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커피 브랜드인 후안발데스가 한국에서 마케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이야기거리가 무척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꼽아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고, 한국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콜롬비아이고, 커피 생산자협회가 만들어 수출하는 공정무역커피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고, 스타벅스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꼽힌 유일한 커피 브랜드이고, 커피 농사꾼인 카페테로를 브랜드 모델로 하고, 험준한 안데스 산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당나귀를 이용해 운반하고 이를 모델로 활용한다는 점등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야기 거리는 나에게 굉장히 많은 스토리텔링의 자료를 준다.
요즘 마케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중의 하나가 스토리텔링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품을 팔 때 제품에 대한 전설을 말해주라는 것이다. 전설의 고향처럼 아주 놀랍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들으면 사고 싶게 만드는 전설이다.
신문기자가 마릴린 먼로에게 물었다. '뭐 입고 주무세요?' 그녀는 대답했다. '샤넬 No. 5' 옷대신 샤넬 5번 향수를 입고 잔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 이후로 샤넬 No.5는 별다른 마케팅없이도, 그녀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링 향수가 되었다.
향수를 전혀 쓰지 않는 나도 샤넬 No 5하면 그녀의 아름다움, 백치미, 고독,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에 얽힌 음모론 등이 떠오른다. 만일 그녀의 이야기가 없다면 샤넬은 진작에 사라진 브랜드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물건은 물건으로만 팔리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특히 예술품이나 창의성이 들어가는 제품일 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는 흔히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외국에서 힘을 못쓰는 이유를 창의성의 부족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옷을 구찌의 디자이너인 프리다 지아니니, 프라다를 만든 미우다 프라다만 못할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한국에도 찬란한 역사와 아름다움을 내세울 수 있는 한복과 도자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현대에 와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한국사람보고 서양식으로 된 옷을 만들라고 하니 생각의 틀이 맞지 않아서이다.
한복의 특징은 펑퍼짐하며 넉넉하면서도 몸매를 살려주는 옷이다. 하지만 서양식 옷은 몸을 꽉매이면서 보이는 그대로 몸을 나타내주는 옷이다. 한복은 넉넉해야 하지만, 서양 옷은 딱 맞아야 한다.
한국은 인정(人情)과 같은 감성을 중시하면서, 서양은 과학과 같은 이성(理性)을 중시한다. 한국인은 사람을 사귈 때도 자기를 드러내놓고 시작하지만, 서양은 상대를 알고나서 친해지려고 한다. 그러니까 서양사람들과 한국사람은 생각의 기반이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디자이너들은 서양옷을 만들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만일 미우치 프라다보고 한복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동대문 한복시장의 한복상인들만큼 만들 수있을까?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만큼이 어렵다.
현대 세계의 문화는 서양식 문화이다. 맥도널드가 잘 팔리고, 나이키가 잘팔리는 것은 미국식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그에 따른 소비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이제사 세계 패션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한국에서 나서 자랐지만,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생각이 적응됬기 때문에 서양에 맞는 옷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명품이 팔리는 것도 보면 그렇다. 프라다가방이 왜 저렇게 많이, 그것도 엄청나게 비싸게 팔리는 것일까? 왜 좀 고급스러운 옷하면 'Paris'라는 단어를 집어넣을까? 미국이 아무리 현대의 경제를 주름잡는다고 해도 패션제품은 Paris이지 New York이 아니다.
하지만 컴퓨터와 관련된 IT제품은 역시 미국제를 최고로 친다. 조립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처음 생각해내고 이를 실현시켰는가의 문제이다. Paris가 붙어야 더 고급스럽고 패셔너블한 듯인 기분이 든다. 미국의 스티브잡스가 만들었으니까 스마트 폰이 유행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터치 스크린 기능을 가진 스마트 폰을 먼저 개발한 것은 노키아다. 애플이 아니다.
또한 노키아가 미국에서 잘 팔리게 된 이유중이 하나도 노키아의 발음이 일본어와 비슷하게 들여 사람들이 품질이 좋은 제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명품 브랜드라는 것이 터무니없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기도 하다.
프라다 가방이 수백만원해도 팔리는 것은 나에게는 당치도 않다. 그걸 수백만원주고 사느니 비슷한 것을 몇만원에서 사서 쓰다가 유행이 바뀌면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명품에 미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내가 웃기는 짬뽕일 수도 있다. '니가 게맛을 알아?'하듯이 '니가 명품의 값어치를 알아?'라고 묻는다면 난 할 말이 없다. 난 프라다의 정신을 이해하기엔 너무 속물적이거나 검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건을 판다는 것, 그것도 서로 다른 문화, 언어, 종교, 자연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끼리의 거래란 단순히 물건의 싸고 좋음, 내구성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게 자기네 문화나 환경에 맞는가의 문제도 실질적인 물건의 가치만큼이나 중요하다.
오래전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소련에서 만든 물건을 미국에서 팔려면 사람들의 편견을 넘어서야 했다. 단순히 공산권의 물건을 자본주의 권에서 사줄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적대적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동권에서는 이스라엘의 물건을 사면 안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의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가 유태인이기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를 팔아주면 그 돈이 이스라엘로 들어가 팔레스타인인을 죽이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물건은 만든 사람의 정신과 같이 팔린다. 특히 서로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파는 무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장에 가서 뭔가를 살 때 무심결에 원산지에 Made in France가 찍혀있을 때와 Made in China가 찍혀있을 때 받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다행히 이제는 세계시장에서 Made in Korea도 제법 먹힌다. 그건 빨리, 빨리, 대충 적당한, 유연하게, 폭탄주처럼 화끈하게,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처럼, 학교 우등생처럼 영리하게, 전쟁을 극복한 사람처럼 처절하게, 유태인도 물리친 영악하게, 안되면 되게하라, 일본인을 게으른 민족으로 보이게 한 사람 등이 한국 사람의 정신세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도 이제는 한국제품을 믿을 만하다고 인정한다.
실제로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한류문화의 세계적 성장은 Made in Korea의 성가를 높이는 것,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아이돌이 베트남에서 노래한 번 할 때마다 양말 한 켤레당 1센트는 올라간다. 그래서 나는 한류스타들을 보면 정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고마움이 절로 난다. 그들이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려줌으로써, 우리같은 장사꾼이 파는 제품의 격을 높여주었다.
정신과 물건은 같이 팔린다고 한다. 이제 나의 문제는 한국에서 마케팅하는 후안발데스 커피이다. 콜롬비아에는 아이돌이 없다. 그래서 콜롬비아의 정신문화를 한국에 어떻게 접목하는 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콜롬비아의 문학을 들여올까도 싶다. 콜롬비아의 스페인어는 스페인의 스페인어보다 더 스페인니쉬하다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은 내가 파는 물건과 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같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