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명목세율(법정세율)을 올리기 위해 야권이 하나로 뭉쳤다.
증세 타깃은 상위 0.1%, '대기업'으로 잡았다. 담세능력(세금부담능력)이 있는 대법인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감당하자는 것이 주된 목소리다.
재정적자를 메워야 한다는 등의 명분은 그저 '양념'에 불과하다. 지금 현재 시점에서 야권이 노리고 있는 수는 '복지재원 확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모습이다.
여당과 정부는 대기업을 겨냥한 법인세율 인상에 대해선 고개를 젓고 있다. 비과세·감면 제도의 정비로 기업이 각종 비용을 공제받은 뒤 실제 부담하는 세율, 즉 실효세율이 이미 높아졌다는 것이다. 여당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법인세율을 올리려고 한다"며 정부의 편을 들고 있다.
학계 또한 정치권 마냥 법인세율 인상 문제를 놓고 쫙 갈라져 있다. 찬반 양론이 팽팽해 결국 '정치적 결단'이 없이는, 내년 대선까지 또는 그 이후에도 '평행선 논란'만 계속될 공산이 큰 상황이다.
巨野, '법인세율 방벽' 무너뜨릴까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자체 세법개정안은 법인세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25%의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 기업에 최고 22%의 세율을 매기는데, 이보다 3%p 높은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기업은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이다. 2014년 기준으로 법인세를 신고한 55만 기업 가운데 0.08%인 440개 기업이 영향을 받게 되며, 단순계산으로 한해 최고 4조원 이상의 세수가 더 거둬질 것으로 더민주는 전망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 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을 22%에서 24%로 2%p 올리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 매출 4000억원이 넘는 기업들이 영향권에 속한다. 약 1034개 기업으로부터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세수를 거둘 것으로 국민의당은 추정하고 있다.
두 야당이 내놓은 방안은 세부담 수준에서만 차이가 날 뿐, 대규모 감세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실패로 규정, 노무현 정부 시절 수준의 법인세율을 다시 정립하겠다는 동일한 목표점을 가지고 있다.
두 야당은 법인세율 인상 찬성론자들의 논리를 채택하고 있다. 일단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가 파생할 것으로 예측했던 '낙수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는 커녕 금고에 돈(사내유보금)만 잔뜩 쌓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정성훈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1835개 상장사 당기순이익은 2008년 39조원에서 2014년 83조9000억원으로 115%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이들의 투자규모는 2008년 112조4000억원에서 2014년 112조2000억원으로 0.2% 줄었다.
전체 상장사 사내유보금은 2008년 326조원에서 2014년 845조원으로 158% 증가했다. 법인세율 인하 조치가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기업의 배만 잔뜩 불렸다는 비판이 명확한 수치를 통해 증명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법인세 인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기업소득환류세제'까지 만들어냈는데, 실제론 기업들은 경제의 파이(소득향상+소비증가)를 키울 수 있는 직원 임금 인상에는 인색했고, 배당에만 치중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을 통해 미환류소득을 계산할 때 공제되는 배당의 가중치를 줄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제도가 당초 도입 목표와 달리 가계자산 증식에 미친 효과가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려는 야당의 움직임은 지난 19대 국회 때도 있었으나, 정부여당의 거센 반대로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여소야대(與小野大)'의 20대 국회에선 야당이 주장하는 증세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정세균 국회의장이 최근 법인세율 인상안에 대해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지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지정되면 상임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에 올라가 표결이 진행된다.
2014년 새누리당은 야당이 반대한 담뱃세 인상안을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지정해 통과시킨 적이 있다. 법인세율 인상안이 2014년 담뱃세 인상안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적 법인세 인하 추세…기업들 세부담 늘고 있다"
법인세율을 두고 (나라)안에선 올리려고 하고 (나라)밖에선 내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이후 법인세율(지방세 포함)을 인하한 국가는 OECD 34개국 중 18개국이었다. 법인세율 인하폭이 큰 국가를 보면 일본 9.6%p, 영국8%p, 스웨덴 6%p, 캐나다 4.7%p, 한국 3.3%p, 미국 0.3%p 등이었다.
법인세율을 올린 국가는 칠레(7%p↑), 그리스(4%p↑) 등 6개국에 불과했다.
한경연은 "복지선진국이라는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까지도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법인세율 올려야 한다는 쪽에선 OECD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의 세부담 수준이 낮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OECD 국가의 법인세(지방세 포함, 올해 기준) 최고세율은 평균 23%(24.8%)로 우리나라의 22%(24.2%)에 비해 1%p 차이에 불과하다.
특히 법인세 감세정책 이후 비과세·감면 정비로 기업의 실효세율이 대기업 위주로 상승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의 실효세율은 2012년 18.3%에서 2013년 18.0%로 소폭 하락한 뒤에 2014년 18.7%, 지난해 19.2%까지 올랐다. 중소기업도 2013년 12.5%를 기록한 이후 2014년 12.6%, 2015년 12.7%로 소폭의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법인세수는 20120년 이후 2년 연속 감소추세를 보였다가 지난해 45조원을 기록하면서 증가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법인세율 반대론자들은 법인세율 인상시 기업의 고용창출 능력을 억제한다는 지적이다.
한경연에 따르면 법인세율 1%p 인상할 경우 0.3~0.5%의 고용 감소와 0.3~0.6%의 노동소득 감소를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본의 유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경연은 법인세율을 3%p 인상 시, 순 자본유출 규모가 약 29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법인세 최고세율을 2%p 올렸을 때 법인세 수입이 7000억원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도 나온 상태다.
현재 정부의 조세정책 스탠스는 국제조세 환경을 최대한 고려한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지난달 발표한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을 통해 "국제 과세기준, OECD국가 평균 세율수준 등 국제적 조세경쟁력 등을 감안해 법인세 과세체계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현 3단계 세율구조를 단순화하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
장기적인 수출부진과 내수회복 지연으로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법인세율을 인상하려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올해 정부가 거둬들일 세수가 예산보다 20조원 가까이 플러스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발표한 '주요 세법개정안 내용 및 쟁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법인세율 인상은 경기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다국적 자본의 이탈을 방지하고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주변 경쟁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