한다.
현장회계사가 본대로 제대로 말하는 즉시 외부감사인은 생계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정의견이 아니면 당년도 잔금을 받기 어렵고, 다음연도 감사계약은 말도 꺼낼 수 없는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외부감사인은 창·칼·방패 가운데 어느 것도 가진게 없다.
국방이나 납세와 동급의 공익개념인 회계투명성을 애시당초부터 확보하면, 그 많은 규제도 필요없고 사회적 비용도 막을 수 있다. 투명회계와 독립된 외부감사는 분리불가능한 일심동체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누구나 영리활동을 선호하며, 더 큰 이익과 영리를 이루려면 거래와 회계를 투명공개해 다수의 믿음 속에서 더 잘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
분식회계는 당사자 1인만 편하게 해주는 사익인 반면, 투명회계는 모두의 공익이다. 기업의 재무제표 작성과 외부감사는 분리불가능한 한 몸이다. 기업의 거래가 몸통 자체이고, 회계가 혈관이면 외부감사보고서는 얼굴에 해당한다. 즉, 투명회계의 핵심은 얼굴에 해당하는 독립된 외부감사이다.
독립된 외부회계감사의 핵심은 첫째 독립성, 둘째 전체성(1년), 셋째 외부성, 넷째 감시·조사성이다. 이 중에서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현행 외감법은 강제법률임에도 독립성을 주지 못한다.
애초부터 외부감사인에게 독립성을 부여하지 않고서 “회계법인을 못 믿겠다. 회계감사보고서를 불신한다. 부실감사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라고 탓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독립성이 없이 종속된 자는 주인만을 위한 사익적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요. 주먹이 법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종이 주인을 고발하지 않았다고 혼내기에 앞서, 종의 신분으로 전락되지 않는 사회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외부회계감사의 전면지정제인 감사공영제는 외감主從관계를 없애고 모두가 대등한 主人이 되게 하는 제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