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나폴리, 애월 해안도로의 아름다움은 붉은 노을의 예술작품이다.
등 뒤에 오름이 있고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은 제주를 여러 번 찾아온 여행자에게 낯익은 풍광이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제주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똑 같은 해안 길을 어제 걷고 오늘 다시 걸어도 바다는 매순간 다른 모습이다. 나만 느끼는 감정의 시각은 분명 아닐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모든 거 훌훌 던져버리고 제주도 푸른 바다로 떠나온 사람들에게 목마를 때 마시는 탄산음료보다 더 시원하고 짜릿하게,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달콤한 초콜릿보다 더 진한 노을의 붉은 속삭임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해질녘 애월 해안로를 걸어보자.
◆…가문동 표지판
하귀에서 시작되는 해안로 길은 일주도로를 살짝 벗어나 가문동에서부터 시작된다. 해안길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바로 가문동 포구로 향한다. 조그만 포구가 있는 마을은 여름이면 한치 잡이와 갈치 잡이로 낮보다 밤이 더 밝은 곳이다.
◆…해안가 가까이 있는 가문동 마을
포구는 닻을 내린 배들이 긴 낮잠을 자고 뜨거운 태양 아래 그을린 어부들의 구릿빛 팔은 그물손질에 한낮에도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노을이 바다에 앉을 때 즈음 얼굴에 환한 빛이 난다.
작은 포구에 맞게 선술집 하나가 있을 법한 이곳에 4년 전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음악가와 요리사가 자리를 잡고 카페를 열었다.
포구의 닻을 내린 배들이 노을을 안고 바다로 나가는 모습에 반해서인지 조용한 마을에 작은 포구에 닻을 내린 배들이 아름다워서인지 이 카페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젊은 여행객이거나 외국인이다.
여름밤이면 조용한 마을은 한치 잡이 배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포구로 들어오고 포구 앞 카페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이들을 반긴다.
◆…가문동 포구
배들이 돌아오는 저녁 10시 이후 배에서 살아있는 한치를 바로 사거나 회로 떠서 먹을 수 있다. 속살이 다 보이도록 투명하고 가늘게 썰어 입에 넣으면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행복해지는 한치는 제주도에서 여름에 맛볼 수 있는 별미다.
가문동을 벗어나 다시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초계 미술관이 나온다. 카페와 미술관이 함께 하는 이곳은 새로운 전시가 있을 때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커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니 한번 쯤 들려 눈과 입을 호강시켜도 좋다.
◆…바다를 바라보는 의자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바다를 보고 쉬어 갈 곳이 많이 있다. 바다를 보는 경치가 일품인 곳에 마련된 벤치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구엄포구에 있는 표지판
한참을 걷다보면 구엄포구가 나온다.
신엄 구엄 중엄은 엄쟁이라는 옛말에서부터 나온 말이다. 염장일을 하는 사람을 엄쟁이라 불렀으며 바다의 너른 바위에 소금염장을 업으로 해왔던 마을사람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소금염전의 너른 바위 모습
소금빌레라고 제주어로 부르는 넓고 편편한 바위가 포구 가까이 있다. 제주도에서 소금을 만드는 법이 잘 설명되어 있고 포구 주변은 커다란 고등어 조형물이 있다.
또 포구 주변의 횟집에서는 제주에서 갓 잡아 올린 고등어회와 갈치회를 먹어 볼 수도 있다.
◆…고등어 조형물
신엄리는 소금을 만들지 않지만 여름 수박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일주도로에는 여름철 수박 직거래 장터가 매일 열린다. 이곳 신엄 수박은 제주도의 특산물이 되어 버렸다.
제주도민들은 수박이 출하될 때면 이곳을 찾아와 저렴한 산지가격으로 싱싱한 수박을 사간다.
◆…소금빌레 표지판
옛날에는 짠 소금으로 부유했던 마을이 지금은 달콤한 수박으로 부농이 된 마을이다.
◆…아름다운 애월 해안
신엄포구에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해 고내리에 이르는 길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해안을 갖고 있다.
멀리 언덕 아래 펼쳐진 검은 기암에 부딪히는 파도와 푸른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거기에 노을이 발갛게 물들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해안 산책 길
이 해안 길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바로 조선시대 홍윤애와 조정철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파도를 타고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홍윤애의 사랑의 종탑
홍윤애는 영조를 시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제주에 유배 온 조정철과 사랑에 빠진 여인이다. 조정철과 원수 집안인 김시구가 제주목사로 부임해 조정철에게 덮어씌울 죄를 찾아내기 위해 홍윤애를 잡아다 조정철의 역모죄를 자백하라고 문초하는데도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자결했다.
홍윤애가 죽은 뒤 거의 30년 만에 제주목사가 되어 제주에 돌아온 조정철은 그녀의 무덤에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써 그녀의 높은 절개를 위로하고 끝까지 다른 여자와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의 위대함이 신분도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걸 알려 주기위해 멀리 바다를 향해 세워진 사랑의 종탑이 마음속 깊이 울려 퍼질지도 모른다.
◆…소나무 숲에서 야외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해안길에는 크고 작은 맛집과 특색 있는 카페들이 즐비하고 도시락을 가져가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시원한 소나무밭도 있다.
◆…고내포구
고내포구에서 애월항을 걷다보면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월항이 국제항의 면모를 보이기 위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후면 아름다운 요트와 큰 배들로 애월항이 화려해지려나.
◆…애월 옛 항구와 마을
애월항을 끼고 마을로 들어서면 크고 작은 가게들과 집들이 바다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을 조금 벗어나면 해안도로의 끝자락에 한담공원이 있는 한담동은 또 다른 모습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 이미 드라마촬영으로 많이 알려진 카페와 크고 작은 펜션들이 예쁘게 그림처럼 지어져 있어 사진에 담아가는 관광객들이 많다.
◆…드라마촬영지로 유명한 한담동 카페
그리고 한담동에서 곽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바다와 가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바다를 좋아해도 한곳만 바라보면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기 쉽지만 이곳 해안도로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곽지로 이어지는 한담 산책로
해안을 돌다 마을로 올라가 마을구경도 하고 다시 해안길을 걸어도 좋다.
◆…마을 안 모습
하지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의 예술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