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 중 ▲투자 ▲임금 인상 ▲배당 등에 지출하지 않은 자금에 추가로 세금(법인세)을 물리는 '기업소득환류세제'의 정책 목표지점에 큰 변화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제도를 도입해 가동한 결과, 기업소득환류세제 대상 기업들이 가계의 실질적 소득 향상 효과가 있는 직원 임금 인상에는 인색한 반면, 가계자산에 환류 되는 효과가 적은 배당에만 치중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애초의 정책목표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미환류소득 계산시 공제되는 임금 인상과 배당금의 가중치를 차등 적용한다는 방침을 최근 발표한 2016년 세법개정안에 반영했다. 기업들이 추가로 세부담을 하지 않기 위해 동일한 금액이라도 공제 효과가 더 큰 임금 증가에 신경을 쓸 것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유도책'에 기업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한 모습이다.
임금 인상으로 기업소득을 돌리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되려 고용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게 형성되고 있다. 직원들의 임금 인상 기준이 기업의 미래 성장성 등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좁다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외국 자본이 상당부분 투입되어 있는 기업들의 경우 외국 자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배당성향을 낮추고 임금을 올리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이야기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4월 현재 2845개 기업이 기업소득환류세제와 관련한 실적을 신고했다.이 중 1891개 기업은 환류세제 기준을 충족한 반면, 954개 기업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과세 대상으로 분류됐다.
환류세제는 자기자본 5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이 대상이며 투자와 임금 인상, 배당금 등으로 환류 시킨 금액이 당기 소득의 일정액에 미달한 경우 10%의 세율로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투자포함형'을 선택한 870개 기업 중 기준을 충족한 기업은 763개(87.7%)였고, 5개 기업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3억원의 법인세를 추가 납부했다.
나머지 98개 기업은 과세를 유예했다. 이 기업들은 당해연도 미환류 소득 중 다음 사업연도에 투자, 임금 인상, 배당금 등으로 환류할 7000억원을 적립했다.
'투자제외형'을 선택한 기업은 1975개였다.
이 중 기준을 충족한 기업은 1128개였고, 114개 기업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503억원의 '세금철퇴'를 맞았다. 나머지 693개 기업은 차기환류 금액으로 4조1000억원을 적립하면서 과세 유예를 선택했다.
투자포함형과 투자제외형을 합한 실제 과세금액은 506억원이다.
문제는 기업의 이익이 얼만큼 가계소득으로 흘러갔느냐다.
기재부에 따르면 환류금액은 총 139조5000억원이었다.
이 중 투자금액이 100조8000억원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배당은 33조8000억원이었다. 이에 반해 임금 인상분으로 활용된 환류금액은 고작 4조8000억원에 불과했다.
기재부는 "전체적으로 당초 도입 목적대로 대상기업들이 기업소득을 투자, 임금증가, 배당 등으로 환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면서도 "다만 대상기업들의 대다수가 배당 위주의 투자제외형을 선택하고, 임금 증가를 통한 환류가 미진했다"고 진단했다.
배당의 경우 상당부분이 대주주와 해외주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나라 가계자산에 환류 되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장사 총 배당금액이 2014년 15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19조5000억원으로 26.2% 증가했고, 이 중 약 38%에 해당하는 7조4000억원은 외국인 주주에게 돌아갔다.
정부는 임금 인상으로 환류 되는 금액이 적다는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미환류소득을 계산할 때 공제되는 임금 인상의 가중치를 50% 높여 1.5로 조정했으며, 배당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배당의 가중치는 0.8(당초 1)로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임금 늘려라"…기업은 "고용난 악화" 우려
정부가 환류세제 보완책을 내놓음에 따라 기업들이 추가로 세금을 내지 않으려면 배당보다는 금액을 조금만 늘려도 되는 임금이나 투자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계는 이 같은 보완책의 기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번 올린 임금은 삭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들이 늘어나는 인건비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환류세제를 통해 임금 인상을 유도할 경우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신규 고용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한 관계자는 "제도가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당장 임금 인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임금 인상은 기업의 미래 성장성이나 수익성 등을 고려해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지 정부가 제도를 통해 강제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임금을 올릴 경우 늘어나는 부담액 대비 세금 추가납부액이 적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세금을 더 내는 쪽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소속 근로자에 대한 임금 책정은 기업의 몫인데, 정부가 패널티성 제도로 압박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도를 개편한다해도 배당성향을 줄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기업들도 있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외국자본이 많기 때문에 배당성향 자체를 낮추고 자시고 할 수가 없다"라며 "임금 인상으로 유도하려는 환류세제 보완 정책은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효과를 내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환류세제가 시행된 지 1년 만에 제도를 손질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더 약화시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회계팀장은 "1년 간 미환류 소득 유보가 가능해 기업 투자·고용 결과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어렵다"라며 "환류세제 개정으로 기업들의 장기 전략 수립에 장애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